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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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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Oct 24. 2021

엄마가 돼보니 엄마가 보입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인생도 얼마든 리플레이가 가능하다면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오롯이 자신만 알고 지냈던 10대, 아침에 겨우 일어나 밥 한술 먹고 가라는 엄마에게 배 아프다며 허둥지둥 학교 가느라 바빴다. 동네 친구들과 노는 게 좋았고 배가 고프면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언제든 따뜻한 밥과 된장국을 끓여줬다. "또 된장국이야?" 나는 아빠보다 반찬투정이 많은 딸이었다. 세월이 흘러 중학생이 되니 세상 외로움은 전부 내 것. 사춘기가 찾아오며 방문을 닫고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엄마가 하는 말은 모든 잔소리로 들려 귀를 틀어막았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매일 밤마다 라디오와 친구가 되어 그리움을 담은 편지를 보내는 시간으로 10대를 마감했다.

20대는 또 어땠게. 집에서 부모님과 생활하는 게 싫다고 일부러 먼 곳에 있는 학교를 선택하여 독립투사처럼 독립을 외치며 다녔더니 엄마는 학교 근처 자취방을 구해줬다. 독립을 하니 세상 편했다. 늦게까지 학교 근처 피시방에서 밤을 새워도 뭐라 할 사람 없었고, 자취방에 친구들과 시끄럽게 떠들고 놀아도 눈치 볼 사람이 없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

20대의 매력은 '즐기는 삶'이라며 10대만큼 공부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등록금 시기가 찾아오면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주던 엄마였고, 일주일마다 빠짐없이 생활비를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학교 졸업 후 친구들은 하나둘씩 취업전선에 뛰어들 때 나는 겨우 단기 아르바이트만 할 뿐이었다. 돈과 일에 얽매이며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는 게 싫은 이유였다. 그러다가 20대 초반 일찌감치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이제 그를 사랑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이제 30대. 그와 만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엄마는 조금 더 좋은 남자를 만나길 원했지만 이미 나는 그가 없으면 안 됐다. 괜찮은 남자를 만나라는 엄마의 말은 귓가에서 맴돌다가 허공으로 날아갔고 나는 결국 그와 결혼을 했다.

결혼 5년 후, 생각지 않은 쌍둥이가 찾아왔고 나는 30대 후반이 되어 아이를 돌보기 위한 지원군으로 '엄마'를 지목했다. 쌍둥이가 아니었다면 굳이 지원군을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엄마보다 더 젊은 시어머니가 있었지만 나는 '내 엄마'여야 마음이 편했다. 엄마는 무려 6개월 동안 우리 집에 상주하며 아이들을 돌봐줬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동안 엄마와 가장 가깝게 보낸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었다. 비록 쌍둥이 육아로 지쳐 엄마에게 투정도 부리고, 간혹 서로가 추구하는 육아 스타일이 달라 보이지 않는 기싸움도 했지만, 엄마를 이해하려 애썼던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삶을 정리해 보니 엄마 딸로 태어났지만 진정으로 엄마와 보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30센티 줄자가 있다면 5센티도 안 될 만큼 작았던 엄마와 함께한 시간. 그중 25센티를 엄마가 아닌 나를 위한 시간으로 보낸 셈이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자식들은 모두 둥지를 떠났는데 엄마는 늘 자식 걱정뿐이다.

"너희들이 잘 살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

자식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비로소 엄마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흰머리로 가득한 엄마의 보글보글 파마머리. 얼굴을 온통 점령해 버린 못된 주름살. 꼿꼿했던 허리는 누구에게 그리 겸손해 보이려고 휘어있는지, 앉았다 일어나면 무릎이 아프다며 아이고! 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오는 엄마. 그러고 보면 세월은 엄마에게 참 못된 것만 선물해 줬다. 하지만 이제야 엄마가 내 삶에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자! 지금까지의 삶을 남편 사랑으로 가득 채웠다면 지금은 엄마를 내 마음에 가득 채울 시간이다.

남편에게 비밀인데, 30센티 자를 50센티로 늘려 20센티를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보내기 위한 작전을 세우자.


"남편! 오늘은 나 혼자 엄마 집에 다녀올 테니 둥이들 잘 부탁해! 그리고 엄마! 늘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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