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 옷가게 풍경

내일은 나아지겠지

by 보리똥

시골 옷가게가 위치한 시장에는 5일장이 열린다.

우리 가게 앞에도 장이 되면 좌판을 깔고 화장품을 판매하는 노점이 자리 잡는다. 가게 입구를 사용하는 대가로 는 화장품 사장님께 매달 3만 원 깔세를 받는다. 장품 가게 옆에는 젓갈장수, 고춧가루 장수, 개고기 장수, 야채장수, 어묵장수 등 시골 장날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 그려졌다. 개인적으로 개고기를 싫어해서 커다란 플라스틱 그릇에 부위별로 담겨있는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개뿐만 아니라 육류를 먹는 것 또한 한 생명을 빼앗는 행위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인간은 가장 잔인하면서도 동시에 외로움을 느끼는 나약한 동물일 수도 있겠다.


화장품 가게 사장님은 남자였는데, 체구는 왜소하고 갸름한 얼굴에 조금 여성스러운 말투를 사용했다.

자신이 화장품을 판매하는 것보다 옷가게에 어떤 손님이 들어가는지, 가게 안에서는 어떤 일이 생기는지 더 궁금한 사람이었다. 한 번은 하도 가게 안을 훑어보는 탓에 옷을 갈아입는 손님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저 사람은 왜 이리 가게 안을 기웃거리는 거야. 신경 쓰이게..."

맞다. 화장품 사장님은 조금 신경 쓰이는 사람이었다.


그중 가장 불편한 건 가게 건물 안에 화장실이 없어서 화장실을 가려면 가게를 나와 화장품 가게를 통과해야 했다. 가게를 지나칠 때마다 위아래를 훑어보는 아저씨. "화장실 가나 봐요?" 하며 야릇한 웃음을 보이는데 순간 닭살이 확 돋았다. 그것도 화장실을 가려고 가게문을 열고 나올 때마다 한결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뻔한 질문을 하는 화장품 가게 사장님이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가게를 찾는 손님이 없는 날이면 홀로 가게 안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는 나를 화장품 사장님은 안쓰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장날을 맞아 시내에는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옷가게를 찾는 손님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옷가게 근처에는 장날만 되면 천막을 치고 몸빼바지와 티셔츠, 조끼, 바람막이 점퍼를 판매하는 노점이 오픈을 한다. 지나가면서 슬쩍 훑어보니까 시골사람들 취향저격인 옷들이 가득했다. 우리 부모님도 그렇지만 시골 사람들은 옷 중에서 조끼를 가장 좋아한다. 일할 때 입는 조끼, 화려한 형광색 외출 조끼 등 조끼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러니 우리 가게를 찾는 손님은 자연스럽게 줄었다.


이때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화장품 가게 사장님. 심심할 때 바르라며 분홍색과 빨간색 매니큐어 두 개를 내게 전해 주는 게 아닌가. 심심하던 찰나 손톱에 분홍색 매니큐어를 바르며 흡족해하는 순간, 쇼윈도 너머 화장품 가게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반짝이는 분홍색 매니큐어처럼 옷가게만 시작하면 돈을 벌 줄 알았다. 분명 직장을 다닐 때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나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오늘도 죽을 쑤고, 요즘 며칠 동안 장사가 시원치 않았다. 동대문은 가야 할 때가 찾아오는데 매출은 없고, 디자인이 바뀌지 않는 옷을 보며 손님들은 식상하다며 들어왔다가도 그냥 나가버린다. 시골 장사라는 게 도시처럼 많은 손님들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단골손님 위주로 장사를 하다 보니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퇴근 시간은 다가오는데, 오늘 매출은 단 5만 원뿐이다.


오후가 되자 아저씨도 화장품이 깔려있는 좌판을 슬슬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찾아오는 손님도 없는 시간, 화장품 아저씨뿐만 아니라 모든 장사꾼들이 마침표를 찍을 시간이었다. 아저씨는 하루 매출을 계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만원. 이만 원. 삼만 원. 이십만 원. 오십만 원? 월세를 내가며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 옷가게에 비해 아저씨 장사는 꽤 괜찮은 장사였다.


"장사가 잘 될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요. 보니까 오늘 죽 쑨 거 같은데, 다음 달 깔세 3만 원에 2만 원 보태서 5만 원 주고 가요. 저녁밥이라도 사 먹어요."

나는 오늘 매출 5만 원에 아저씨가 준 깔세까지 포함하여 총 10만 원이라는 돈을 들고 퇴근할 수 있었다.


과연 내 장사라는 게 뭘까. 누구에게 구속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지만, 매출 앞에서는 누구든 자유로울 수 없는 것.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아니 열 번쯤 사업을 꿈꾸지만, 현실은 직장인보다 더 험난한 삶을 살고 있었다. 과연 언제쯤 옷가게가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까. 그나마 갖고 있던 돈은 바닥이 나고, 매출은 나아지질 않으니. 푸푸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내일 아침이면 가게에 나와 향긋한 원두커피 향을 맡으며 부지런하게 청소하는 자신을 떠올린다. 지나가면서 커피 향에 취해 들어왔다는 손님 한마디가 위로를 줬다. 다른 어떤 시간보다도 달콤한 시간. 직장인이라면 느껴볼 수 없는 진한 향긋함을 가진것이 내장사였다.


"옷 취향은 별로지만, 언제 우리 가게에 오시면 진한 원두커피 한 잔 대접하고 싶어요. 와주실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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