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딱 한 잔,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한 잔의 커피는 내 일상에서 빠질 수 없다. 단맛을 좋아하는 나는 아메리카노보다는 카페라테, 카페라테보다는 바닐라라테나 돌체라테, 혹은 연유라테를 선호한다. 달달한 커피 한 잔과 크림치즈케이크나 스콘을 함께 먹으면 음식 때문에 행복해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입으로, 코로 마음껏 느껴진다.
작년 건강검진 때 위내시경을 한 뒤 의사가 "별다른 이상은 없고 위가 조금 빨갛네요. 커피 자주 마시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의사는 커피를 줄여라는 간단명료한 처방을 내려주었다. 병원을 나서며 커피를 줄여야겠다는 생각과 겨우 하루 한 잔도 못 마시나라는 생각이 대립했다.
커피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은 위내시경 결과보다는 내 몸이 카페인에 점점 중독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됐기 때문이다. 보통 점심을 먹고 난 후 커피를 마시는 데 어쩌다 커피를 건너뛴 날은 마시기 전까지 커피 생각이 자주 났다. 도저히 틈이 안 날 때는 결국 저녁에라도 마시고 잠 설치기를 선택하는 나날들이 생겼다. 이게 바로 중독 아닌가? 좋아하는 걸 넘어서 뭔가에 중독된다는 건 왠지 옳지 않은 것 같았다.
20대 때는 커피를 아침, 한낮, 저녁 상관없이 언제 마셔도 내 몸이 카페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30대가 되고부터는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아주 중요해졌다. 오후 4시 이후에 커피를 마시면 그날은 새벽까지 잠이 들지 않았고 정신이 말똥말똥한 날이 자주 생겼다. 20대 땐 전혀 겪지 않았던 일이라 처음 몇 번은 당혹스럽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곧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의 실험?을 해도 너무나 인과관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소량의 카페인에도 몸이 영향을 받고, 그 소량의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았을 땐 머릿속에 카페인이 자주 떠올라 카페인중독이 아닌지 의심이 들면서 지금이 바로, '커피를 줄여야 할 때'라는 걸 자연스레 인지했다. 그럼에도 결과부터 말하자면, 커피를 참지 않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커피를 줄이는 것도 나를 위해서지만 커피를 참지 않는 것도 무엇보다 나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마시는 라테류의 커피는 향부터 달달하고 고소하다. 우유가 들어가서 목 넘김이 부드럽고 아메리카노보다 묵직하면서 풍성한 맛이 있다. 묵직하고 풍성한 맛은 문법적으론 안 맞는 것 같지만 분명 내가 느끼는 맛은 그렇다. 이렇게 맛있고 기분까지 좋게 하는 걸 포기할 순 없지. 커피를 참지 않기로 결정하자 갈등했던 짧은 순간 쌓여가던 스트레스도 날아갔다.
하고 싶지 않은 걸 해야 할 때와 하고 싶은 걸 못할 때, 언제 사람은 더 스트레스를 받을까? 나는 후자의 경우를 더 좋아하지 않는다. 하고 싶거나 하고 싶지 않은 건 순전히 나의 마음이다. 상황에 따라 내 마음을 뒤로하고 반대로 행동해야 한다면 그나마 하기 싫은 마음을 참고 해야 하는 행동을 하는 게 낫다. 과정은 의도하지 않았어도 그것이 주는 결과는 의외로 괜찮았던 적이 왕왕 있었다. 일상에서 예를 찾아보자면 정리정돈, 빨래 개기, 재미없는 책 끝까지 읽어보기 등이 그렇다.
전자와 반대로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건 마음의 소리를 거부하는 것 같아 더 힘들다. 그럴 땐 괜히 처한 상황을 원망하기도 하고, 사람을 탓하기도 하고, 마음 가는 대로 했다면 당연히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텐데라는 막연한 아쉬움을 달래기도 한다. 그러니까 고작 '커피'일지라도 커피를 참을 순 없다. 하루 한 잔 커피 마시기는, 다름 아닌 오직 내 마음에 집중하고,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다는 거대한 의미가 담긴 루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