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나는 세 살 된 쌍둥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워킹맘이었다. 그런 내가 매일 글쓰기를 하겠다며 모임에 가입했다니, 마음속 다짐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시작은 잘하고 시작만큼 포기도 잘하는 성격이라 힘들 것 같으면 포기하면 그만이었다.
글쓰기는 한 달 모임이었는데 매일 빠지지 않고 하루하루 인증하는 방식이었다. 인증 결과는 글벗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단 한 번이라도 글쓰기 인증을 하지 못하면 내 이름 옆에 빨간색 엑스자 표시가 나타났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인증을 마친 결과물인 초록색 표시가 주르륵 이어지다가 나 때문에 빨간 표시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빨간색 하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글쓰기 열정에 찬 물을 끼얹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찬물을 끼얹고 모임에 탈퇴하면 그만인데, 뭐 이런 걸 갖고 걱정하나 싶었다.
처음 모임에 합류했는데, 하필 글쓰기 주제가 '출간 기획안'을 작성하는 과정이었다. 엥? 출간 기획안? 제대로 된 글쓰기를 한 적도 없는데 무슨 출간 기획안을 만들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이건 연습이고 대충 작성해서 인증을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출간 기획안은 일회성이 아니었다. 출간 기획안을 바탕으로 목차를 꾸리고 꾸린 목차로 글쓰기를 하는 것이었다. 어설픈 설계는 부실공사로 이어지는 법. 하지만 이것이 부실공사인지 아닌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글을 쓰고 또 썼다.
내가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퇴근 후 아이들을 재우고 나온 뒤 청소를 마친 저녁 10시가 넘은 시간부터였다. 사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오면 온 집안은 엉망진창이다. 저녁 식사를 마친 식탁에는 빈 그릇 천지였다. 여기저기 바닥에 흩어져있는 밥알과 벗어놓은 옷, 아이들이 갖고 놀던 장난감들로 가득했다. 분주하게 대충 청소를 마친 후에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전쟁터에서 갓 빠져나온 군인처럼, 겨우글 쓰는 민간인으로 짠하고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이윽고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주는 음악을 틀었다. 내게 있어 음악은 입안을 톡 쏘는 청량음료와도 같은 존재였다. 어수선했던 분위기를 말끔하게 씻어주고, 고단한 하루를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
본격적으로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글쓰기 소재는 현재보다는 과거를 회상하는 게 잦았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내가 어떤 노력을 하며 살아왔는지, 작은 선택들이 다행으로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때로는 글을 쓰며 눈물을 글썽이던 적도 있었다. 오래전그때는몰랐다. 고민할 틈도 없이 어떤 일을 결정한 결과로 상처를 받았지만, 생각해보면나는 나 자신을 진심으로 위로할 시간이 없었다. 모든 아프면 아픈 대로 시간이 약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결코 시간이 약은 아니다.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 해도 상처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마음 한편에 늘 자리하고 있었다. 단지 상처를 떠올리고 싶지 않았을 뿐.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 두 아이를 하늘로 떠나보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직장을 다니며 새벽같이일어나 난임 병원에 1등으로 진료를 받았던 2년이란 시간 앞에 웬일인지 자신을 칭찬하고 싶어졌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지나간 상처를 위로하고 씩씩했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저녁 12시, 글쓰기 인증을 마쳐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자정까지만 인증을 마치면 글쓰기 미션 수행 완료. 나는 자정을 넘기기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글을 잘 쓰던 못 쓰든 간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늘 글쓰기를 했다는 안도감이 하루에 마침표를 찍게 했다.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넘쳐났다. 함께 글 쓰는 글벗들만 봐도 글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쩜 상황에 맞는 적절한 아이디어와 표현력은 나 같은 실력을 가진 사람이 넘볼 수 없는 높은 산과 같은 존재였다. 내가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건 하루라도 인증을 빼먹지 않는 성실함 밖에 없었다. 성실함이라도 없다면 글쓰기 모임에 함께 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자정을 넘기지 않기 위해 성실함을 유지하기 위해 글쓰기 모임을 버텨나갔다.
윽! 두 번째 난관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쓴 글쓰기를 바탕으로 고쳐쓰기를 하라는 숙제였다. 겨우 글쓰기를 끝마쳤는데 무슨 고쳐쓰기? 내가 쓴 글은 누군가에게 보일 것도 아니고 글쓰기 대회에 나갈 것도 아닌데 고쳐쓰기가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한 번 쓰기도 힘든데 스스로 쓴 글에 고쳐쓰기를 하는 건 더욱 힘들었다. 고쳐쓰기는 말이 고쳐쓰기지, 버려야 할 문단은 과감히 삭제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애써 낳은 금쪽같은 자식을 버리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이 부분에는 이 문장이 딱인데,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어색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 하는 수없이 문단 전체를 삭제하기도 했는데, 겨우 쓴 글이 긴 바지에서 미니스커트를 입은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졌다. 나름 글쓰기 분량을 생각하며 쓴 글이 장편소설에서 콩트가 돼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내가 쓴 글은 어색한 글이 많아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럼 또 어떠랴. 버리든 버리지 않든 글쓰기는 나만 만족하면 되는 일인데 말이다.
나는 한 달 동안 군인이 되어 씩씩하게 글쓰기와 싸워왔다. 한 달을 마친 나는 십 수개월 군 복무하고 제대하는 군인처럼 홀가분해 미칠 지경이었다. 아니, 중도 탈영 없이 꾸준히 한 달을 버텨온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30일 글쓰기를 무사히 마친 쌍둥이 엄마입니다." 가슴에 훈장처럼 새겨진 글쓰기 마침표를 보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어떤 일이든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나란 사람이다. 30일 글쓰기도 잘 버텨냈는데 무슨 일이든 못할까. 글쓰기를 시작으로 나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고, 소소한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있다.
글을 쓰며 작은 일에도 돋보기를 쓰고 들여다보는 개미 연구가가 된 건 가족들에게도 비밀! 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