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될 거야
다온이는 한 주의 마지막 수업 후 돌아가는 길이면 이렇게 인사를 했다.
금요일 저녁이라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인사지만 다온이의 시간표 사정상 그 주의 마지막 수업이 수요일 저녁이어도, 주말을 끼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지인들과는 금요일이 되자마자 아침부터 서로에게 불금을 외쳐주지만, 학생에게서 듣기는 무척이나 낯선 인사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씩씩한 목소리로 건네주는 인사다운 인사 자체가 드물다. 인사는 가볍고도 정다운 일이지만 부눚한 교실에서는 쉽게 생략되고 만다.
잘 가, 다음 시간엔 교재 잊지 말고, 과제도! 춥다 옷 여미고 가, 늦으면 안 된다. 필통 챙겼니. 그래, 다음 시간에 보자!
수업 후 돌아서는 아이들 등뒤로 칼칼해진 목소리로 외치는 말들은 나의 인사였고, 가벼운 목례나 '네~'하는 말인지 호흡인지 모를 기척을 흘리는 것이 아이들의 인사였다.
생략된 아이들의 표현이 그들의 진심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간지러운 살가움은 피하는 시기니까. 혹시라도 쌤한테 곁을 내주었다가 과제나 잔소리가 두 배가 될지도 모를 일이고. 어서 교실 밖으로 나가 친구들하고 잠깐 이야기도 하고 편의점도 들러야 하니 바쁘기도 하다.
아이들의 사정을 헤아리는 편에 서려고 노력하지만, 만나서 안녕! 헤어질 때 안녕~ 하는 인사가 아쉬울 때가 있다. 그러니 어쩌다 한 번씩, 경쾌한 인사가 먼저 들려오는 날이면, 매우 반갑다. 그런 날이면, 수업을 온전하게 잘 마무리하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함께 수업의 문을 닫은 것 같은 느낌적이 느낌이랄까.
다온이의 주말은 꽤 즐거운가 짐작해보았다.
공부는 덜 하고, 늘어지게 푹 쉬거나, 게임을 원 없이 하겠지. 친구를 만나든지, 아니면 가족과 여행을 가든지 어떻게 보내든 본인의 마음에 드는 시간인 모양이었다. 바쁜 주중과 대비되는 느슨한 설렘인가 했다.
한창 바쁘게 보내는 주중에 주말을 잘 보내라는 인사를, 그것도 학생의 목소리를 통해 듣게 되니, 여유로운 주말 시간을 한 번 더 떠올리며 으쌰으쌰 하게 되었다.
다온이의 인사, 글자 그대로 안부와 다정함이 '건네' 졌다.
구체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낯선 인사는 와 닿았고, 다온이와 나 사이는 얼마 안가 편안해졌다.
인사를 잘하는 학생은 드물기 때문에, 다온이가 그 인사로 인해 얻는 후광 효과는 엄청났다. 분명히 수학 시간에도 성실할 것이다, 학교에서도 태도가 좋을 거야, 심지어 집에서 반찬 투정도 안 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 뿐 아니라 다온이를 아는 선생님들의 시선은 좋기만 했다.
어느 날 다온이가 수업 시간이 훌쩍 지나고서야 교실에 나타났다. 과제도 교재도 준비되지 않았다. 밖에 있다가 후폭풍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출석만 한 것이었다. 물론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끝까지 설명할 기회를 얻은 것도 평소 인사를 잘 한 덕분이었는데, 한참을 설명할 것처럼 그러더니 이 한마디를 하고는 말을 그쳤다.
내가 겪는 학생들의 ‘잘못’이라는 것들은 예측 불가 천재지변의 수준이 아니다. 그럴 만 한 사정을 그들의 입장에서 듣다 보면 이해 못 할 일이 거의 없다. 다만 나는, 주의를 주는 역할을 맡은 쌤이니 봐준다는 생각을 들게하기보다, 혼을 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강사 초기에는, 시간 내내 혼을 낸 적도 있다. 초보 강사의 최선이었지만, 그래 봤자였다. 학생도, 우리가 처한 상황도 내가 말하는 대로 반듯해지지 않았다. 혼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상황에서 주의를 주고 혼을 내는 것보다, 더 삐르고 효과적이며 평화로운 해결 방법이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학생들에게서 나온다.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다음에 해오겠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일단 인정 만으로도 상황은 더 커지지 않는다.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실수와 잘못은 그럴 줄 알았다 싶은 일들이 더 많고, 그 말인즉슨 그리 심각하거나 되돌릴 수 없는 엄청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생이 의도적으로 수업을 방해하거나 작정하고 정해진 시간을 망치려는 것이 아니라면, 인정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다음에 그러지 않겠다 다짐하면 된다.
기분 나쁜 상황을 빨리 털어내는 것이, 계획된 수업 과정을 무사히 끝내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교실 안의 모두는 경험으로 잘 안다. 뚱하게 앉았거나 훈계를 반복하면서 피차 점점 더 구겨질 필요가 없다.
생각할 시간을 주고, 소리내어 말하길 기다린다. 학생이 잘못을 인정하는 말을 토해내도록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불편한 마음을 털어낼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하기도 듣기도 싫은 말이 벽이 되는 동안 후회가 머릿속을 맴돌고, 미안하지만 미안하다 말하지 못한 찜찜함이 아이들의 속마음을 헝클지 않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적당히 소리 한 번 지르고 표정관리가 안 되는 상태에서, 구겨질대로 구겨진 아이들을 놓고 수업하자면 앞에 선 선생님의 목소리도 힘을 잃는다. 수업이 학생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갈 리도 만무하다. 그날 수업은 그렇게 망쳐진다.
그럴 기회가, 그런 연습이 충분하지 않았을 뿐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의 말을 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책장을 넘기는 일은 단순하다. 창피한 일은 더더욱 아니다.
한두 마디 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괜찮은 '척' 하는게 아니라 진짜 괜찮은얼굴이 된다. 다른 누군가의 가벼운 농담에 같이 웃으며 교실 안에 함께 앉을 수 있게 된다. 잘못은 없던 일이 되진 않지만, 나쁜 일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사과할 줄 알면.
인사를 잘 하던, 기꺼이 웃으며 예의를 갖추던 다온이는 죄송하다는 말을 꺼내는데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다온이는 자신에 대한 예의를 지켜낸 것이라 생각한다.
죄송하다 말하는 학생들에게, 그렇게 말해주어 고맙다고 답한다. 불편한 상황에서 입을 뗀 경험이 유익하게 남길 바란다. '다음'이라는 기회를 스스로 얻어 내고, 그 기회를 바탕으로 자기 자신이 더 나아지는 경험을 하게 되길 바란다.
그날 다온이는 길게 혼나지 않았고, 대답하고 문제도 풀면서 수업도 잘 들었다. 다만 속이 상했는지 부은 얼굴을 금방 펴진 못했다. 조용히 가겠네… 혼자서 생각했다.
반가운 목소리였다. 나는 다온이가 문으로 나가기 전에 얼른 눈을 맞추고 웃어주었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를 바라며. 다온이는 앞으로 실패와 좌절도 씩씩하게 겪어내겠구나,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단단해졌다. 익숙한 주말인사가 한 주의 한 가운데서 다시 한 번 나를 기쁘게 했다.
교실의 아이들이 그렇게만 지낸다면, 잘못을 하고 그 잘못을 돌아볼 수 있다면, 어색한 상황을 모면하려는 빈 말에 사과에 진심을 담을 줄 알게 된다면, 그 아이는 잘못을 바로잡은 사람만이 아는 단단한 몸과 마음으로 살게 될 것이다.
인사를 잘하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데, 떡보다 빵을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인사 잘하는 이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인사하면 좋겠다. 간지럽다 생각말고, 그 말들이 자신에게서 먼저 흘러나가길 즐기면 좋겠다.
유독 사과의 인사에만 인색할 이유는 없으니, 미안할 때 미안하면서 그 말을 감추지 않고 건네면서 아이들은 자신의 성장을 더욱 선명하게 목격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미안합니다.’ 가 모두 입에 붙은 말이 되면 좋겠다.
건네는 인사가, 상대에게 건너가는 그 말들은 세상을 돌고 돌아 자신에게도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