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나의 경험 - 달리기

by 행동으로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가 있다. 그건 바로 체력검정이 정말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3km 달리기는 최악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체력검정을 힘들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부대에서 특별나게 잘 뛰는 사람도 있었고, 무리 없이 특급 기준을 맞추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나는 아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달리기를 잘하지 못했다. 100m 달리기를 할 때도 항상 꼴찌 아니면 그 앞 순위를 했었고 체력장에서 오래 달리기를 할 때 한 번도 제시간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 지구력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정신력이 부족한 건지 농구등 구기종목을 하는 것은 굉장히 좋아했는데 달리기만 하는 것은 재미도 없고 힘만들 뿐이었다.


물론 병사 시절에야 체력검정에서 무조건 특급을 받을 필요가 없으니 그냥저냥 평가를 봤는데 문제는 부사관 계급장을 달고부터였다. 육군 간부들은 매년 체력측정을 받아야 하는데(윗몸일으키기, 팔 굽혀 펴기, 3km 달리기가 포함된다.) 체력측정을 잘 받아야 진급이나 장기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3km 달리기가 힘들었다. 아니 두렵고 무서웠다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달리기를 시작하면 처음부터 숨이 모자랐고, 몸 근육 하나하나가 다 아팠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길을 달리는 것이 생각만 해도 지치고 짜증 나고 두려운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뛰면 된다, 그걸 왜 못 뛰냐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내가 너무 한심하고, 나만 못하는 것 같고, 몸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자책을 하게 되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어느 봄날 저녁을 먹고 소화시킬 겸 인도를 걷고 있었는데, 바람도 선선하고 듣고 있는 노래도 너무 좋았던 날이 있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이 조금 뛰어볼까? 이런 날씨에 뛰는 건 살 빼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만큼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았던 날이다. 그날부터 퇴근하고 저녁을 먹기 전에 아무런 생각하지 않고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갈아 신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달리러 나갔다. 걷고 달리고 힘들면 다시 걷고 달리고를 반복했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그리고 새싹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그냥 놀이처럼 달렸다.


달리다가 종종 부대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그다음 날 출근해 보면 체력측정을 준비하려고 뛰는 거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살 빼기 위해서 그리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달린다라고 답변을 했지만 그분들이 보기에는 내가 체력측정을 준비하기 위해 달리는 부지런한 하사(부사관의 계급)로 보였던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달렸는데 나는 부대에서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큰일이다. 나는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분들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부지런한 것처럼 행동했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부지런한 것처럼 생활하고 있다. 이젠 정말 내가 부지런한 사람일 지도 모른다.


봄이 조금 지나고 체력검정을 받아야 한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나에게 두려움이 조금씩 슬슬 밀려들어왔다. 다시 3km 달리기가 두려워졌다. 그래도 어떡하겠나 체력측정을 봐야지. 선배들이 선택한 체력측정 날짜에 나도 지원했고 그날이 왔다.


그날 나는 어차피 내가 잘 뛰지도 못하니 마지막에 힘이 있을 리가 없다 속도 조절 없이 처음부터 그냥 뛰자. 이런 생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몇 분 달리다 보니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게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한참 뒤에 있고 나 혼자 달리고 있었다. 내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니 달릴 때 기분도 좋고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못했던 것 같다. 그냥 달렸다.


그날 이후로 내가 깨달은 점이 있다. 바로 달리기를 잘하려면 달려야 하는구나. 달리다 보면 달리기를 잘할 수 있구나. 내가 달리기를 잘하지 못한 건 여태 달리지 않고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서 그렀구나라는 것이다. 이날부터 자기 계발을 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처음부터 쉽게 되었다는 말은 할 수 없겠지만. 체력측정의 경험을 통해서 잘하고 싶은 것을 해야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아무 생각 없이 하다 보면 결국 잘하게 된다라는 것을 항상 명심하고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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