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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u Feb 23. 2023

암흑

보이지 않는

가고 싶은 연구실이 생겼다. 평소에 욕심이 그다지 없는 스타일이라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큰 걱정 없이 살아가는 편인데, 무언가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래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그곳에 지원하려면 영어 점수가 필요하다. 학부 시절까지는 원서 대신 번역서만 읽어가며 간신히 영어 공부를 회피했고, 또 그 수준에서는 그게 큰 문제가 안 되었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 최신 연구를 살피고, 여러 자료를 접하려니 영어가 발목을 잡았다. 내가 대학원에 가서도 영어 공부를 안 하긴 힘들 것이다. 이런 이유로, 6월부터는 좋아하는 책을 읽기를 그만두고 영어 공부에만 매진하고 있다.


영어에는 소질이 없는데, 흥미 없는 공부를 계속 붙잡고 있으려니까 힘들다. 밤에 일을 하면서 주어지는 쉬는 시간 세 시간 안에, 청해와 어휘, 문법, 독해 한 단원씩을 끝내고 단어도 외우려니 시간이 부족하다. 직장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집에서 좀 덜 자가며 하루 한 단원씩 네 권의 책을 마쳤다.


약속이 있는 날에는 가능하면 맥주 정도만 마시고 들어와, 두 세 시간을 자고 일어나 다시 공부하거나 아예 자지 않기도 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제는 그것도 잠잘 시간과 체력을 소진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요즘 들어 연락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안 먹고 안 자는 생활이,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두 달 넘게 이어지니 몸이 망가져 가는 것을 느낀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 오래 우울해한다. 지루하고 별 볼 일 없는 날들이 계속 이어진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젊은 시절 몸을 망쳐가며 일하고 공부했던 오늘날을 후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조금은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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