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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u Feb 28. 2023

죽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

신을 믿지 않지만

나는 종교가 없지만, 종교적인 장소를 좋아한다. 그곳에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가야만 느낄 수 있는 어떤 분위기가 있다.


얼마 전에는 명동성당에 들렀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건물의 웅장함이 나를 멈춰 세웠다. 마침 그 시간에는 미사가 없었고, 누구나 들어가 자유로이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 나는 이끌리듯이 그곳에 들어가 가장 앞쪽의 자리에 앉았다.


색색의 유리로 은연히 들어오는 햇빛과 성모마리아상, 14사도 벽화가 신비로이 놓여있었다. 하지만 나는 곧 그러한 풍경보다 그곳의 사람들에 시선을 돌렸는데, 그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심지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비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비는 것도 없이 그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한 시간 동안 그곳에 앉아있었다. 긴 시간 동안 성당 안에 날아든 한 마리의 새만이 유일하게 살아 움직였다.


-


또 봉은사에 들른 적이 있다. 절에는 사실 돌아다니고 볼 곳이 더 많은데, 나는 곧장 대웅전으로 향해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도 역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의를 갖추어 계속 절을 올리는 사람, 정좌하고 눈을 감은 채 입으로 무언가를 되뇌는 사람들. 그들의 눈빛 역시 간절해 보였다.


절에는 사람들의 염원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더 많았는데, 정성스레 쌓아 올린 돌무더기가 그중 하나였다. 사람이 머무를 수 있다 싶은 곳에는 꼭 몇 개씩 돌들이 쌓여 올라가 있었다.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그 돌을 쌓는 사람들은 조심스레 어떤 염원을 담았을 것이고, 그곳을 지나치는 사람들 모두 그 염원을 존중하기에 돌이 오랫동안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야외의 미륵불상 뒤편으로는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어떤 격실 안으로는 천천히 향이 타오르고 있고, 풍성한 꽃다발과 함께 죽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놓여있었다. 슬픈 기색도 없이 우리 아들, 우리 아들 하고.


그 꽃다발의 가격은 20만 원쯤 했던 것 같다. 옛날 같았으면 너무하다 싶었겠지만, 먼저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 값이라 생각하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한 마음들 앞에 나의 마음을 비추어 본다. 나와 주변의 건강 말고는 크게 비는 일이 없다. 간절하게 이뤄졌으면 하는 일들은 있지만, 모두 내 힘으로 해나가야 할 것들이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그들의 믿음이나 염원을 폄하할 수 없다. 세상에는 시선을 그들의 곁으로 옮겨야만 보이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슬픔과 괴로움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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