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으로 쌓은 성
부모다운 행보가 필요했다.
아이에게 좋을 환경을 열어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어른이자, 가장 큰 애정을 품은 보호자로서 말이다. 해맑음은 아이가 맡고, 고민은 우리의 몫이었다. 과연 대부분의 사람들이 늦었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아이가 축구선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최선을 다해 객관적으로 상황을 가늠하려 했다.
우선, 코치님과 상담을 했다.
선수 경험에, 코칭, 무엇보다 우리 아이가 운동하는 모습을 가장 오래 지켜보셨으니 가장 먼저 뵈었다. 코치님의 의견은, ‘지금은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다.’였다. 엘리트 팀에 들어가기 쉽지 않을 테고, 들어가도 실력차이가 분명 많이 날 것이지만, 아이의 현재의 실력이 재능이 없기 때문인지 어릴 때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라셨다. 현실의 벽은 높지만, 오히려 지금 이 시기라면 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에 집중해 주고, 기회를 주는 것이 후회 없는 선택일 것 같다고도 하시고. 운동 자체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단단히 마음먹는 일이 더 힘들 거라 염려하며, 아이의 입장에서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다. 상담의 자리를 마련해 고민을 나누는 부모인 우리를 격려하시기까지. 코치님의 조언을 디딤돌 삼은 덕분에 우리는 아이의 꿈을 불확실한 미래가 아닌 가능성 있는 미래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유소년 축구 일을 하신 지인을 만나기도 했다.
첫 반응은 역시 늦었다, 였고. 하지만 그 나이 아이를 억지로 눌러 앉힐 수 없으니 에둘러 현실을 보여주면 어떨까 권하셨다. 마침 울진에서 중등부 선수들의 대회가 있었고 경기하는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 그이는 아이를 데리고 밤길을 달려 울진으로 향했다. 한두 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 U15 선수들의 모습을, 움직임을, 경기를, 열기를 현장에서 직접 보고 돌아왔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막연하고 조심스러운 이 일의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다. 그이와 나는 밤마다 대화하며 중요한 조언은 공유하고, 전날의 입장을 고쳐 세우고, 고민의 항목을 수정하기도 했다. 지속할 수 없는 의지나 아이가 포함되지 않던 다짐들은 하나 둘 지워갔다. 다들 하는 말, 남들 하는 말을 많이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누구 한 사람의 말을 그대로 따를 수 없었다. 메시가 와서 조언한들 그 말이 정답이었을까. 우리의 고민 끝에 ’다른 누구 때문에‘가 붙어선 안된다고 기준을 정하니, 넘치는 말들도 하나 둘 가려졌다.
진짜 진짜 축구선수 말고, 동네에서 축구로 1등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아이에게 물어봤다. 그런 목표라도, 멋진 것은 다름없으니 그렇다면 개인 레슨을 시켜주마 했다. 보통의 중학생이나 축구는 잘하는 중학생으로 살면 어떨까 하면서.
“제가 타고난 선수가 아니라는 거 알아요. 그렇지만 노력해서 잘하게 되는 선수도 있잖아요. 잘하는 팀이 아니어도, 그런 팀에 지금 갈 수도 없지만, 열심히 해서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 축구를 하기만 하면 돼요.”
자기 객관화라니.
열네 살, 엄마 앞에서라면 자신의 약점이나 부족한 점을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나이다. 기가 죽거나 과장되게 버틸 만도 한데, 아이는 축구에 대해서만큼은 솔직하게 말했다. 동네 축구 1등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하며 아빠 엄마의 다음 스텝을 가만히 기다렸다.
사실 그이는 축구를 좋아한다. 이제는 하는 것보다 보는 쪽을 더 즐기지만, 어딜 가도 있다는 팀의 오랜 팬이기도 하며 축구에 대해서는 큰 소리로 떠들지 않을 뿐 모르는 게 거의 없다. 어쩌면 아이가 축구에 빠져버린 건 그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2학년 때 선수반 에피소드를 겪으며 마음이 크게 상해버린 나와 달리 그이는 그 상황을 현실적으로 인정했고, 아이의 운동선수로서의 조건도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그저 즐기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적극적으로 취미반 수업을 찾아 계속 보내기도 했다. 그런 그이가 아이의 중대 발표에 대해 한 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멋지다’였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걸 하겠다고 달려드는 아이의 모습이 멋지다고 했다. 자신의 열네 살 때보다 낫다며, 부럽다고. 고민을 하는 중에도, 멋진 건 멋진 거라고.
찐 T인 그이의 감탄, 자식에 대한 객관적 시선 유지는 이렇게나 힘든 일이다. (아니,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멋진 건가?!)
나로선 운동선수의 부모들이 강하고 세다는 선입견이 있었고, 그들의 영역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일이 가장 겁이 났다. 땡땡맘의 역할은 너무나 고단하기에…… 하지만 나의 걱정이 아이가 꺼낸 말보다 크지 않았다. 축구 선수로 살고 싶다던 그날의 대화는 감동이었으며, 감동이 일으킨 힘은 내게도 전해졌다. 나름의 고민, 저만의 열정은 아이의 성장 자체였다. 우리 집의 가장 작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세우려는 것을 보며 막연한 중에도 나는 기뻤다.
열네 살, 중학교 1학년은 축구 선수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일지 모르지만, 꿈을 펼치기에 늦은 나이가 아니다.
경쟁의 세계이나, 싸우러 들어가기보다 도전의 마음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유망주로 시선을 한 몸에 받는 학생선수가 아니지만, 학생인 동안 꾸준히 배우며 성장해 성인이 될 즈음에 목표에 더 가까워지겠다는 바람을 갖는다면?!
꿈으로 한 걸음 들어서는 아이의 모습, 그라운드를 누리는 모습을 상상하니 좋았다.
하다가 멈추거나, 하다가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해도 망하거나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이 거기까지 인 것이다. 우리가 먼저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아이의 꿈을 바라봐 주면,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밤마다 이어지는 우리의 대화는 인간의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 그 행복을 지키는 노력을 누가 지지해주어야 하는지, 하는 이야기들로 끝나곤 했다. 아이를 지키는 투사가 아니라, 결연한 의지를 내려놓고 아이의 등 뒤로 물러서야 한다. 자신의 세계로 나아가는 아이의 부모라면, 그러는 게 맞다. 물론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내려놓음이란 얼마나 요원한 일인지.
울진을 다녀와서, 현실을 직면한 그이는 생각이 많아졌지만 아이의 소감은 짧았다.
“그냥 잘하던데요.”
테스트의 기회는 찾되, 인생을 두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충분히 생각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겨울 방학이었다.
어쩌면 그 안에 아이가 마음을 돌릴 수도 있을 거라 기대를 하기도 했다.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고민 하자며 벌어둔 겨울 방학의 시간은 아이가 아닌 그이와 나, 부모인 우리의 마음을 정리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되었다. 그저 아이의 꿈을 응원하며 나란히 서기로 한다.
이다음에 돌아봤을 때, 부모다운 행보였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