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같은 사람도 글을 써도 될까요
글쓰기에 진심을 다할 때
글쓰기가 좋았다.
앞 뒤 문맥도 맞지 않고 중심 문장이 없는 글을 쓰더라도 글쓰기는 현재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 완성한 글을 읽어보니 아무리 봐도 잘 썼단 말이야.' 일명 자뻑(자기가 잘났다고 믿거나 스스로에게 반하여 푹 빠져있는 일. 명사)이었다. 하지만 내 글을 대하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광고업체들은 예의상 내 글에 하트를 날렸고, 그렇게 댓글 하나 달리지 않는 글에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한 개의 글을 쓰고 난 뒤 나는 다시 글을 쓰지 않는 삶으로 돌아왔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고 평가해 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그런 가슴 졸이는 경험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누군가 '내 글을 읽어 볼까'라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평소 블로그를 하지 않다가 웬일인지 그날따라 이웃블로그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오래전에 이웃으로 찜콩 해둔 그녀가 쓴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문구를 좋아하는 그녀는 글쓰기에 진심이었다. 누구나가 공감할 만한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던 그녀는 글쓰기 재능을 타고난 사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그녀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스스로 감자가 되어 감자의 다양한 요리법을 소개했다. 나를 이용하여 감자튀김을 만들고 볶아먹기도 한다고 했다. 사람이 감자가 되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다 있을까. 또 다음날은 벼에서 시작하여 쌀과 밥이 되었다. 쌀은 검은콩과 만나 뽀득뽀득 씻어 불리고 새벽 5시에 취사를 예약한단다. 이런 황당한 경우를 봤나. 그녀로 인해 내 의문은 하루하루 증폭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글 쓰는 작가일까. 아니면 문구점을 할까. 아니, 감자와 쌀 이야기하는 걸 보니 슈퍼 사장님일 수도 있겠다. 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녀에게 여러 가지 직업을 선사하는 상상력을 동원했다. 그녀가 쓴 글에 댓글이 달렸다. 한결같이 잘했다, 멋지다 응원하는 사람들 천지였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잘 이겨내 보자.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환경운동가일까?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그녀 블로그에 달린 댓글에 댓글을 찾아 일명 파도타기를 하여 감자와 쌀이 태어난 출처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 모임'이었다. 그녀는 글쓰기 회원으로 어떠한 주제가 주어지면 주제에 맞게 글을 성실히 발행한 사람이었다. 학교 다닐 적 국어시간마다 글쓰기를 강제적으로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글쓰기를 하자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스스로 쓰는 일기는 끄적일 수 있어도 반강제적으로 일정기간에 맞춰 글을 쓰기는 어렵다. 글쓰기 모임은 나처럼 의지력이 약한 사람에게 제격인 것 같았다.
"(소심하게) 저도 글쓰기에 동참하고 싶은데요. 가능할까요?"
"이번 달은 끝났고요. 다음번 시작에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후로 나는 감자와 쌀이 인연이 되어, 14개월 동안 글쓰기를 하는 회원이 되었다. 여전히 그녀 역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핫한 글쓰기 회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 직업은 문구점 사장님도, 슈퍼 사장님도 아니었다.
다만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들 중 하나인 평범한 직장인이자 글쟁이라고나 할까.
글쓰기는 재능이 없어도, 아무리 바쁘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다. 글쓰기 재능이 없을수록, 삶이 바쁠수록 더욱 진심으로 나를 이끄는 이 멋진 일을 왜 못하겠는가.
나는 오늘도 출근을 해야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글쓰기를 해냈다. 그런 작은 성취감이 나를 더욱 단단한 도토리로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