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고 카페인 커피와도 같다
다른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모든 게 막막하고 주저앉고 싶을 때 글쓰기를 만났다. 우연히 남편을 알게 되어 결혼을 한 것과 같이, 글쓰기도 관계의 인연처럼 불현듯 찾아왔다. 누구보다 자신 없고 내성적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저 노트북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끄적일 수 있는 글쓰기라는 세계가 마냥 신기했고, 이런 소소한 기쁨들로 인해 다친 마음을 치유받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겪는다고 생각했다. 조금 늦은 나이에 쌍둥이를 낳고, 마냥 울어대는 아이들 곁에서 깊게 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직장을 다녀온 남편을 보자마자 울컥하는 마음에 미움의 막말을 쏟아부었고, 부부관계는 지붕 처마에 꽁꽁 얼어붙은 고드름처럼 언제 녹아 떨어질지 몰라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웃는 아이 얼굴이 예뻐 보이기보다 집안에서 꼼짝달싹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그토록 원망스러웠다.
젖병을 물고 있는 우유가 바닥나서 언제 투정으로 바뀔지 두려웠다. 오감놀이를 한다고 바닥에 잔뜩 깔아놓은 두부와 국수가락을 온몸으로 칭칭 휘감고 있는 아이들 모습에 기쁨의 탄성보다는 한숨과 원망이 먼저 튀어나왔다. 아이들을 씻기고 청소하다 보니 이게 정말 내가 원한 삶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두 아이를 얻기 위해 직장생활을 하며 2년을 넘게 난임병원을 다녔다. 그동안 임산과 유산을 반복하며 몸과 마음도 모든 게 점점 지쳐갔다. 그러다가 하나도 아닌 두 아이가 하늘의 축복처럼 찾아왔다. 임신만 하면 이루지 못할 게 없을 것 같았고, 두배로 행복했고 기뻤다.
하지만 '왜 이런 마음들이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걸까. 왜 처음처럼 너희를 축복의 대상으로 보지 못하는 거지.'
두 아이를 육아하며 가장 먼저 들었던 의문들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모든 걸 부정적으로 보고, 지금과 같은 현실이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물고기 같았다.
글쓰기를 만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블로그를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단 한 번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이웃블로거가 현실 같지만 가상으로 느껴지는 글을 매일 쓰는 걸 보며 호기심이 들었다.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찾아보니 김선영 글밥, 글밥 김선영 작가의 '아무리 바빠도 매일글쓰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누구보다 바쁜 사람이었고, 글쓰기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얌전했던 아이들이 갑자기 울기라도 하면 하던 일을 박차고 뛰어가야 하는 사람이고, 시간이 날 때마다 빨래에 이유식을 만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이었다. 그나마 짬이 나는 시간에는 부족한 기저귀나 식료품을 온라인 쇼핑카트에 담아야 했고, 사지도 않을 늘씬한 모델이 입은 예쁜 옷들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몸에 맞지도 않고, 설령 맞는다 한들 새 옷을 입고 나갈 형편이 되지 못했다.
이런 내 처지와는 다르게 자정이 한참 지난 조용한 새벽녘,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쓰기'가 자꾸만 궁금했다.
'모임참여 완료'
아이들이 제대로 잠을 못 자서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모임 참여 버튼을 눌렀다. 정말 실수였다. 소주 열병, 맥주 열 병을 마신듯한 몽롱한 기분이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 우리 아이들은 어느새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번아웃이 찾아왔고, 보이지 않는 외롭고 공허한 마음과 싸워야 했다. 그중 가장 힘든 건 어설픈 인간관계와 마무리되지 않는 업무 사이에서 여기까지 밖에 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하기에 이르렀다. 불현듯 직장상사의 감정 담긴 쓴소리에 눈물이 빵 하고 터져버렸다. 지금까지 꾹꾹 눌러 정성껏 쌓아놓은 벽돌이 우르르 무너진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글쓰기를 찾았다. 글쓰기를 할 때마다 친정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친정에 가면 엄마는 가장 먼저 갓 지은 쌀밥 한 공기와 돼지고기를 팍팍 썰어 넣은 김치찌개를 내어온다. 뜨끈한 김치찌개를 호호 입으로 불어가며 먹을 때 차가운 마음에 위로를 느끼듯, 글쓰기는 친정엄마와도 같은 존재였다. 딸이 어떤 이야길 하든 '괜찮다, 잘했다, 너라면 못 할 게 없지, 대견하다'라고 말하는 엄마의 마음처럼 글쓰기가 주는 환상은 헛되지 않았다.
나는 이따금 꿈을 꾼다. 칭얼대는 어린 아이들곁에서 졸린 눈을 비비던 자신을, 워킹맘으로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땀방울을 닦으며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자신이 보인다. 아이가 배시시 웃음을 보일 때 나도 따라 웃었고, 늦은 퇴근시간 어린이집에서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간절한 아이의 마음도 보였다.
글을 쓰니 이제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모든 것들이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니었고,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찌 보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 모든 시간들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설픈 글을 쓴 지 햇수로 6년이 넘었다. 그동안 나는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쓰기' 단골 멤버가 되었고, 글밥 김선영 작가는 내게 은인과도 존재였다.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해도 잘했다, 당신이니까 해냈다!라고 말하는 친정엄마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더불어 글쓰기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나만의 책상을 갖길 원했다. 그리고 공간을 찾았다. 햇볕이 잘 들고 나무와 산이 보이며 은은한 조명이 있기를 소원했다. 중고로 구입한 나무 독서대는 여전히 튼튼했다.
나는 이곳에서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며 오늘의 글쓰기를 하고 있다.
무심코 찾아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오늘의 나를 일으켜 세우듯, 가볍게 글쓰기를 시작한다. 비밀을 하나 털어놓을까. 커피보다 더 센 고카페인이 글쓰기 성분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다시 일어선다,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희망이 생긴다, 이것이 하루 글쓰기가 주는 유용한 성분들이다.
으랴차! 오늘도 글쓰기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일어나 볼까?
글밥 김선영 작가, 글벗들과 함께 1월 - 주 3회 글쓰기에 참여 중입니다.
매주, 월, 수, 금요일에, 수요일은 제5화,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인 '펜(pen)'으로 찾아옵니다.
펜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월요일에 발행할 글을 화요일에 썼네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내일 잘하면 됩니다. 반드시 내일의 태양은 또 뜨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