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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May 30. 2021

글쓰기 딱 좋은 시간

너희들로 인해 글 쓰기를 시작했다


나는 1월부터 글을 쓰기 위해 출근 두 시간 전에 일어나고 있다.

사실 특별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글을 쓸 줄도 모른다. 그냥 그 시간에 일어나 글 쓰는 것만으로 좋은 거다. 아침에 글을 쓰기 위한 모닝 루틴은 이렇다.


1. 아침 기상 인증

2. 유산균 1포, 미지근한 물 한 컵을 마신다.

3. 씻고 준비하며 동기부여 동영상을 시청한다.(오디오북 듣거나)

4. 아이들 어린이집 식판과 물병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5. 식탁이 서재이므로 지저분한 물건들이 있으면 치워야 한다. 노트북과 마음을 가다듬는 음악은 필수.

   *음악은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이다. 때로는 흩어진 생각을 하나로 뭉쳐주는 역할을 하기도.

6. 가장 아끼는 찻 잔에 따뜻한 카페라테를 는다.

 그윽한 커피향이 코를 자극한다.

7. 자, 이제 식탁의자에 앉아볼까? 식탁의자는 꼭 딱딱한 벤치 의자여야 한다.  왜 꼭 벤치 의자여야 할까 생각해 보니,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걸 싫어했다. 다리도 올렸다 폈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좋은 .

8. 글자 크기 15, 그날 기분에 따라 서체를 결정한다. 이제 글쓰기 세계로 뿅! 날아가자.




누군가 내게 그랬다. 왜 피곤함을 무릅쓰고 불필요한 행위를 하느냐고. 글쎄?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같은 고민을 한다. 대답하고 싶지만 필요성을 느끼기 어려운 질문 받는다.


 나는 아이들 때문에 새벽 기상을 선택한 것이고, 아이들 때문에 글을 쓸 수 있었다. 아이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몇 년 전에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나는 여전히 바쁘다 생각했고,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게 두려웠다. 아니, 게을러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거다. 시간이 많다고 해서 꼭 모든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직장 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항상 잠이 부족해 피곤하단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신기한 건 아이들 육아와 직장 일을 하고부터 글이 쓰고 싶어 진 거다. 하필 가장 바쁘게 살고 있는 지금에 와서야 글을 쓰고 싶은 이유는 뭘까? 나는 종종 남들이 궁금해하는 것만큼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할 때가 많았다.


질문) 네가 글을 쓰고 있는 진정한 이유는 뭐야?


'와! 참 어려운 질문을 나 자신에게 받다니. 이런 영광이!

음... 내 생에 가장 바쁜 시간을 살며 나 자신을 찾고 싶었어. 나는 아이들의 엄마고 회사에서는 남들보다 더 최선을 다해야 하는 직장인이고.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사람이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나를 위한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어. 글을 통해 내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을 갖고 살고 있는지 알게 됐다고 해야 할까. 글 쓰는 시간만이 유일하게 나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해. 만약 이런 시간이 없었더라면, 지쳐 쓰러졌을 수도...'


'몸이 힘들어 쓰러지면 차라리 낫게. 아픈 마음은 고립된 쓰레기장처럼 한 곳에 쌓아두기만 하면 언젠가는 곪아 터지는 날이 찾아와. 마음을 회복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글은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더 행복한 내일이 있을 거란 상상을 하게 하지. 상상만으로 즐거운 일을 나는 매일 아침이면 의식처럼 실천해.


당연히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쉽진 않지. 남들처럼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거든. 근데 내가 이대로 잠들면, 이런 것도 참지 못하고 잠들어 버리면 더 힘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길까? 하는 거야. 살면서 지금보다 더 큰 어려움과 아픔이 생길 수 있겠지. 아침 기상이 힘들 때마다 나는 항상 더 큰 시련을 상상해. 그러다 보면 이까짓 거 별거 아니네? 라며 이불을 박차고 나와.  나란 사람은 단순해서 단순한 게 먹히거든. 이래서 학교 다닐 때 수학 시간이 가장 싫었나 봐'


'내가 가장 아끼는 우리 남편은 이제 글 쓰는 나를 인정하려 해. 내가 특별한 글재주를 타고난 게 아니란 걸 알기 때문에 생각이 떠오르질 않는다고 머리를 부여잡은 나를 보며 때로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때도 있긴 해. 그래도 가끔 밥하는 엄마보다 식탁의자에 앉아 글 쓰는 내가 멋있어 보인다고 할 때도 있더라? 헤헤~ 멋있어 보인다고 하니 괜히 우쭐해지는 이윤 뭘까?'





멋있다고 우쭐해하던 사이 곤히 자고 있던 아이들이 벌써부터 일어났다. 어제 늦게 잠을 잤는데 귀신같이 제시간만 되면 일어나는 아이들. 요구 사항이 많아지면서 아침 시간은 항상 분주하다.

글 쓰는 게 마무리도 안됐는데, 어떤 날은 아이들로 인해 헐레벌떡 결말을 내기도 했다. 엉성한 글에 엉성한 결말이라니... 뭐 그래도 괜찮다. 나만 좋으면 된 거지.


엄마는 너희들로 인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너희들로 인해 아침 일찍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 딱 좋은 시간은 고마운 너희들을 생각하며 너희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인 바로 지금 이 시간!

아침 향기는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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