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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Feb 20. 2024

집밥 요리글을 쓰고 싶은 순간

feat 책(글)

책(글)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빨리 읽어 버려서 이 책(글)의 마지막을 빨리 덮고 어서 이별하고 싶다는 책(글), 책(글)의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아쉬움이 커지고 책(글)을 좀 더 음미하고 아껴두고 싶어서 이별이 저어 되는 책() 그것이지요. 대게는 새책(글)을 빨리 만나고 싶어 일던 책(글)을 빨리 읽으려고 하지만 때론 보석 같은 책(글)을 발견하는 두근거림에 읽던 책(글)을 그대로 두고 다른 책(글)을 탐미하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전자가 마치 불가피하게 읽게 된 회식 같은 책(글)이라면 후자는 데이트 같은 책(글)입니다. 가끔은 회식도 재미있을 수 있지만 역시 회식의 묘미는 끝나는 데 있지요. 마찬가지로 책(글)도 끝까지 읽었다는데 의의를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해방감이 느껴지기는 책(글)이 있기도 하고요.


후자는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돌아보고 또 연락하고 싶은 데이트 같은 책(글)입니다. 책(글)잔상이 남아 다시 보고 싶고 어딘가에 책(글)에 나온 문구를 적어 놓고 싶은 책(글)이지요. 마지막 장에 이르면 뿌듯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느껴지며 아름답게 이별을 고하는 책(글)으로 남게 됩니다. 때로는 그 여운을 계속 간직하고 싶어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서재에 책을 조심히 모셔놓고 다시 꺼내어 펼쳐 보지 않는 우를 범한다 하더라도 말이지요.


그런데 생각에 이르니 후자 보다는 전자 같은, 데이트 보다는 회식 같은 책(글)을 부단히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치며 멈칫하게 됩니다. 음식으로 치면 따뜻한 요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 만들어진 것 해동해서 내어 놓는 냉동식품 같은 책(글)이나 인스턴트 식품 같은 책(글)을 만들어 내는데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지요.


한때는 일류 셰프를 꿈꾸었을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아니어도 손수 요리하는 따뜻한 집밥 같은 책(글)을 쓰고자 했었지요. 그런데 현실은 바쁘고 냉동식품 책(글)은 잘 팔리고, 스턴트 책(글)은 편하기에, 재료를 일이 손질해야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 같은 책(글)에 점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거라도 사 먹고 해 먹는 것이 어디냐고, 요즘은 냉동식품도 안스턴트도 잘만 나온다지만요.


그렇게 변명하고 정성 들인 요리나 집밥을 직접 하진 못하지만, 가끔 정말 미식의 요리 같은 책(글)이나 따뜻하고 구수하기 그지없는 집밥 같은 책(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냉동식품과 인스턴트 책(글)들에 길들여졌던 책(글) 입맛이 본래의 언어의 순수한 재료를 따라 다시 살아나곤 합니다. 마치 봄나물, 머루 다래, 냉이, 쑥, 무침, 된장국 같은 책(글)의 새콤달콤, 구수하고 보글보글한 입 안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 이런 맛이 있었지!" "책(글)에서는 이런 맛이 나야지!"


그런 감각들은 역시 미식의 요리책(글)이나, 정성 들인 따뜻한 집밥 같은 책(글)에서나 느낄 수 있는 본연의 글맛입니다. 그러고는 그런 책(글)을 읽고 먹었으니 나도 기억을 되살려 냉동삭품, 인스턴트 책(글) 말고 오늘은 따뜻하고 싱그러운 하나 집밥으로 요리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되살아나지요. 혀 끝은 그 맛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머릿속은 그 글맛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다시 꺼내 들어 맛보고 느끼고 싶어 하거든요. 그런 책(글), 그런 저녁이 자주 기다려지면 좋겠습니다. "꼬르륵" 배가 고픈지 책(글)이 고픈지 알 수 없는 울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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