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참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아이구나.”
“아, 네... 감사합니다.”
뒤돌아서 국어사전에 ‘책임감’을 검색해 보았다.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 여기서 임무는 맡은 일 또는 맡겨진 일을, 의무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 곧 맡은 직분을 뜻한다. 나에게는 동생을 잘 돌봐야 하는 의무,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효를 행해야 할 의무, 그리고 직장 내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임무와 의무가 있었다.
늘 또래답지 않게 야무지고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다. 그리고 2024년을 기점으로 이십 대 후반의 나는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악의 없는 칭찬 속에서 왠지 모를 살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살기 위해 책임의 범주를 동생, 부모님, 친구, 직장 동료까지 확장해야만 했다. 어렸을 때부터 뭐든 스스로 했던 나라면 혈연관계를 넘어선 외부인까지 책임질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함이 가득했다. 순전히 자발적인 의사로 굳건해진 책임감인 줄 알았다. 그 때문에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것도 몰랐다. 하지만 속에 든 골병이 겉으로 표출되는 순간 깨달았다. 나는 여태 남들이 강제로 부여한 책임을 안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동생 잘 챙기고, 엄마 말 잘 듣고. 알았지?”
“역시 딸이 최고네. 네가 엄마 잘 챙겨 드려.”
“다수결에 의해 다음 학회장은 송현아 학우가 맡게 되었습니다.”
“현아야, 졸업하면 매니저로 일해 볼 생각은 없니?”
“송 주임, 작년에 해 봤으니까 올해 사업은 혼자 맡을 수 있지?”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난 현아 씨가 팀장을 맡아 줬으면 좋겠어.”
성인이 되자마자 아르바이트하며 생활비를 마련하고, 남은 돈으로 엄마와 아빠의 선물을 샀다. 그리고 아직 미성년자였던 동생에게는 따로 용돈을 챙겨 주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대학교 이 학년 때는 포트폴리오를 쌓아야 한다는 생각에 들어간 교내 동아리에서 학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다수결로 뽑힌 결과였다. 투표는 자율성이 있었지만 자격을 부여받은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맡기 싫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학우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거짓된 선출 소감을 발표했다. 억지로 이끌어 간 동아리의 끝은 예견된 소멸이었고, 대표로 동아리가 해체되었다는 글을 올려야 했다. 역사 깊은 동아리를 없앤 주범이 된 것만 같아 자책했다. 솔직하지 못한 미련함이 책임져서는 안 될 일을 떠맡았다.
대학 졸업 직후 들어간 첫 직장에서 이 년간 계약직으로 일했다. 처음 일 년은 사수 밑에서 업무를 보조하며 사업의 흐름을 파악했다. 그러다 다음 해 일 년은 사수가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되면서 홀로 사업을 이끌어갔다. 혼자 할 수 있겠냐는 팀장님의 말에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당장 이직할 곳도 없었고, 내 능력을 인정해 준 팀장님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그러나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일이었다. 배정된 예산이 증액되면서 자연스레 사업 규모도 커졌고, 설상가상으로 코로나가 창궐하던 때라 본래 오프라인이었던 행사를 온라인 행사로 치러야 했기에 이전의 사업 계획서만 참고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동료가 있었지만, 홀로 맡은 임무인 만큼 홀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을 때도 홀로 눈물을 삼키며 묵묵히 일했다. 그렇게 사업 종료 후 돌아온 건 사백만 원의 퇴직금과 계약 종료였다.
다시 허공에 내던져진 나는 삼 개월 후 두 번째 직장에 취업했다. 첫 번째 회사에 재직할 때 이직하려다 실패한 곳으로, 한 번 더 도전한 끝에 들어가게 된 만큼 남다른 애사심으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하면서 얻는 보람은 두꺼운 스웨터의 빈 짜임새 틈으로 불어오는 가을의 정취보다 짧았다. 과도한 업무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한 보상, 균형이 깨진 업무 분배로 내가 속한 팀의 팀장님을 비롯한 팀원들이 하나둘씩 떠났고, 일한 지 반년이 되던 날 결국 혼자 남게 되었다. 단 이 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골치 아파진 회사는 일한 지 고작 육 개월밖에 되지 않은 직장 생활 도합 삼 년 차 사회초년생에게 팀장 대행을 맡아 달라는 말과 함께 전 직장과 동일한 연봉을 제시했다. 모두가 그런 양심 없는 처사가 어디 있냐며 절대 다니지 말라고 했지만 오기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홀로 남더라도 아직 배울 수 있는 게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인간의 이기심과 치졸함을 배웠다. 회사는 매출의 선두에 있는 팀이 해체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팀을 유지할 사람이 필요했고,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 군말 없이 본인들의 수족을 들었던 나를 적임자로 택했다. 더 객관적으로 보자면 한 명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내가 무조건 팀장 역할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경력도 얼마 없고, 나이까지 어린 신입에게 팀장급 연봉을 주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아 씨는 참 똑똑하고 일을 잘해.”
아직 희망과 열정이 남아 있었던 신입은 새로운 팀장이 오기 전까지만 짧게 팀장 대행을 해 달라는 감언이설에 넘어갔다. 그리고 정확히 팔 개월 동안 신입 월급으로 팀장 대행을 했다. 팀원이 한 명, 두 명 채워지더니 새로운 팀장님이 오게 되면서 다섯 명까지 늘어났다. 그토록 무겁고 버거웠던 소임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팀장님을 필두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업무를 추진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강제 부서 이동 대상이 되었다. 팀 내 결속력이 너무 좋아서 찢어 놓아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몇 번이고 대표에게 불려 가서 지옥 같은 면담을 당해야 했다. 나와는 얘기가 잘 통해서 좋지만 다른 팀원들은 싫다고 했다. 애초에 내가 아닌 다른 팀원들과의 대화를 단절한 건 회사였다. 지속해서 나만 따로 불러 내가 좋아하는 동료들의 욕을 듣게 했다. 점점 다른 팀의 직원들도 나에게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불편했다. 왜 모두가 나한테만 이러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혼란스러워하는 나에게 그건 네가 만만해서 그런 거라고 했다. 단지 그게 이유라면 나는 심해어로 태어났어야 했다. 무섭고, 괴이하고, 끔찍하고, 고요하고, 날카롭고, 괴팍하고, 동그란 눈에 생기가 없어야 했다.
한 번은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을 정중하게 요청했더니 도리어 나한테 떠맡기는 다른 팀 팀장에게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되받은 적이 있다. 그러자 다음날 그 팀장은 나를 따로 부르더니 말을 왜 그렇게 하냐며 기분 나쁘다고 했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사람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기분 나쁘셨으면 유감인데, 드릴 말씀은 없네요. 벙찐 얼굴을 뒤로 한 채 자리를 나왔다.
불쾌했다. 내가 진짜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난 부여받은 임무를 묵묵히 수행했을 뿐인데. 그러면 세상 사람 모두가 만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나만 표적이 되는 거지? 친절과 호의를 베풀면 모두가 기분 좋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건 이 빌어먹을 세상이다. 난 부당한 모든 것들이 사라질 수 있다는 희망 하나만 보고 여태 희생 같지도 않은 희생을 하며 참고 견뎠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나는 그냥 호구였다. 사람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곳에서 적은 돈 받으며 헌신하느라 몸과 정신이 갈릴 대로 갈렸다. 그토록 원하던 제대로 된 팀 하나 꾸려 놓았을 뿐인데 이간질이나 당하면서 자아 없는 취급까지 받았다. 배려하는 마음에서 궂은일 도맡고, 매사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약자가 되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은 망해야 한다. 더 이상 온순한 노예로 남아 줄 이유가 없다.
그렇게 정당하지 않은 부서 이동에 반기를 든 팀원들과 함께 사직서를 내고 나왔다. 한 끗의 오기조차 남지 않았다. 시원하다 못해 시릴 정도로 허황한 책임감을 벗어던졌다.
아, 한 가지 떨치지 못한 미련이 있다면 “너 원래 안 그랬는데, 왜 이렇게 변했니?”라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지 않고 나온 것이다. 살가운 몸짓과 말투로 모두와 같이 잘 지냈던 충실한 직원이 말마따나 왜 이렇게 변했는지 궁금하다면 이 글을 읽기 바란다. 물론 평생 깨달을 수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