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보다 넓은 어깨

체력이 실력

by 이룬

밤 11시가 넘었다.

정규 수업을 마치고, 이미 모두의 어깨 위로 피곤이 무겁게 내려앉은, 곧 '내일'이 되는 시간이다. 오늘의 공부를 내일로 미루지 않으려는 학생들 곁을 지키느라, 하품을 삼키느라 눈가가 촉촉해졌다.


"오 분만 쉬었다 할까."


나는 기지개를 켜고, 몇몇은 그대로 책상에 엎드리고, 현준이는 고개를 들었다.


"현준아, 안 졸리니?"

"아직요. 오늘은 12시 전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준이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카페의 지킴이 공유처럼 넓은 어깨를 쭉 폈다. 언제나 두 팔은 책상 위로 올려두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불편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각이 진 자세로 수업을 들었다.


"현준이는 자세만 보면 꼭 수영 선수 같아."

"선수는 아니에요."

"수영을 하긴 하는구나?"

"살려고 하죠. 안 할 수가 없거든요."


3년째, 놀랍게도 현준이는 일주일에 세 번 새벽 수영을 다니고 있었다.

새벽이라는 예상 못한 시간대에 놀라고 3년째라니 입이 벌어졌다. 학생의 새벽시간이 공부 아닌 운동으로 채워지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다.


"오늘도 다녀왔니? 안 졸려?”

"졸려요. 이제 집에 가서 자야죠."


그러고 보니, 현준이는 늘 마지막 타임인 수업 시간 내내 총기가 살아 있었다. 졸음을 못 이겨 자세가 흐트러지는 일도, 꾸벅이며 눈을 반 만 뜨고 있는 경우도 드물었다.

오늘과 내일의 경계인 자정에 가까워질수록 아이들은 나른해지거나, 두 번째 하루를 시작하는 것 마냥 말짱해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책상 앞으로 쓰러질 때, 사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꾹 참곤 하던 그 시간에, 현준이는 목을 돌리며 같은 자세로 앉아 스트레칭이나 하던 아이였다.


그러니까 늦은 시간이 되어도 늘, ‘진짜로 깨어있던’ 현준이의 비기는 꾸준한 운동이었던 것이다. 멋진 사람들의 비밀은 언제나 기본에 충실하는 데 있다고…

현준이는 남들과는 다른 목표를 드러내거나,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강인한 정신력을 뽐내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학교 갔다 학원 와서 수업 듣고 집으로 가는, 친구들과 점심시간에 공차고, 쉬는 시간에 야식도 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좀처럼 졸거나 하지 않는 것, 깨어있어야 할 자리를 깨어서 지킨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다.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보통의 학생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가뜩이나 애정 가득하던 쌤의 시선은, 새벽(심지어 새벽 운동) 형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며 더욱 다정해졌달까.


체력이 국력, 아니 체력이 실력이고 어쩌면 학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도 감추지 않았으나 모두가 가볍게 뒤로 미루는, 누구나 한 번쯤 실천을 계획하지만 애써 언급하고 싶지 않은 진실의 실체를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성적과 등급으로 평가되는 입시생의 삶은 치열하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버티는 것이 관건인데, 어느 시점을 넘으면 결국 체력이 하는 일이다.

증명사진을 찍고 원서를 쓰고 자소서를 만드는 시기가 되면 학생들은 하나같이 들뜬다. 들뜬 마음을 추스르며 책상 앞에 앉으려면 두 배로 힘이 든다. 공부 습관을 유지해주는 힘. 그 힘은 의지이자 에너지이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움직여 다져진 체력이 밀어주어야 비로소 생겨난다. 체력이 뒤를 밀어줘야 한다.


'집중력이 좋다'는 것은 비단 책상 앞에서 오래 버티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입시생에게 소위 엉덩이의 힘으로 공부한 물리적인 시간이 쌓여야 하지만, 앉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채우는가는 저마다 상황이 다르다.

한정된 시간 안에 누가 더 깊이, 정확히, 제대로, 공부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다르게 실현된다. 책을 펴고 해당 교과의 공부로 몰입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 한 과목에서 다른 과목으로 옮겨갈 때 혹은 한 공부에서 다른 공부로 옮겨갈 때 각기 적합한 방법에 맞추어 학습 모드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 새 몰입으로 들어가며 지난 공부를 끌고 오지 않는 것, 공부하다가 흐려지는 이해의 정도를 스스로 감지하는 것. 예를 들자면, 영어 공부 시간에 수학 문제를 마저 풀지 않는 것이나 그 반대의 경우, 탐구 과목의 암기와 영단어 암기를 같이 하지 않는 것, 5분 남짓의 자투리 시간을 조각 공부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 평소보다 풀이 속도가 느려졌다는 걸 시계를 보지 않고도 알아채는 것 등이 입시생에게서 보이는 집중의 실제 모습이다.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하루 이틀 아닌 몇 년에 걸쳐 실천하려면 더욱 그렇다. 입시 공부를 시작하며, 적절한 운동을 주요 과목 학원만큼이나 중요하게 포함해하는 이유이다. 매번 공부를 할 때마다 의식적으로 집중력을 깨워낼 수는 없으니, 습관을 잘 들이고, 그다음부터는 몸에 밴 습관으로 버티는 것이다. '버티기' 위해 힘이 필요하다. 결국 체력이 결정적인 요인이다.


‘건강한 몸으로 공부하는 것’을 그저 문장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우선하는 실질적인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

시험기간만 되면 긴장 탓에 몸살에 시달리는 학생이 적지 않다. 몸이 아프면 계획한 대로 시험 대비를 하지 못하고, 결과는 속을 상하게 한다. 아팠으니 어쩔 수 없지만, 하나의 시험 점수가 미치는 영향은 한 번에 그치지 않으니 속상함은 3년을 가기도 한다. 중요한 평가를 앞두고 장염에 걸려 용돈 지갑을 들고 제 발로 병원을 찾아가 수액을 맞는 학생도 있다. 감기에 걸리기 싫어서, 고등학교 3년 내내 추석을 기점으로 스카프를 목에서 빼지 않거나, 식목일이 지나고서야 내복을 벗기도 한다. 독서실에 들어서면 종일 앉았던 허리가 아파 보조 벨트를 차는 학생도 있다.

꾀병으로 수업을 빠지면 휴식이 필요한가 하며 학생도 나도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애쓰는 중에, 힘이 달려 쓰러지거나 손을 놓치면 너무나 안타깝다. 건강상의 이유로 공부가 방해받지 않는 것은 입시생에겐 더할 것 없을 정도의 바람이고 경쟁력이 된다.


"수영! 심지어 새벽 수영이라니. 너무 멋있다!"

"안 멋있어요. 끌려가는 날이 더 많아요."


현준이의 보호자는 현준이와 비슷한 시간, 혹은 더 늦은 때에 귀가하시지만 다음날 새벽이면 언제나 먼저 일어나신다고 했다. 과음의 다음날도 예외는 없었다. 낮에는 학교와 학원, 공부와 과제 때문에 학생들이 결심을 한다한들 운동을 위해 시간을 낼 수가 없다. 늦은 밤 산책이라도 할 수 있다면, 주말에 한 번씩 몸을 쓸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니 새벽의 수영은 새벽이기에, 수영이기에 가능했겠지만, 현준이 혼자였다면 3년이나 지속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새벽에 아이를 깨워 꾸준히 운동해온 현준이 보호자가 타고난 새벽형이셨는지는 모른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기꺼이 눈을 뜬 건지, 그분 또한 갈등과 망설임의 몸부림 끝에 찬 새벽 공기를 마셨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만 내가 알게 된 것은 그 시간들 덕분에 현준이는 성실과 끈기, 그리고 슈퍼파워를 가진 깨어있는 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현준이가 새벽 수영에 두 말 못 하고 끌려다닌 이유는 그분이 시키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같이 수영만 다니면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하지 않겠다던 약속, 그 약속을 지키는 동안, 자신도 기꺼이 끌려 다닌 것이다. 현준이의 보호자는 얼마나 많은 말을 삼키셨을까. 한 아이의 보호자가 되고 나서야, 현준이 보호자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실감한다. 함께 하는 새벽 운동이라니, 그것은 자식의 인생을 위한 커다란 선물 같은 게 아니었는지.

그 덕분에 현준이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제 자리를 스스로 찾아가고 있었다.


"그럼, 새벽 수영은 언제까지 다니는 거야? 내년이면 고3인데..."

"수능 볼 때까지는 같이 다니고, 그다음엔 하고 싶은 대로 하래요."

"네 생각은?"

"잘 모르겠어요. 그냥 계속 다니지 않을까요?"



가벼운 대답.

몸이 익숙해진 시간들을 다시 초대할 것 같았다.



_


다른 날, 중2반 수업.


"민준아 꾸벅꾸벅 인사 그만하지. 오늘만 열 번 채우겠다. 어제 못 잤어?"

"새벽에 깼어요. 해도 안 뜬 새벽에."

"왜?"

"새벽에 아빠가 수영 가자고 깨워서요."


"민준아, 너 혹시 현준이 동생이니?"



총기 어린 눈빛을 쏘아 올릴 민준이의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나는 잠깐 본 듯도 하다. 귀여운 하품과 꾸벅 인사가 그 수업 내내 계속되었지만, 아름다운 결과를 기대하며 잠시 그대로 두었다.






__


<오늘의 학생>은 왜인지 모르게 아슬아슬하다.

학생 이야기를 하는 중에, 어느 보호자의 이야기가 길어진듯 하다. 나도 아침이면 알람을 두 번은 끄고서야 일어나는 사람이라서, 쓰고 읽으며 좀 찔린다. 현준이네 새벽 수영 이야기는 멋지지만, 우리 집으로 끌어오자면 위험하기도 하다. 하지만 보호자로서 갖는 다소간의 불편한 마음은 자식의 삶이 자신의 것보다 낫기를 소원하는데서 오는 것이니까.


하늘색 바탕에 가느다란 줄무늬가 들어간 맨투맨을 입고 있던 현준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선명한 기억만큼 또렷한 눈빛을 가진 한 명의 학생이었고, 그 학생은 입시가 끝날 때까지 씩씩했다.

공부를 잘하길 바라는 기대 앞에, 아이들의 건강을 우선 놓아두길 바란다. 그마저도 공부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 말했지만 아이들이 자기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돌보고, 그 일의 소중함을 배우려면 가장 가까운 이들이 도와야 한다. 반드시 새벽이어야 하고, 수영이어야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런 뒤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좋은 것을 시키기보다, 함께 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더 나을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우선 건강하라고 건네는 말이, 같이 건강하게 지내자며 내미는 손이, 아이에게 더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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