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맹유별은 그 말에 대해 생각도 못 해본 듯 멍하니, 입속에 배신이란 단어를 머금고 있었다.
“배신이요, 배신……?”
삼킬 수 없어 뱉은 배신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쓰게 느껴진 탓일까, 맹유별의 미간이 찡그러졌다.
“그치만, 아뇨. 이건……. 그럴 리가요. 물론 화는 나는데, 그 자식이 눈앞에 있으면 뺨이라도 때리고 싶은데, 배신이라뇨. 그건…… 그건 아니에요.”
맹유별은 부정했다. 흔들리는 목소리에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고, 멈췄던 시간이 흐르는 듯 거세지는 심장박동에 가슴을 붙잡았다.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말해야 했었다. 조금의 실수만으로도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잊었다.
“잠, 잠깐만요. 제가 잘못 말했어요. 미안해요, 그럴 리 없어요. 맹유별씨 말이 맞으니까, 진정해요.”
“아냐, 사실 때리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그냥 하는 말이야. 걔는, 그럴 리 없어요…….”
너무도 단단해서, 꺾이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맹유별이 사실은 현실을 지독하게도 부정하고 있었던 거였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데… 그럴 리 없는데….”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돌이킬 수 없었고, 맹유별의 방어기제는 그렇게 무너졌다.
“아, 아아….”
튀어나오는 소리조차 억누르며 절규를 삼키는 건 왜 그런 걸까. 입술을 꽉 깨물며, 주먹이 시뻘겋게 물들 정도로 세게 쥐고는 어째서 참아내려는 걸까. 무엇이 맹유별의 애도를 막는 걸까. 그건 책임일까? 혹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일까.
“미안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공허한 사과뿐이었다. 맹유별에게는 닿지 않는, 흔해빠진 사과.
“제발, 여기서까지 그렇게 참으면서 울지 마세요. 그냥, 그냥…… 놔버려도 되니까.”
맹유별의 뺨에 흐른 눈물을 맨손으로 닦아내며 꽉 깨문 입술을 빼냈다. 손톱이 파고드는 주먹 사이로 손을 억지로 끼워 넣자, 손가락을 있는 힘껏 꽉 쥐었다. 분명 잡힌 건 손가락인데, 목이 졸린 것처럼 숨이 막혔다. 죄책감에 죽을 것 같다는 말을 이제서야 이해하게 된 사람처럼.
“미안해요, 미안해요…….”
태엽이 망가진 인형처럼, 미안하다는 말을 속삭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맹유별의 눈가가 아프게 짓무르는 걸 보며 눈물을 닦아주는 것 마저 할 수 없게 되었다.
기를 쓰고 참아내며 자신을 통제하는 맹유별은 결국 제풀에 지쳐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여기서는 괜찮다고 달래 봐도 속에 있는 아픔을 꾹 참아냈던 건 터트리는 법을 몰라서일까.
손가락을 쥔 손에 힘이 풀렸어도 여전히 숨을 쉴 수 없었다. 분명 피난처였을 나의 집인데, 안전했을 곳인데 너무나도 비좁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손이 떨리는 건 금단현상일까? 갑갑함을 참을 수 없어서 담배를 들고 집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멘솔의 싸늘함이 폐를 깨트릴 정도로 깊게 박혔다. 그럼에도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다. 죄악감은 멘솔과 닮았나?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 않았다…….
***
술기운과 담배의 몽롱함이 겹쳐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분명 대낮이었는데, 해는 이리도 빠르게 지는가. 어둑한 하늘 아래에 주저앉아 허탈한 연기를 뱉었다. 이 와중에도 배는 고팠다.
오갈 곳이 사라진 느낌은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위해 먹고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는 것들을 외면하고 도망쳐왔는데 맹유별은 무자비하고 친절하게 내 두 눈앞에 보여줬다. 나의 자기 연민과 기만을 낱낱이 까발렸다. 이것은 속죄할 수 있는 일인가. 속죄란 무엇인가. 알 수 없었다.
멀리서 울리는 맹렬한 사이렌 소리가 옅게 들렸다. 귓가에는 날벌레의 치열한 날갯짓 소리가 울렸다. 손을 휘적이며 간단하게 치워버린다. 사이렌 소리도, 날갯짓의 소리도 사라지자 허탈감에 웃음만 나왔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존재들 사이에서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그리고, 왜. 최웅은 자신의 목숨을 그렇게 썼을까? 죽음이 무서워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하는 존재들 틈에서 왜 사랑을 위해 죽었을까? 모든 것이 알 수 없는 의문으로만 느껴졌다. 사랑이 뭐길래, 도대체 어떤 사랑을 하길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야이씨, 뭐 그렇게 청승 떨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