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not?!
돌돌이를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사람은 있겠지만, 한 번만 쓰고 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옷에 먼지만 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지우개가 열 일을 하고 나면, 책과 노트 밖으로 밀려난 가루들이 책상 위로 흩어지고, 그러다 팔이나 옷에 묻고, 교재 뒤에 붙고, 다시 책과 노트 위로 올라앉기도 한다. 그전에 출동해야 한다. 날을 세운 손으로 탁탁 밀어 모으기도 하지만, 손에 묻은 걸 털어내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기 쉬우니, 바로 이럴 때 돌돌이의 쓸모를 마음껏 누려준다.
전에는 책상용으로 나온 작은 빗자루와 쓰레받기 세트를 근처에 두고 사용했다. 수학 시간만큼은 아니지만, 영어 시간에도 부지런히 쓰고 지울 일이 꽤 많기 때문이다. 책상 위에서 돌돌이를 사용하게 된 건, 펜 트레이 다이어리 메모지 등과 함께 책상 위에 돌돌이가 늘 머물게 된 건, 한서 덕분이었다.
새로운 수업을 시작하기 전 한서는 최근까지 공부한 대신 자신의 노트를 들고 나왔다. 바탕체의 문장이 줄을 맞추고 간격을 유지하며 영어 문법을 써 내려간 노트였다. 중학생의 노트라기엔 대단했다. 꾹꾹 눌러쓴 문장에 담긴 정성이 내 손목이 저릿할 만큼 진하게 전해졌다. 그 어떤 교재보다, 그 노트는 한서의 현재 공부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첫 수업에서 바탕체 문장들의 실제를 보게 되었다.
개념 정리는 물론, 연습 문제의 예문이나 새 단어의 뜻 같은 소소한 필기도 가지런히, 천천히, 꾹꾹 눌러 적고 있었다. 한 문장, 한 단어, 띄어쓰기의 간격 뭐 하나 소홀하지 않았다. 지켜보는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어긋났는지 지우고 쓰기를 반복했다. 자신만의 기준이 있는 모양이었다.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도록 지우개질을 하는 손끝에 온 힘을 싣는 통에 한서의 손톱 끝은 수시로 노랗게 변했다. 그렇게 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첫 수업인데 한서는 분주했다. 낯선 선생님을 의식할 틈조차 없었다. 대단한 몰입이었고, 그런 거라면, 나 역시 아는 척을 하기 조심스러웠다.
한서는 거의 종일 공부한다고 했다. 공부한 시간에 비해, 성적은 그만큼 나오지 않아 고민이었다. 그 시간의 대부분을 지우고 있는 게 아닐까 짐작할 만큼 첫 수업에서 보인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한서가 나를 의식할 때까지, 몇 번의 수업을 있는 그대로 진행했다. 한서는 설명을 들으며 필기를 하다가, 잠시만요, 하고 나를 멈춘 뒤 지우개를 들었다. 수업의 흐름이 자주 끊겼다. 잘못을 지우고 바로 고쳐야, 새로 배울 수 있는 학생이었다.
한서의 보호자는 아이의 습관에 대해 잘 알고 계셨다. 그 이야기를 나누며 이어지던 정적은 그분의 걱정이 오랜 일이라는 걸 말해 주었다. 부디 새로 만난 선생님의 잔소리가 효과가 있어 갈등도 비효율적 습관도 사라지길 바라셨다.
효율적으로 공부하도록, 자신만의 공부 방법을 발견하도록, 각 학생이 적절한 공부 방법을 찾아가도록 돕는 것은 영문법의 달인으로 만드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나의 임무다.
그런데 한서의 습관을 내가 어쩔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일인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부모님의 기대는 이해했지만 당사자가 불편해하지 않으니 망설여졌다. 하지만 주변의 우려들은 결국 한서 몫의 고단함이 될 터였다. 나는 분명 지켜보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해야 했다.
학창 시절 나는, 필기의 여왕이었다. 단정한 필기로 아름다운 나만의 노트를 완성하는 순간과 두고두고 이를 넘겨볼 때의 뿌듯함을 너무나도 잘 안다. 다양한 펜을 돌려썼고, 수없이 지워야 했다. 공부라기보다 예술이었던 그 인고의 작업이 성적 향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충분히 경험했다.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학생이 책상에서 하는 모든 일이 성적을 올리는 데 기여할 수 없지 않은가. 무용하더라도, 즐거움을 주는 일 역시 학생의 책상에서 벌어져야 한다. 한서가 괜찮아 보이니, 달리 보고 싶었다. 쓰고 지우는 일은 결국 통하여 있으니, 오래전 필기의 여왕 마인드로 한서 가까이 가보기로 했다.
지우개질은 세심한 기술을 요한다. 어깨부터 힘을 실어 박박 지우개질을 하면, 지우려던 문장의 앞뒤까지 힘이 전해져 덩달아 지워지거나 노트가 찢긴다. 모서리로 꾹꾹 눌러 지우자면 다른 필기에 방해는 안되지만 지우개를 뾰족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 둘 사이 어딘가의 힘과 기술로 적절하게 지워내야 한다.
게다가 지우개질이 끝나면 가루들이 생긴다. 책상 한 편에, 팔에는 닿지 않은 곳쯤. 노트를 세워 들고 바닥으로 탁탁 치면 가루들이 떨어져 쌓인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손 끝에 만져지는 작은 가루들까지 모두 밀어 모아둔다. 가루들이 날리지 않아야 하니 그 모든 동작은 차분하게 슬로 영상으로!
그러하니 지우개를 손에 든 한서의 행동은, 갈 길이 바쁜 수업 시간에 모두 군더더기다. 아마도 그 일로 지적을 당하고, 혼이 났을게 뻔하다. 어떤 날은 목 끝까지 차오르는 재촉의 말들을 다시 삼키느라 혼이 났다.
수업에 적응이 되면서 농담도 하고 편한 분위기도 생겨났는데, 막상 지우개를 집어 들 때면 진지해졌다. 나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
한서가 나름대로 애쓰는 동안 그 행동을 부정하는 말을 이미 충분히 들었을 것이니, 나까지 보태고 싶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 이미 잘 알고, 시달렸고, 괴로웠다. 이상한 행동인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안 하면 불편했기 때문에 한서는 계속 지웠다. 처음부터 다 지우고, 또 지웠다. 그래야 '그다음'으로 넘어갈 준비가 되었다. 툭툭하고 지우개 가루를 털어 내고 나면, 지켜보고 있는 내 시야 안으로 연필을 스윽 밀어 보이며 수업을 이어가자고 신호했다.
적어도 지우개질에 관한 잔소리만은 안 해야지, 한서의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단단히 결심했다. 새로 산 내 지우개를 책상에 티 안 나게 꺼내 놓으면서, 한서의 바뀐 지우개를 아는 척하면서, 진도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여전히 단정한 수업 태도를 칭찬하면서 우리는 열 번이 넘는 수업을 나름 평화롭게 해냈다.
"한서야, 찍찍 긋거나 아님 그냥 아래쪽에 다시 써도 돼. 글씨를 또박또박 쓰니까 쌤이 충분히 알아보고 채점할 수 있어. "
"틀린 흔적이 남잖아요."
“그게 싫어? 틀렸던 흔적?"
“싫죠. 틀린 걸 보는 것도 싫고, 고치는 건 더 힘들고.”
“지우개 값도 많이 들고?!”
한서가 웃기에, 한 번 더 용기를 냈다.
그날따라 한서는 나의 말을 친근하게 들어주었고, 나는 미뤄두었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그동안 지켜본 한서는, 필체만큼 머릿속 생각의 흐름도 가지런한 학생이었다. 지문을 대충 읽어서 아는 문제를 틀리는 일은 거의 없었고, 답을 빨리 찾으려 서두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지우개질 때문인지 혼자만 느긋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실은 신중한 아이였다. 지우느라 쓰는 시간을 벌고도 남을, 한서만의 공부 방법이 될지도 몰랐다.
고맙게도 한서는 내 말을 귀담아 들어주었다.
머릿속 문장에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중얼중얼 소리를 내었다. 손으로 풀기와 말로 풀기가 섞다 보니, 어떤 문제는 중얼거림이 한 번에 정답을 찾아냈고 그럴 때면 굳이 답을 손으로 쓰지 않고 빈칸으로 두고 넘어갔다. 과제도 소리 내어 읽고 표시하기와 외우기 방식의 비중을 늘렸다.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한서는 자기만의 공부 방법으로 늘려갔다. 물론 시간이 걸렸다. 수업 중 연필을 아주 놓은 것은 아니었므로 한서의 지우개는 여전히 바빴지만, 한 타임의 수업이 아닌 과정 전체로 보았을 때 더 이상 다른 아이들보다 느리지 않았다. 이전보다 나아진 것이 분명했다.
책상용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지우개 가루를 쓸어 담는 것이 내 일이 되었다. 한서의 분주함과 나의 기다림이 협동하여, 분업 시스템을 일궜다. 그러다 어느 날 쓰레받기를 대차게 엎는 바람에, 나란히 엎드려 바닥과 책상 위아래로 흩어진 가루를 치우게 되었다.
한서가 수줍게 말했다. 오호, 기념으로 나도 샀다. 리필까지 여러 개.
우리의 분업, 한서는 노트 위로 가루를 털고, 그럼 내가 도로록, 돌돌이를 굴렸다. 가루를 모으거나, 팔 아래 묻었는지 확인하거나, 날아가지 않게 조심하는 시간을 모두 아꼈다. 호흡이 제법 잘 맞아갔고, 그렇게 아낀 작은 시간들이 모여 수업 시간에도 우리 마음에도 여유가 되었다. 이전보다 편해졌다.
새 교재를 시작하며, 끝에 달린 고무로 잉크를 지울 수 있는 신상 펜을 선물했다.
틀린 답도 공부할 땐 필요한 답이니까.
연필로 문제를 풀고, 빨간색 채점은 생략하는 대신 파란 펜으로 바로 아래쪽에 다시 풀었다. 두고 보기 힘들면 지워도 괜찮지만, 파란 펜으로 풀린 문제는 다시 설명해주었다. 새 교재 한 권에만 한정해서 진행했다. 파란색 펜으로 쓰인 문장이 늘어가며, 반복하는 실수를 알아챘다. 애초에 잘못 외웠다고 하기도, 오답의 원인을 찾아내기도 했다.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한 번에 알아보는 짜릿함도 경험했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다짐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여러 번 풀어도 틀리는 어려운 문제는 파란 펜을 덮고 빨간 펜으로 표시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전보다 참견이 늘었지만, 한서의 단호함도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필기 속도가 극적으로 빨라지거나, 지우개질이 생략되는 건 아니었다. 가지런하고 깔끔한 필기에 관한 엄격함도 여전했다.
하지만.
지우개질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에게 볼펜 사용이 얼마나 파격적 행보인가!
다른 선택이다. 한서가 준비되었다면, 안 될 일은 없다. 볼펜에 화이트라니, why not?!
'중요한 것은 방향이지 속도가 아니다'라는 흔한 말은 느린 속도의 아이를 위로할 때만 꺼내 쓰는 카드가 아니다. 아이들의 수만큼 다양한 속도가 있음을, 예측할 수 없는 그 속도들의 존재를 인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들을 돕는 말이 되길 바란다. 아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주는 수고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히려 현실적인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 수고를 감내한 사람만이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기다림은 점점 짧아졌다. 서로에게 익숙해져 기다림이 짧아지는 것처럼 느꼈는지도 모른다. 쓰고 지우기는 여전했지만, 지우는 일은 더 이상 수업의 방해 요소가 아니었다. 적어도 우리 수업에선 그랬다.
책상 위의 돌돌이를 굴리면, 지우개 가루는 사라지지만, 그 자리에 남는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