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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Dec 12. 2021

E's 북 : 흰 양말에 샌들, 레깅스 군복

날개옷을 입고 훨훨

패션만큼 인간의 외면을 잘 나타내는 것이 있을까요? 네 외면 말입니다. 내면이 아니고요.

인간만이 털을 벋어 버리고 옷을 입고 있지요. 꼭 옷이 아니더라도 장신구로 치장을 하고 모자를 쓰고 신발도 신지요. 현대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패션의 역사는 태곳적부터지요. 원시 부족이라도 화려한 장신구를 볼 수 있지요.

한편으로는 패션만큼 허영과 위선의 산물인 것도 없지요. 자유롭고 새로운 표현 방식이 패션이면서도, 그 안에 어떤 틀로 가두고 통제하려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패션은 놀리기 딱 좋은 소재이기도 하지요. 학창 시절을 기억해 보면 옷차림은 놀림의 첫 번째 거리였지요. 성인이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패션을 놓고 왈가왈부 하기를 아주 좋아들 하지요.

보통은 통용되는 룰을 따르지 않았을 때 또는 어설프게 따라 했을 때 그렇습니다.

그렇게 패션이 어려운 것일까요? 그렇진 않을 것입니다. 다 개인의 취향이 다른 것인데 놀리는 자체가 우스운 것이지요. 오히려 정해준 틀을 따라야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그래서 패션 테러리스트와 패션니스타는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놀림을 받는 자와, 아무리 놀려대도 끄떡하지 않고 끝까지 우기는 아우라가 있는 자의 차이이지요.

흰 양말에 샌들을 신으면 왜 패션 테러리스트일까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놀라운 것은 패션의 관심은 전쟁 중에도 계속되었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더 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패션을 생각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패션에 대한 열망은 인정해 주어야 할 것도 같습니다.

패션은 화려한 군복 속에서도 꽃피웠지만 굴욕을 당하기도 했었지요. 원색의 화려한 군복이 총알의 표적이 되면서부터였습니다. 패션은 드디어 항복을 선언하고 시궁창 색이라고 놀림받았던 카키색과 개구리 얼룩 문양을 대신 채택하게 됩니다. 심지어 강렬한 이미지를 주고 싶어 하던 힙합전사 같은 이들로부터 밀리터리룩으로 사랑받기도 하지요. 하지만 진짜 군대에 다녀온 이들이라면 밀리터리룩은 사절입니다만.


헬맷은 전쟁이 나은 매우 흥미로운 패션이지요. 포탄과 총알은 전쟁 중 모자의 개념도 바꾸어 놓았으니까요. 즉 철모라는 패션 발명품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됩니다. 프랑스의 아드리안 헬멘과 영국의 브로디 헬멧이 그것이지요. 접시 뒤집어 놓은 듯한 영화에서 보았던 철모가 바로 그것이네요. 오토바이 헬멧, 자전거 헬멧까지 등장한 것을 보면 멋진 발명품입니다. 명품이지요.

군고구마, 군밤 장수의 모자는 전쟁 중 추위와 싸워야 하는 입장에서는 최고의 패션이었지요. 특히 한국전쟁은 추위와의 전쟁이었다고 회고되는 것을 보면 이 멋없는 모자가 얼마나 알찬 패션품이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고 보면 상당히 추운 지역에 살고 있는 셈이지요.


구두를 수십 년 신어왔으면서도 옥스퍼드 구두와 브로그 구두 그리고 더비 구두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그 차이를 알게 된 것은 뜻밖의 수확이었습니다. 간단히 기록해 두자면, 발등의 뱀프라는 부분이 끈 구멍이 있는 아일릿 부분 위로 올라오면 옥스퍼드, 아일릿이 올라오면 더비, 그리고 세레이션과 퍼포레이션과 같은 장식이 있는 것이 브로그, 그렇지 않은 것이 옥스퍼드 구두라네요. 장식이 있는 구두는 뭔가 나이 들어 보여 그리 선호하지 않았는데 그건 브로그 구두였나 봅니다. 군대에서 신었던 단화 구두는 더비였군요.


요즈음 논란의 패션은 레깅스이지요. 레깅스도 군복이 될 수 있을까요?

말도 안 될 것 같지만 언젠가는 군복으로 레깅스가 채택될 날이 올 것만 같습니다. 슈퍼맨과 어벤저스 슈퍼히어로들이 즐겨 입는 군복인데 당연 군복의 소재로는 최고이지요.


지금까지 입은 패션은 교복에서, 군복으로 그리고 양복이 대부분이었지요. 자유롭고 새로운 패션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대부분은 틀과 통제에 놓여있는 것이지요.

시궁창 색이었던 카키색이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흰 양말에 샌들을 신는 게 패션이 되는 때, 레깅스가 군복이 되는 날도 오겠지요. 양복 대신 상상도 못 했던 자유복을 입기도 시작했으니까요. 

놀림 좀 받으면 어떻습니까. 패션이라고 우기는 아우라만 있으면 패셔니스타가 될 수도 있겠지요.

패션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이제는 날개옷을 입고 훨훨 날아가 보고 싶네요. "나무꾼아 날개옷 어디다 숨겨놨니?" 그런데 오늘 뭐입죠?


전쟁 그리고 패션 Ⅱ (메디치 컬러의 용병들)

한줄 서평 : 패션에 숨겨진 놀아운 전쟁 생존기 (2021.09)

내맘 $점 : $$$$

남보람 지음 / 와이즈플랜 (2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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