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 태어나 단 한 번도 헌혈이란 걸 해본 적 없는 내게 헌혈을 하란다. 아픈 남편을 위해.
오전 회사 업무를 대충 마무리하고 입원에 필요한 짐을 빠르게 정리했다. 캐리어 한 개, 무거운 배낭 가방을 메고, 여행 가는 사람처럼 헌혈의 집으로 향했다.
헌혈의 집에 들어가니 모든 게 생소했고 쿵쾅쿵쾅 뛰는 가슴은 멈출 줄 몰랐다. 코로나 관련해서 설문지를 작성하고, 개인 신상을 기록했다. 설문이 끝난 후 8번 상담실로 안내를 받았다. 혈압도 정상, 빈혈, 혈액형 검사 무난히 통과. 예상대로 빨리 뛰는 맥박이 문제였다.
"맥박이 너무 빨라요. 화장실 다녀오고, 물은 한 병 다 드세요. 편안한 자세로 앉아 호흡을 깊게 들이마신 후 천천히 내뱉는 연습을 해보세요.명상하듯이 숨을 쉬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질 거예요."
이미 헌혈의 집에 입장과 동시에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고, 마치 멈추고 싶어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 폭주족과 같았다. 명상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흐를수록 쿵쿵대는 심장소리는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하더니 팔, 다리까지 후들후들 떨렸다. 심호흡을 하면 괜찮아질까 천천히 숨을 내쉬어본다. 다행히 처음보단 맥박은 조금 나아졌고, 간호사 안내에 따라 의자에 앉았다. 주사를 맞으려고 긴 줄에 대기하고 있다가 드디어 차례가 돌아온 느낌처럼이미 나는 독 안에 든 쥐다.
최대한 혈액을 모으기 위해 압박붕대를 팔 위쪽에 꽉 감았다. 피부가 조금씩 파랗게 변했고, 핏줄이 '나 여기 있다'라는 듯 툭툭 튀어나왔다. 이제 바늘을 넣을 시간이다. 헌혈 바늘은 일반 주삿바늘에 비해 좀 굵은 편이다. 그러니 헌혈 바늘이 살을 찔렀을 때는 통증이 더할거다. 눈을 질끔 감고 있는 순간 바늘은 살을 찔렀다. 악! 제대로 찔린 거다. '따가워!'(겁쟁이라 할까 봐 마음속으로만 외쳤다.)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시면 헌혈이 좀 더 수월하게 될 거예요. 어머! 잘하시네요."
간호사 선생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친절했다. 겁쟁이에게 칭찬이라니. 난 고래도 아닌데 고래처럼 춤추고 싶은 마음이었다.
남편의 농축적혈구가 필요해 헌혈하는 건데, 다른 사람을 돕는 것도 아닌데, 어떤 선물을 갖고 싶은지 고르란다. 관계를 묻지 않고 주겠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딨겠는가. 나는 헌혈이 끝난 후 외식 교환 상품권 8,500원, 비스킷, 음료수 1개를 선물로 받았다.
헌혈은 바늘이 들어갈 때 따끔한 걸 제외하면 우려했던 것보다 크게 아프지 않았다. 가장 아팠던 순간은 헌혈하기 전 눈에 보이지 않던 공포심이었다. 어떠한 일을 하기 전 행동보다 두려움을 먼저 느끼는 성격인 이유다. 내가 상상했던 헌혈은, 헌혈도 중 빈혈로 머릿속이 핑 돌다가 결국 바닥에 내동댕이 치듯 쓰러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웬걸! 내뱉은 말이 무색할 만큼 상태가 말짱했다. 오히려 칙칙한 피부는 뽀얘졌고, 몸은 훨씬 가뿐해졌다. 더불어 감염 검사도 무료로 해준단다.
헌혈 후 가장 뿌듯했던 건 헌혈증서였다. 내 이름이 적힌 첫 헌혈증서. 초등학교 때 교장선생님께 표창장을 받은 것처럼 행복한 기분이었다. 비록 남편을 위해 헌혈을 했지만 다음번에는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헌혈을 하는 도중 혈액을 기부하기 위해 스스로 찾아오는 젊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표정은 밝고 긍정 적여 보였고, 헌혈을 마친 발걸음은 통통 경쾌해 보였다. '이런 게 진정한 봉사구나!'
남편을 위해 시작한 헌혈로 인해, 헌혈에 대한 공포를 물리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주삿바늘 하나 찌르고 나니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가뿐하다.
매년 9~10월은 혈액이 많이 필요한 시기라 한다. 나처럼 겁쟁이도 주삿바늘에 대한 공포를 이길 수 있었으니, 누구든 헌혈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남편에게 든든한 지원자가 돼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곧 용기였고, 작게 시작한 용기는 꺼져가는 불씨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