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과 수업사이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늘 학원 숙제를 들고 다닙니다.
학교에서도 학원 숙제, 집에서도 학원 숙제, 학원에서도 못다 한 학원 숙제를 합니다. 학원 숙제가 정말 이렇게 많은가요? 왜 항상 숙제를 밀릴까요? 미리 얼른 해둘 수는 없나요? 숙제 얼른 하고 따로 공부더 해야지 않나요. 학원만 보내놓으면 해결될 일인 줄 알았는데, 날마다 숙제 잔소리를 거를 수가 없습니다. 그냥 혼이나 든 말든 내버려 두고도 싶습니다. 학원을 한 번도 안 다닌 아이들 중에는 학원 숙제 때문에 싫은 소리를 하는 친구를 먼저 경험하고, 숙제란 그런 골치 아픈 것이구나 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마는 경우도 많습니다.
보호자의 관여 없이 스스로 숙제하며 학원을 다닌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습니다.
그러려면, 대체 그 과제, 숙제가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수업시간에는 교과 내용을 새롭게, 처음으로 혹은 깊게, 다시 배웁니다.
학교보다 다소 앞선 진도를, 학교 수업에서 놓친 부분을, 어려워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관련하여 좀 더 심화된 부분을 배웁니다. 학생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학원의 수업은 교과내용을 1대 1로 소개받는 자리와 다름없습니다.
새 친구를 소개받은 자리에서 안녕하세요~ 하고 돌아서면 이전과 다름없이 다시 남이 되고 말지만, 이름을 묻고 눈을 맞추면서 아는 척을 한 번 더 하고 나면, 어쩌면 단짝이 될지도 모를 인연이 시작됩니다. 새로 배운 교과의 제목과 주제를 낯선 이름인양 소리 내어 말해보고, 설명을 한 번 더 돌아보면 다음에 만났을 때 더 이상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을 마주하지 않게 됩니다.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되므로, 어느 정도 알고 난 후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가끔은 지름길이 됩니다. 빠르게도 가고, 쉽게 가기도 하는 지름길이 되면 그 길은 자신만의 길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볼 때마다 안녕하세요, 하면서 첫인사를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나아가 내 것으로 삼고,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배움입니다. 배움의 과정은 배움의 당사자에게만 온전히 유익합니다. 학생들이 배움이 일어나는 과정을 방법론적으로 이해하고, 이해를 바탕으로 과정을 경험할 수 있게 이끌어주시길 바랍니다.
학원에 따라, 수업에 따라 주 2회든 주 3회든, 주말 특강에 해당하든 수업 일정은 제각각입니다.
중요한 것은 수업의 횟수가 아니라 그 수업들 사이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가입니다. 학원에 자주 가기만 하면 공부를 많이 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학원을 다니는 것 자체가 목적이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성적 향상이 수강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목적이라면 출석 개근만으로는 어림없습니다. 하나의 수업을 마치고, 그 수업 내용을 복습하며 내 것으로 삼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난 후에 다음 수업을 맞아야 합니다. 때문에 학원 스케줄을 세팅할 때 각 수업 후 복습하는 시간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새로 배운 것을 자신의 말로 이해하고, 충분히 익히도록 반복하고, 외울 것은 외우고, 제대로 공부했는지 문제를 이용해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책상 앞에 앉아 종알거리며 수업을 복기하고, 손을 놀려 필기하고, 문제를 풉니다. 틀리면 틀리는 대로 공부가 어느 정도 되었는지 체크할 수 있고 맞으면 맞는 대로 기분 좋은 도구가 됩니다.
하지만 아이들 주변에는 복습에 방해가 되는 수많은 요인들이 있습니다.
선생님들도 현실을 잘 알기 때문에 방해물들의 공격에 맞서 어떻게든 복습을 나아가 자기 공부를 시작하도록 무기를 들려 보내는 것입니다. 누군가 미리 수업 내용을 갈고닦아 각 잡아 만들어둔 손쉬운 복습의 방법이 과제입니다.
학원의 과제는 해당 진도의 핵심을 복습하고, 꼭 알아야 하는 부분을 반복하도록 계획합니다. 그래야 학생의 도태 없이 다음 진도를 나갈 수 있으니까요. 교재나 문제집, 프린트물이 이를 대표합니다. 오늘 진도에 관한 문제를 풀어오는 것, 핵심 내용을 정리하고 다음 시간의 퀴즈에 대비하는 것, 단어를 외우고 셀프 테스트를 반복하는 것 모두 복습이자, 공부의 면면이고 우리는 이런 것들을 모두 숙제, 과제라고 부릅니다.
수업 시간이 길어 교과 내용이 많다면, 진도를 많이 나갔다면 과제는 많을 것입니다. 늦어져 급하게 진도를 쫙 뺐다면 과제가 많을 것입니다. 제법 잘해서 실력의 점프를 기대하는 구간이라면 과제는 네, 많아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과제의 기능을 이해하고 나면 과제 내 문제 개수와 과제에 걸리는 시간이 비례하진 않습니다. 핵심 원리 파악이 끝나면 기계식 반복은 빨리 해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양이 많은 것과 어려워 접근이 힘든 것 모두 어마어마한 과제로 묘사되지만, 무얼 해야 하고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된다면 달라집니다. 정말로 밤낮으로 끼고 다녀야 할 만큼, 엄청난 양의 과제는 학원에서도 내어주기 어렵습니다.
'너무 많다'와 '하기 싫다' 사이에 묶여 질질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부를 위한 과정이자 도구로 과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수업 중 교과 내용이 완벽히 숙지되었거나, 학생에 따라 수업의 텀이 짧다면 굳이 과제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어리거나, 이 체계를 이해하기 어렵다면 배움 과정에 대한 경험, 특히 복습이 체화되도록 자연스레 반복해야 합니다. 처음 시도할 때는 양조절을 해서라도 성실하게 해낸 과제들이 쌓이고, 성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경험해야 합니다.
몸에 익은 방식은 곧 자신의 선호나 조건에 맞도록 활용되고, 이후에는 굳이 과제를 내고 검사를 하지 않아도 원활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실력도 향상하고 진도 속도도 빨라지고. 네 성적도 오릅니다.
어쩌면 다 아는 얘기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지도 못한 학생이 많습니다. 고3이 되어서야 듣고는 무식하게 달려들기만 한 자신의 시간을 안타까워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뻔한 소리 같다고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하기를 미루지 않길 바랍니다. 이 단순한 비밀을 어릴 때 알 수록 유익하겠지만, 언제가 되었든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온전히 아이 안에서 힘을 발휘할테니 늦은 때는 없습니다. 한 번 이야기 했다고, 그 날 부터 척척 과제를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열심히도 좋으나, 성실하게 해낼 때 칭찬하시길 바랍니다. 과제가 좋은 표식이 되어줄 것입니다.
혼나기 싫어서 학원 가기 직전에야 허겁지겁 숙제를 하고, 어쨌거나 꼬박꼬박 그렇게라도 한다면, 이 또한 반복하는 동안 쌓여서 학습이 되고, 수월하게 수업을 따라가는데 기여할 것입니다. 성적이 오를 수도 있습니다. 안 하는 것보다는 백 배는 낫습니다. 다만 타성에 젖어 좀비처럼 살아남은 학원가의 아이가 아니길 바랍니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 배움의 주인공인 학생 스스로가 이유도, 과정도 알아야 합니다.
과제를 도구로 여기고 스스로를 위해 유용하게 사용하길 바랍니다. 마음속 작은 스위치를 눌러, 현명한 다짐을 스스로 하는 기회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