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는 셀프
고1이 되어, 3월의 첫 모의고사를 치르고 나면, 다가올 내신을 대비하며 빡빡한 일과를 하루라도 살고 나면, 학생들은 입시생의 삶이 실제 상황이 되었음을 자각한다. 과목 수가 늘고, 수업 시간은 길어진다. 프로젝트형 수행 평가 준비하는데 품이 제법 든다. 심지어 교과서의 권 당 무게도 더 나간다.
현실 파악과 동시에 후회와 불만도 터져 나온다. 학교운이 없고, 학원에서 예비 고등 준비를 제대로 안 해줬고, 중학교 때 학원을 못 다녔거나, 놀 수 있는 마지막 방학을 즐겼을 뿐인데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한다. 처음엔 무엇이든, 누구든 원망할 대상을 찾는다. 그러다 이내 방학에 놀아버린 자신을, 중3 내신을 소홀히 한 자신을, 단어 암기를 띄엄띄엄 쉬어간 자신을, 급격히 어려워질 줄 몰랐던 자신을, 타고난 머리가 역시 별로인 것까지 더해 원망하고 탓한다. 잘하고 싶은데 파도가 덮치니 막막한 것이다.
물론 이 시기의 혼란함은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든다. 체력도 달리고 자신감이 변덕을 부리는 중에도,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고 결국은 적응한다.
다만 적응하고 잘 지내게 되어도, 우리가 알아주어야 할 것은, 그들의 세계가 그리 친절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온기를 아끼는 어른들이 많다. 다들 긴장하고, 그래서인지 더 야박하다. 지나가는 말로 투정이라도 했다가는, 날 선 문장으로 되돌려 받기 일쑤다. 입시생들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은 그래야 옳다는 듯 냉소적이다.
'지금은 힘든 것도 아니야.', '너만 겪는 일이 아니고.', '각오해라.', '○○대 가려면!', '이 성적 가지고 엄살이 심하다.', '저쪽 ○○동에서는 말이지!', '그렇게 해가지고 졸업은 하겠니.', '네 성적으로는 갈 수 있는 대학은 이 표 안에는 없다.'
상투적인 협박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이런 말들은 학생들이 겁을 먹고 말한 이의 의도대로 따라오게끔,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만 하게 만들고자 함이다.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무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질풍 속을 지나며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민이 위로는 하늘을 뚫고, 아래로는 지구핵까지 깊이 파고 드는 시기인데, 권위를 가졌다는 어른들이 희망 버린 말만 내뱉으니 아이들은 기가 죽는다. 진짜로 뭘 해보기도 전에 가장 먼저 좌절을 경험한다.
학기초 수업 중에 어떤 선생들은 성적을 묻는다. 피차간의 낯선 분위기에, 수업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 내키지 않지만 성적을 말했다가 저런 말들을 듣고는 분함에 떨고 두려움에 울던 학생이 한 둘이 아니었다. 야만적인 일들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평소의 나는 아이들이 풀어놓는 험담을 들어주기는 해도 당사자인 학생과 다른 쌤, 그리고 나까지 모두를 보호하려고 말을 아낀다. 하지만 이런 일에는 흥분을 자제하기 어렵다. 참지 말라고, 함부로 말하게 두지 말라고, 듣지 말라고, 무시하라고, 콕 집어 '가르친다'. 요란한 빈말은 무시해도 된다. 닳고 닳은 말에 아이들이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고단한 일과를 감당하고, 학업의 부담을 조정하고, 무례한 협박에 상처받지 않으려면 단단해져야 한다. 주변의 손을 빌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이 선 곳을 바라봐야 한다. 아이들 안에 기준이 생기고, 분별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려면 입시생으로서,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보호자나 선생님 아닌 학생이 가져야한다.
입시에서도 수 많은 결정의 순간 선택을 하는 사람이 아이들 자신이어야한다.
현실적으로 입시의 마지막 선택은 최종 성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성적이 예상보다 잘 나왔다면, 학생은 넓어진 선택지를 누리는 기쁨을 얻는다. 반대로 기대 목표에 미치지 못했다면, 계획을 수정해야 하고, 아쉬움에 무거워진 발걸음을 떼야 한다. 기쁨도 아쉬움도 학생의 몫이고 선택도 수고도 학생의 책임이어야 한다.
인생의 목표나 고3 수능의 예상 결과보다, 거기까지 이르는 동안을 채운 하루하루에 아이들의 선택과 결정이 쌓여야 한다.
협박의 말이 도움될 리 없다. 정작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려는 동기와 다짐이다. 누군가의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을 가진 사람은 본인뿐이다. 아이들도, 학생들도, 입시생들도 그러하다. 기꺼이 감당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으름장이 아니라 격려와 응원 정도면 충분하다.
보호자들의 눈에 이제 막 중학생 티를 벗어낸 학생들은 서툴러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다들 그러하지 않은가. 이제부터 하면 된다. 입시생의 삶을 살도록 주도권을 쥐어주다.
직접적인 지시와 실패 가능성을 줄인 계획으로 안전하고 빠른 길을 추구하는 건 만연한 방법이다. 결국엔 남을 따르기보다 스스로 고심하던 쪽이 오히려 특별해진다. 선택하고 책임질 기회를 경험하면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질 것이다. 성적을 올리는 것은 성공적인 입시의 충분조건이지만, 입시의 과정을 잘 꾸리는 데 성적 말고도 크고 작은 요인들이 많다. 보호자의 선택을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결정을 미루다가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학생들이 직접 해야 한다. 입시 정보에 관심을 갖고, 주변에서 하는 말을 귀담아듣되 자신에게 맞는 정보를 가려내는 것도 학생의 일이어야 한다. 스스로 가려낸 선택과 판단이 쌓이고 모여서 흔들리지 않는 최종 결정에 이른다.
아이들은 책임을 진다. 성공에서 오는 칭찬이나 성취도, 실패의 쓰라린 경험과 질책도 온전히 자신의 몫이라는 걸 배워간다. 그 책임의 무게를 모르는 아이들은 없다. 당황하고 물러서는 편이 간단하다는 것도 알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기 위해 용기를 낸다. 책임을 잘 감당하려고 나름대로 애를 쓰고 지혜를 구하고 진지하게 고민한다. 자신의 결정이 스스로를 위해, 보다 나은 선택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의무만 강요하지 말고, 선택하고 결정짓는 책임의 권리도 아이들의 손에 쥐어주길 바란다. 그래야 말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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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고1, 고군분투 고2를 지나 삶의 주인된 입시생 유진이와 지인이의 이야기다.
방학을 맞아, 교육청 주관으로 현직 고등학교 진로 담당 책임 교사들이 진행하는 박람회가 열렸다. 선착순으로 인터넷 접수 신청을 받고, 선착순 입장을 통해 상담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경험과 자료가 풍부한 현장 전문가인 만큼 어떤 상담의 예측보다 결과가 잘 맞는다는 후기가 있었고, 기회가 좋아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어떤 학생들은 보호자에게 전했고, 다른 학생들은 흘려들었다. 유진이와 지인이는 서로에게 새벽 알람을 울려 선착순 접수에 성공했고, 주말 늦잠을 포기하고 자료가 담긴 가방을 챙겨 새벽같이 코엑스로 향했다. 선착순 입장을 위한 줄을 서기 위해서.
"쌤, 학생은 우리밖에 없었어요."
상담을 마치고 와서 전한 첫마디였다.
줄 선 대부분이 보호자로 보이는 어른들이었지만, 자신들은 학생이었고, 당사자로 '중요한' 자리에 있었다는 뿌듯함에 아이들은 기뻤다. 게다가 직접 찾은 학생들이 기특하다며 담당 교사들은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상담해주셨다.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는 자리에, 가장 잘 아는 당사자가 등판했으므로, '만약'이 아닌, '사실'을 근거로 질문하고 답을 얻었다. 알찬 상담이었다. 대안과 보완할 점을 상세히 받아 적어온 아이들은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고, 상담에서 추천받은 학교로 지원했다. 불안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으며, 자신 있게 지원했다. 그 모든 순간을 아이들은 직접 만들어갔다. 과정은 근사했다.
고 3이 그럴 시간이 어디 있나, 공부해야지.
고3이니까 직접 하는 게 맞다. 외부 요인에 이리저리 끌려다니지 않고,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으로 골라 가질 수 있으려면. 해로운 것을 거부할 수 있으려면. 직접 듣고 보고 고민해 결정에 이를 수 있으려면.
힘든 공부만 하고, 결정적인 선택은 다른 사람이 하게 된다면, 누군들 즐거울까. 직접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을 때 책임지고 싶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이런 입시관과 태도는 보호자들의 불호에 부딪치곤 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꽤 괜찮았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태도를 가진 학생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다. 스스로 선택한 입시생의 수업시간, 학생들의 눈빛은 한겨울 찬바람에도 쨍하니 빛난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힘으로 2년반, 3년의 시간을 보내면 좋을까. 자신의 선택들이 모여 이룬 결과로 만족하는 대학생이 될 수 있다. 또다른 결정들이 모이면 대학생이든 아니든 행복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들이 앞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진학지도표 ‘안'에 넘쳐날수도, 그 ’안'을 뛰어 넘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