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하고 싶은 마음, 출발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봤지만 관계자는 늘 자리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엘리트 축구팀의 겨울 방학은 동계 훈련과 대회 참가로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시즌이었던 것이다. 운동선수들이 추위를 피해 따듯한 곳으로 가 훈련한다는 정도야 알았지만, 이 겨울에 이렇게나 대회가 많은지, 전지훈련의 기간이 그리 긴지도 몰랐다. 모를 수밖에 없었지만.
집 근처에 축구부가 있는 중학교가 있어, 그곳부터 떠올렸다. 중학교 발표가 한 달 남짓 남은 시점이니 배정은 끝났겠지만 혹시나 싶어 통화를 계속 시도했다. 학교 대표 전화를 받으시는 분들은 축구부에 관한 어떤 질문에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축구부는 학교 소속이지만, 운영은 별개인 가보다. 그런 걸 알아가기도 바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을 덧붙이자면, 초등학교 고학년 엘리트 선수들의 중학교 진학은 6학년 초반이면 거의 결정된다. 경우에 따라 결정 시기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렇다. 주요 경기에 참관한 지도진이 영입을 결정하거나, 학생이 직접 학교로 찾아가 테스트를 받기도 한다. 2학기말 무렵이면 신입생의 구성은 끝난다. 유스팀으로의 진학도 유사한 과정으로 진행된다.
그러니, 겨울 방학에서야 그것도 전화기만 붙들고 있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우리 아이에겐 해당하지 않았고 뒤늦은 아쉬움은 소용없는 일이었다.
클럽팀으로 눈을 돌렸다.
코치님의 소개로 경기 지역의 한 팀에서 첫 번째 테스트를 받았다. 측정식 테스트 몇 가지를 하고 기존의 팀 트레이닝에 참여해 얼마나 소화해 내는지를 보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관리부장님과 상담하며 비용, 훈련 과정 및 스케줄, 레슨, 학교 생활에 대한 주의 사항 등 전반적인 클럽 선수팀의 운영에 대해 들었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었고, 운동장의 눈을 모아둔 눈 언덕이 트랙을 따라 이어져있었다. 다른 선수들의 뒤를 따라 달리던 아이가 눈 언덕 위로 달려가 엎어졌다. 한차례 토한 아이는 곁에 있던 코치가 건넨 생수를 한 모금 물고는 다시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저 멀리 뛰고 있는 아이의 얼굴색이 분단위로 바뀌는 걸 보면서, 실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참고 뛰는 게 대견하기도, 과연 아이가 버텨낼 수 있을까 우려가 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 차 안은 고요했다. 그이도 나도, 아이도 각자의 속마음은 너무나 시끄러웠을 밤이었다. 우리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말을 아꼈다.
“너무 짜증이 나더라고요.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힘이 드는 거예요. 왜 이제야 여기서 이러고 있나 생각이 들고.”
아이는 그날 오는 내내 입을 꾹 다문채 부어있던 이유를 다음 날에야 말했다. 그러고는 며칠 뜸했던 아침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테스트를 받고, 자세한 상담을 하고 나니 상황을 파악할 만큼의 공부를 한 것 같았다.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막연함을 덜어냈다.
그이는 본격적으로 팀을 찾아 나섰다.
우리의 기준은, KFA 서울 리그에 참여하는 팀일 것, 훈련 장소가 아이 혼자 대중교통으로 이동 가능한 지역에 있는 팀일 것. 이 두 가지였다.
joinKFA 사이트와 앱을 이용하면, 지역별 리그와 등록 팀에 관한 유용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깜짝 놀라게 된다. 이렇게나 많은 아이들이 축구 선수로 살며, 공을 차고 있다는 현실에.
아이의 현재를 수용하는, 우리의 조건에 부합하는, 그런 팀은 많지 않았다. 신입생 구성이 끝났다거나, 예비 중1은 뽑지 않는다는 팀을 제외하니 선택지는 더 작아졌다. 그럼에도 훈련장에 나오라는 팀이 있었고, 약속을 잡았다.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된다면, 적어도 겨울 방학이 오기 전에 움직이는 것이 나을 듯하다.
지도자들의 피드백은 같았다.
아이의 능력에 대해 속단하지 않고, 가능성을 부풀리지도 않았다. 재능이나 개인기에 대해 말하기보다, 아이의 의지를 강조했다. 한 번의 테스트로 입단을 결정하기보다,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 다녀보고 아이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주고자 하셨다. 늦었기에, 그래서 아쉬울지 혹은 그래서 더 열심히 할지는 전적으로 아이에게 달린 일이니. 단식을 해가며 부모님과 훈련장에 온 아이들이라도 사흘 만에 그만두거나, 하루 만에 연락 없이 사라지는 일이 빈번하다 했다.
사춘기 아이들의 특성을 이해하는 지도자를 만나며 바짝 긴장했던 어깨의 힘이 풀렸다. 가르치는 사람의 시선이 학생의 입장을 먼저 담아야 한다 여겨왔지만, 운동부의 세계는 무력이나 권위로 통제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고 싶다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가장 무거워지는 지점이기도 했다.
아이의 의지를 강조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 ‘의지’가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지만, 한 편으로 문 밖의 세상이 지금 이 시기의 아이를 스스로 선택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혹은 그런 노력을 할 힘을 가진) 한 명의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것이기도 했다. 어느새 이만큼 성장한 아이였다.
다행히 방학 기간이 남아 일주일 동안 훈련에 참여하기로 했고, 방학이 시작할 때 약속했던 세 번의 테스트 중 마지막 기회로 삼았다.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도망도 포기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이는 입단 원서를 제출했다.
선수 등록 절차가 시작되었고, 임시 훈련 참여의 첫날은 축구선수로서의 삶을 살게 된 소중한 첫날이 되었다. 등번호를 받고, 선배들 틈에 섰다.
“솔직히 처음부터 지금까지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그러지 않은 것 같아요. 계속하고 싶었으니까.”
아이의 변함없는 마음은 긴 겨울 방학을 보낸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겨울은 해피엔딩, 이제 행복 축구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