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눌러 딛고 나가기, 달려 나가지 않기.
영어 공부에 관한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시작이 되어도 늘 어렵습니다.
전문가는 너무나 많지만 나에게 딱 맞는 선생님을 만나는 일은 늘 요원하고, 공부를 아무리 오래 해도 마음껏 뿌듯할 만큼의 성취를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영어라는 과목이 또 하나의 세상을 배우는 통로이기에 실은 모두의 요구와 필요가 다를 텐데, 모두가 같은 기준을 목표 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양한 영어 시험, 평가들은 공부의 과정이자 수단으로 보면 나을 텐데, 그 자체를 목표이자 결과로 여기는 시선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교과목으로서의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능 영어 능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학생들의 부담을 덜고, 과도한 목표 점수 설정으로 이 과목의 공부 자체를 포기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다른 것 다 제쳐두고 그저 하나의 교과목으로만 다루기를 권했습니다. 하지만 영어 실력이 일정 수준에 올랐을 때, 영어 공부를 알차게 해 두었을 때, 영어 시험 100점 이상의 기쁨을 누릴 수 있고, 그 이상의 기회를 잡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어서 서둘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하니 기대하며 멀리 보고 가야 함을 말씀드립니다. 학생 때부터 말입니다.
영어는 선행 학습을 하는 과목이 아닙니다.
선행이라 할 수 있는 학습의 범위가 명확하기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과목으로서 교과서를 따르는 '진도'는 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영어 교과서만 해도 대략 10종입니다. 하나의 학교에서 하나의 교과서를 배우는 것으로 해당 학년의 학습을 다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선행을 위해 10종의 교과서를 다 공부하려 든다면, 시간도 노력도 아주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게 공부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성실함은 당연히 우수한 평가 결과로 돌아올 것입니다.) 교과서의 진도에 끌려거나, 교과서를 앞서려 들기보다 해당 시기에 배워야 하는 교육과정의 내용과 목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영역별로 자신의 수준에 맞는 교재를 채택해, 배우고 익혀 나가야 합니다. 학원의 커리큘럼을 따라, 혹은 자기 주도의 학습으로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면 됩니다. 다 하고, 그다음 또 다 하고, 그다음이 있을 뿐 따라잡거나 앞서나가야 할 과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법을 처음 배우는 일은 평생이 될지 모를 영어 공부가 헤쳐갈 길을 내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 잘 닦아놓으면, 이후엔 그 길 위로 마음껏 뛰고 걷기만 하면 됩니다. 가능하면 처음에 내는 길이 단단하고 고른 길이 되게 노력합니다. 기회가 되어 더 공부하게 되면, 혹 약해졌거나 구멍이 난 부분을 메꾸며 다시 나아가면 됩니다.
한 권의 교재로 말끔하게 닦아낸 길이 영어를 공부하는 내내 자신만의 든든한 실력일 수 있습니다. 문법 공부가 길어지는 이유는 구멍이 난 채로 길을 내었기 때문이고, 해도 해도 어려워지는 이유는 구멍이 난 줄도 모르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급하기보다 꼼꼼하길, 성실하고 묵묵하길 권합니다.
정규 교육 과정에서 지정한 학년별 어휘장이 있습니다. 교과서에 반영되어 독해 지문의 난이도가 결정되고, 해당 어휘들을 구별해 실은 시중의 교재들이 단계별로 나와있습니다. 단계가 다르더라도 의미와 활용범위, 난이도에 따라 겹치는 단어가 있으므로, 정확히 선을 그어 나눌 수 없습니다. 무조건 어려운 교재를 선택해 영어로도 한글로도 무엇을 설명하는지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암기해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영어 공부는 앞으로 달려 나아가기보다 팔을 벌려 능력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필요한 기본 문법, 적정 수준의 어휘력, 듣기에 익숙해지기, 낯선 단어들 틈에서 필자의 생각을 읽어내는 독해력에 해당하는 개인의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해하고, 확인하며 기본기를 다지는 것이 우선입니다. 중학교 학령의 시기에 비교적 부담이 없는 영어 교과서를 통해 학습 방법과 교육 과정을 이해하고, 동시에 자신에게 맞는 교재와 수업으로 실력을 쌓아가야 합니다. 학원의 커리큘럼의 도움은 받되, 자신만의 속도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주도 학습을 한다면 과정 하나하나를 분명히 학습하였는지 체크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본기가 다져진 다음이라면 내신, 수행, 수능, 토플, 토익 등 무엇이든 간에 다양한 시험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기술을 익히고, 훈련하면 그만입니다.
자기소개로 be 동사를 배우는 영어 학습의 시작부터, 추론하여 빈칸을 채우는 3점짜리 수능 영어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은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매우 개인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학습 과정입니다. 범위도 한계도 명확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작했다면 누구나 잘할 수 있습니다. 학년을 거슬러 오른 시험지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함을 선행이라 한다면 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선행이라는 말이 아무런 의미가 되지 않는, 자신만의 속도를 발견하고 그에 맞춰 공부하길 바랍니다. 일정 수준에 다다른 영어 실력,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