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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Mar 08. 2024

아줌마가 되는 마음

왜, 아줌마가 어때서

긴 생머리가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주변에서 뭐라 말하지 않아도 긴 머리카락이 거추장스럽게 느껴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예뻐 보이질 않는다.


작년 여름, 단발로 자른 적이 있었다. 단발로 자르기까지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며 고르고 고른 미용실에서 소중한 머리카락을 맡긴 적이 있었다. 당시 미용사는 3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체격이 좋은 여성이었는데, '단발머리'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고민할 틈도 없이  머리카락을 댕강 다. 단발로 자른 직 후 그녀의 단골손님럼 보이는 여성이  들어왔는데, 간이 없으니 얼른 해달라고 보. 미용사는 하던 머리를 대충 드라이를 하는 척하더니 5분도 안되어  끝냈다. 소중한  나의 머리카락들은 바닥을 뒹굴다가 미용사와 단골손님의 억센 발길질에 밟히고 흩어지더니 힘센 청소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허리 중간쯤 되던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니 세상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우울했던 마음을 잊고 집에 돌아왔는데 나를 본 남편얼굴이 좋지 않았다. 사실 는 긴 생머리인  배우'전지현'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한때는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샴푸향을 내뿜던 내 긴 머리카락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아내 머리만큼은 긴 생머리를 유지하길 바랐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전지이 나올 때마다 남편에게 일침을 놓는다.


 "전지현 머리는 매직스트레이트라고,  악성 곱슬머리도 파마약과 매직기만 있으면 머리를 좌악 펼 수 있.  아마 전지현은  곱슬머리일 수도... 나야말로 진짜 자연산 생머리란 말이지."


남편은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며, 전지현 머리가 곱슬이 아니길 바라는 눈치였다.  한때는 그나마 나도 머릿결만은 전지현보다 낫다고 자부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랬던 내가 긴 머리를 단발로 잘라버렸다. 거울을 보니 긴 머리나 단발이나 크게 달라 보이질 않았만.


1년이 지나 내 머리카락은 어깨를 훨씬 넘은 기장이 되었다. 그래도 그전보다 긴 기장으로 인해 쉽게 묶이기도 하고, 작은 똥머리로도 연출이 가능했다. 근데 어정쩡한 긴 생머리조차도 내 모습이 영 어울리질 않는다. 하는 수없이 작은 헤어롤을 사서 자연스러운 곱슬머리로 변신 중이다. 그래도 생머리보다 곱슬머리가 어울린다는 건 그만큼 나도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아이들 어린이집 친구 엄마가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싹둑 잘라 단발머리 파마를 하고 나타났다.

얼굴이 조막만 하고 알이 큰 검정 안경을 쓴 그 엄마는 나름 단발머리가 귀엽게 느껴졌다. 게다가 성격도 화끈해서 다른 이와 말도 잘하고 아이들과도 잘 놀아준다. 그녀처럼 단발머리를 해볼까. 내 머릿속에는 고민인형이 한가득 들어가 있다.


아무리 머리 스타일을 예쁘게 하면 뭘 해. 출근해서는 고무줄로 질끈 묶은 머리가 가장 편한 걸.

문득  뽀글이 파마의 대명사,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차라리 아줌마 파마를 해야 할까.'

 왜 수많은 여성들이 그토록 아줌마 파마를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는 거추장스러움, 머리끈으로 묶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아줌마 파마를 탄생시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내 생각이 맞는지 검색해 보기로 했다.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쌀 2 가마니 가격으로 파마 서비스가 제공됐다.

1964년 10월 중공이 핵실험을 강행했고, 냉전시대였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산 원료를 사용하는 가발수입을 금지시켰다. 이에 주목을 한 나라가 우리나라였는데, 손기술이 좋아 가발 품질이 우수했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릿결이 상당히 좋았다.


문제는 미국 가발 수요가 늘어났지만, 가발 제조업체들은 원료 공급 부족 사태에 시달렸고, 제조업자들은 미용사들을 고용해서 지방이나 시골로 급파해서 사람의 머리카락을 구해오게 했다. 당시 여성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있었다.


미용사들은 머리카락을 구하고 대신 파마를 무료로 해줬다. 그렇게 중년의 표준 헤어스타일은 여기서 탄생되었다. 가발산업이 사라졌고, 여성들은 머리카락을 팔아서 생계를 꾸릴 수 없게 됐지만, 이미 한 번 고정된 헤어스타일을 바꿀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미용실에서 "늘 하던 대로 해달라"는 요구를 했고, 아줌마 파마는 '아줌마'의 상징이 됐다. (출처:파이낸셜)



아줌마 파마는 내가 상상한 이유로 인해 생긴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당시 가발시장을 선두 하게 만든 장본인은  '아줌마'였던 것. 단지 외모를 예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머리카락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려고 했던 어려웠던 생활상을 반영했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 아마우리 엄마 젊은 시절일 것이다. 문득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이 떠오르는데, 엄마는 긴 머리를 풀어헤친 낯선 모습이었다. 엄마에게도 런 시절이 있었나 싶었다. 짐작건대, 엄마의 머리카락은 먹고살기 위해 잘랐을 것이고 , 나이보다 일찍 '아줌마 파마'로 진입했을 것이다.


지금 나는 그 시절에 비하면 좋은 시대에 태어나 사고 싶고, 하고 싶은 걸 누리며 산다. 긴 머리카락이 어울리지 않으면 묶으면 되는 거고, 그게 마음에 안 들면 보글보글 파마를 하거나 다시 펴면 되는 데 무얼 고민하는가.  배우 전지현은 그저 배우로서 아름다울 뿐이지, 그녀가 곱슬머리인지 생머리인지 관심을 갖는 것조차 의미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른 아침,  머리를 감은 뒤 헤어롤을 둘둘 말고 앉아있다. 조금 있으면 생머리가 탱글탱글한 웨이브로 변신한다. 아무리 봐도 웨이브 머리가 어울리는 나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이 있다면  아줌마라고 불려도 상관없으니, 조금이라도 '지적인 아줌마'가 되고 싶다. 생각과 마음가짐이 올곶고 지혜로우며, 원하는 꿈을 이루는 아줌마가 되고 싶다. 배우 전지현이 결혼을 하고도 가정과 배우 역할에 충실한 것처럼 , 내 삶은 아줌마가 되었어도 반짝반짝 빛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자고로 대한민국 아줌마는 용감하다. 물불 안 가리고 도전하는 정신은 그 어떤 시절보다 화려하기 때문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아줌마로서 가정과 나의 행복에 최선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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