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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May 15. 2024

도대체 언제 적 가오리니?

feat 여행드롭

언제 적 가오리니?


이번에는 제목은 전혀 보지도 않은 채 작가만 보고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때가 어느 때인데, 도대체 언제 적 (에쿠니) 가오리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가오리'란 이름은 작가가 아니었어도 쉽게 잊히는 이름은 아닙니다. 아직도 그녀의 이름이 진짜 물고기 '가오리'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실망감이 올 것 같다 아직 확인해 보지는 않고 았지만 말이지요.


오래된 작가입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아니 실제 만난 적은 없고 책으로만 만났었지요-벌써 이삼십 년은 족히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몇몇 작품을 읽었었는데 중간에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오랫동안 소원했던 건 그녀가 책을 새로 내지 않아서 일까요? 아니면 제가 중간에 그녀를 만나지 않고 딴 여자들을 만났기 때문일까요? 서로의 주장이 일치하지는 않는 듯 하지만 어쨌든 지금 다시 만났다는 게 중요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이번에 이 책을 집어든 것은 꼭 책에 흥미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작품을 내고 있다는 것은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들었음에도 여전히 건강하고  활동적이라는 이야기이겠지요. 그리고 새 작품을 통해 그녀의 안부를 이렇게 확인하고 싶었지요. 물론 실제로 만난 적은 없고, 안부를 물을 사이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녀도 벌써 이순에 가까운 나이라는 것이 실감이 되지 않습니다. 그녀와 처음 만났을 -아니 작품에서 만났을 때-표지띠에 그녀의 사진이 떡하니 걸려있었으므로-비교적 젊은 나이였는데 이제 그렇지 않은 나이가 되고 말았네. 그만큼 그녀와 마찬가지로 저도 나이를 흠뻑 먹어 같이 늙어가고 있는 것이겠지요.


오랜만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작품을 읽은 낯이 익어서 그런지 새로운 신간도 전혀 나이 들어 보이지 않을뿐더러 술술 잘 읽히기까지 합니다. 이전 작품들에서도 특별함이 있기보다는 일상의 이야기를 소소하고 담담히 풀어가는 문체였다는 기억이 있는글에서 느껴지는 여전함이 여간 반갑지요. 본연 재료의 고유한 맛을 살린 일본풍의 초밥과 같은 맛의 기억이,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그 주인장이 똑같은 맛의 초밥을 빚고 있는 맛이라고 할까요?


이제 작가의 안부를 물었으므로 책 내용은 그리 중요치 않을 수도 있책 속의 내용을 통해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더 자세히 듣고자 합니다. 그녀와의 관계는 그래왔듯이 작가와 독자라는 멀고도 깊은, 가깝고도 얕은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오래전부터 만나왔으되 만난 적이 없고, 뜸했지만 다시 만나면 반갑고 문득 안부를 궁금해할 만한 사이지요. 물론 철저히 책이라는 매개체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만.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 그녀살아왔던 안부를 훨씬 더 다채롭게 들을 수 있던 점이 흥미롭습니다. 특히 만나기 전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스무 살 무렵의 여행 이야기글은 뜻밖의 수확이었지요. 그러나 흔한 여행기들이 그렇듯 가보기 어려운 장소에 대한 동경과 자랑을 한껏 동반한다면, 작가의 이야기는 여행지에 대한 양념이 거의 없이 담담한 마음속 본연의 풍미를 담아내고 있어서 역시 과하지 않는 초밥처럼 좋았다고 할까요? 여행지에 대한 사진, 삽화 하나 없이 이야기를 소소히 풀어내는 오랜 내공의 맛집에서나 가능한 이 집의 비법이지요.


특별히 자주 연락을 취하거나 일부러 골라서 그녀의 작품을 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도 가끔씩 그녀의 안부를 계속 궁금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렇게 안부가 궁금해지면 연락도 없이 우연히 접한 책을 집어 들겠지요. 그리고 다시 반가움과 그 담담한 맛에 허기진 한 끼를 채우고 콧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만나왔고-잠시 뜸했었지만-안부가 궁금한-다시 만나면 반가운 작가들이 있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실제 만난 적은 없고 책으로만 만났었던 특별한 인연이지만 말이지요.


여행드롭

한줄 서평 : 오랬만인 데 이 집 초밥맛 여전하구나 (2024.05)

내맘 $점 : $$$

에쿠니 가오리 지음 / 김난주 옮김 / 소담출판사 (20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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