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도 버거운데 서평이라니요!" 분명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렸습니다. 마치 책 읽기도 고통인데 읽고 나서 서평까지 쓰면서 두배로 고통을 스스로에게 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듯이 말이죠. 서평을 마치 반성문처럼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반성문 맞습니다. 서평은 왜 이런 훌륭한 책을 여태껏 써내지 못했냐에 대한 반성문이자, 왜 이따구로 쓴 책을 읽고 있었냐에 대한 반성문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전자의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중하게 고통을 느낄 책을 골랐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이 반성문은 고통스럽기보다는 매우 즐겁지요. 고통x고통이 아니라 즐거움x즐거움두 배라고 항변했지만 그들의 눈에는 책의 고통을 즐기는 마조히스트처럼보였을지도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책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기도 하고, 책 내용도 어느덧 하얀 종이만 남긴 채잉크가 증발해 버리기가 일쑤입니다. 이유는 둘 중에 하나겠지요. 나이를 너무 먹었거나, 책을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기억이 덧씌워져 그랬거나. 설마 후자일까요? 전자일 확률에 슬퍼지려 하는군요. 어쨌든 서평이라는 형식을 빌어 기억을 붙잡아 두기로 했지요. 그러나 여타 서평과 달리 책의 내용을 기록하거나소개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줄거리도 거의 아예, 오예 없고 오히려 책에는 없는 내용만 잔뜩 써 놓았으니까요. 그러므로 서평이라보다는개인적인 기록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반성문일 수도 있고 책 이어쓰기 정도가 될 수도 있겠네요. 책의 저자는 책의 내용을 맘대로 뒤집어 놓은 이어쓰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평론가라는 것이 원래 독설을 좀 퍼붓고 지맘대로캐릭터잖아요? 경연 프로스램의 심사위원 아무나 하던데 그거 나두 함 해 봅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서평을 쓰는 고통은 고사하고쏠쏠한 재미가 있더란 말입니다. 책을 판단할 그런 위치도 실력도, 심사위원도 아니지만 이것은 내가 주관하는 경연 프로그램에서의 내맘대로 심사위원, 절대적 자격의 서평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러므로 이 프래그램은 책을 읽는 재미에다가 책을 다 읽고 무언가를 내 맘대로 씹고 뜯고 맛보고 쓸 재미에 빠져 기대가 두 배가 되는 재미인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이 재미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진가를 발휘하지요. 책을 읽었는지 안읽었는지 기억이 히미해질 무렵, 책의 글씨의 잉크가 기억에서 다 증발해 책이 백지가 되어갈 무렵, 나중에 찾아보고 "아 이때 이런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하였었구나!"하고 기억을 더듬을 수 있을테니까요. 물론 그때에는 그런 훌륭한 책에 이런 형편없는 소리를 서평이라고 철없이 늘어놓은 것을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겠지만, 후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조금 더 책을 보고 철이 들어 책을 보는 눈도높아져있을테니까퉁치기로 하지요. 그렇게 쓰다 보면 뜻하지 않게 풍월을 읊고 있을지도 모르겠지요.
그렇다고 모든 읽은 책에 대해서 서평을 남기는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서평을 남기고 싶은 책들이 있지요. 마치 후기를 남기고 싶은 드라마가 따로 있듯 말입니다. 책을 읽으며 너무 즐거웠어도 그렇고, 딱히 그렇진 않아도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책이라면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면 책들에는 그만큼의 사고의 틈이 주어져 있는 것이겠지요. 완벽해 보이더라도 그 틈을 찾아 들어가서메꾸고 더욱 단단히 하는 것이 책을 읽고 글을 남기는즐거움이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단 단순요약이 아니라 자신의 글을 다시 써야겠지요. 쓰고자 하는 서평의 지향점은 결국또 다른 책이될 테니까요.자신에게 남겨주는 새로운 책 말입니다. 책들과 더불어 안목과지혜가늘었고이렇게 즐거웠거나 위로가 되었었다는책, 그리고 그 지혜, 즐거움, 위로의 틈을 메꿔 또 다른 이에게 더 단단함을 선물하는 책 말이지요.
단책의 고통을 즐기는마조히스트만가능한일일수 있습니다. 책이 진짜 고통인 이들에게는읽고 쓰기까지 하라는 것은 고문에 가까울 수 있으니까요. 어때요? 북 마조히스트 고통의 핵존맛의 세계에 발을 한번 들여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