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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Jan 28. 2022

단 돈 만원으로 튤립을 삽니다

튤립이 주는 사치

1월의 어느 추운 겨울이다.

'올 겨울은 장갑을 꼭 사야지'했는데 역시 실패다. 물론 장갑이 비싸지는 않다. 저렴한 장갑은 단 돈 만원 대도 있으니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매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가계부를 쓰며 돈 관리를 알뜰하게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노노다. 며칠 전 월급은 통장으로 입금됐지만 통장정리를 할 여유가 없어서 잔고가 얼마나 있는지 관심 갖지 못했다.


유독 찬 바람 부는 겨울이면 손과 발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진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을 스쳐 지나가기만 하더라도 상대방은 차가운 손에 움찔 놀랄 정도다. <겨울왕국>에서 세상 온 천지가 얼음으로 물드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바로 내가 그렇다.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손은 얼음 꽁꽁 옥동자 아이스크림이 되어버린다.

그런 내게 우리 아이들은 엄마 손을 살포시 감싸며 이야기한다.

"엄마 추워? 내가 따뜻해. 호오~!"

이 순간만큼은 털 복실이 장갑 따위가 필요하지 않다. 이미 마음만큼은 따뜻하게 녹아내리고 있으니 말이다.


1월의 추운 겨울, 장갑 하나도 사지 못하는 나는 큰 결정을 했다. 엄마들 카페에 꽃 농장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게시물이 올라온 것이다.


"한창 꽃 피우고 있는 예쁜 튤립을 구경해 보세요."

어머나! 이 겨울에도 농장은 꽃잔치가 펼쳐지고 있었다.

"사장님 너무 예뻐요. 구매하고 싶은데 한 단에 얼마씩이죠?"

"한 단에 오천 원이에요. 개인에게 판매하는 건 아닌데 예쁘다고 해주시니 한 단이상만 구매해 주세요."

"저는 분홍색과 하얀색 튤립 각 1단씩 주문해도 될까요?"

"네. 만원이에요."

단 돈 만원으로 튤립 두 단을 사게 될 줄이야. 앗싸!

직장을 끝내고 아이들 하원을 하기 전에 경비실부터 들렸다. 포동포동 아이들 엉덩이처럼 뽀얀 살결의 튤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튤립은 향이 강한 꽃은 아니다. 하지만 쌀쌀한 봄날이면 어김없이 예쁜 얼굴을 내미는 봄의 전령사이기도 하다. 지금은 1월이 아닌가. 1월에 구경하는 튤립은 묘한 매력이 있다.


튤립을 보자마자 밑단을 잘라주고 갖고 있던 도자기 컵으로 녀석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굳게 닫혔던 얼굴이 물을 마시자 활짝 피어났다. 간사하기도 하지. 꽃은 활짝 피었는데 벌써부터 금방 시들어 버릴 것 같은 걱정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꽃이 주는 감동은 기대했던 것보다 오래가지 못한다. 길어야 일주일, 아니면 그 시간보다 더 짧을 수도 있다. 반면 장갑은 낡거나 색이 바래지 않는 이상 수년은 사용할 수 있다. 비슷한 금액에 꽃을 선택하는 게 현명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를 고민해봐도 역시 나는 꽃을 선택할 것이다.

손이 꽁꽁 얼면 우리 아이들이 호오~입김 한방으로 녹여 줄 테니 추위 따위 무섭지 않다. 내가 만일 장갑을 끼고 있다면 아이들은 내 손을 잡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꽃은 어떤가.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공간에 두며며 칠을 행복한 마음으로 자판을 두드릴 수 있다. 내 마음이 평온하다면 마음처럼 예쁜 글이 나올 것이고, 그전보다 더 찬란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매일 저녁이면 아침이 기다려질 것이다.

며칠이 지나면 꽃은 지고 이 공간에서 사라지는 날이 오겠지만, 어찌 된 게 장갑 하나 사는 건 아까워도 꽃 두 단 사는 건 아깝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삶을 가장 황홀하게 살 수 있는 비결!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튤립으로 사치를 부려 보세요. 털장갑보다 더 큰 행복이 찾아올 테니까요! 지금 이순간 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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