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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Jul 17. 2022

동대문 새벽시장에 가면 일어나는 일

끝내주게 잘 나가는 옷가게 사장이 꿈

옷가게를 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은 동대문에 간다.

도매시장에 가면 소매점과 다르게 옷가게 사장들의 눈빛은 강렬하다. 적당한 단가와 품질을 고려하여 옷을 사입하는 모습은 사뭇 진지해 보인다.  반면 초점 없이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구매를 망설이는 내 눈빛은 웬만한 도매상이라면 초짜 장사꾼이란 걸 눈치챘을 것이다. 도매시장 중 다른 곳에 비해 사람이 몰려있는 매장이 있는데, 대게 그런 곳은 상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제품이 는 곳이다. 좋은 옷을 고르는 안목이 없는 나는  사람이 모인 곳이면 기웃거리길 여러 차례 반복했다.  


 장사가 잘 되는 옷가게나 지방에서 서울까지 찾아오기 힘든 곳은 사입 삼촌을 이용하기도 한다. 사입 삼촌은 지정된 도매 거래처에서 옷 사입을 대행해준다.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계절 중 겨울옷은 부피가 커서 상당히 무겁다. 사입 삼촌은 상인들이 요청한 리스트를 보며 도매점에서 구입 후 대봉(아이만 한 큰 비닐봉지)에 담아 어깨에 메고 다닌다. 도매시장은 통로가 좁기 때문에 수레라던가 자리를 차지하는 도구를 이용하여 운반하는 게 어렵다. 삼촌이 사입한 옷들은 지역별로 모아 놓은 뒤 버스에 싣는다. 물론 사입 삼촌을 이용하는 장사꾼들 대다수는 잘 나가는 매장일 경우가 많다.  내 옷가게는 사입 삼촌을 쓰기는커녕, 직접 동대문에 가서 발품을 팔아도 남는 게 없어서 힘든 나날이었다.


 첫 사입을 갔을 때는 옷 단가를 물어보는 것도 용기가 나질 않아서 망설이던 기억이 닌다. 심지어 옷 단가와 잘 나가는 옷이 어떤 디자인인지 묻는 일 또한 소심한 성격인 내가 넘어야 할 첫 번째 산이였다. 작은 목소리로 단가를 묻는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장사꾼들에게만 대꾸하는 도매상이 가장 원망스러웠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입 가방에는 가득 차서 들고 다니기 힘든 만큼 큰 가방이 필요했고,  도매상에게는 자신감 넘치는 진짜 장사꾼처럼 보여야 했다. 아직은 작은 옷가게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 괜찮은 가게가 될 거라는 믿음이 절실했다. 


오늘은 용기가 과했는지 한 점포에서 절반 이상의 사입비를 쓰게 되었다. 도매 사장은 초짜인 것 같지만 자신의 가게에서 이 정도 옷을 구매한 내게 처음보다 친절한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 신상이 언제쯤 입고되고 여름 상품은 언제 세일을 많이 하는지 팁까지 알려주었다. 하지만 어쩌나. 친절한 도매상에게 고맙기도 했지만 다양한 옷을 사입하지 못한 실수에 무거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비가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동대문에 가기 위해 내게 남자 친구는 꼭 필요한 운전기사였다. 라디오에서는 <2NE1>에 '내가 잘 나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컬러풀하고 개성 있는 모습으로 노래하는 그녀들이 멋있어 보였다.

"내가 봐도 내가 좀 끝내 주잖아. 어떤 비교도 난 거부해, 이건 겸손한 얘기.

가치를 논하자면 Billion dallar baby, 뭘 좀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아서 알아봐.

아무나 잡고 물어봐 누가 제일 잘 나가..."

노래 가사처럼 나도 내가 끝내주게 잘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눈, 비가 와도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모든 걸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음악이 절정을 향해 갈 때 비는 더욱 거세게 내려 앞이 보이질 않았다.  이런 구중중한 날씨에도 다른 사람들은  부지런하게 옷을 사입하며 삶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이었다. 주황색 사입 가방을 어깨에 메고 우산을 든 채로 동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건물에서 내뿜는 화려한 네온사인은 밤하늘에서 더욱 반짝였지만, 내 마음은 꺼져가는 불빛같았다.  오늘은 어떤 옷을 사입해서 돌아가야 할지 고민이 앞섰고, 넉넉지 못한 사입비는 한숨을 쉬게 했다.


이상하게 동대문에 도착하기만 하면 배가 고다. 나와 남자 친구는 퇴근과 동시에 쉴 틈 없이 동대문으로 향했기 때문.  우리는 음식점보다는 길거리 음식 자주 먹었는데 대표적인 단골 메뉴는 어묵꼬치였다. 일반 어묵이 아니라  떡볶이 소스를 바른 매콤한 어묵꼬치를 좋아했고,  얼얼한 맛이 느껴질 때마다 얼큰한 국물과 함께 먹으면 꿀맛이었다. 우리는 어묵꼬치를 다섯 개씩 먹고 난 뒤, 다음 코스로 얼음 동동 시원한 커피를 마셨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신발은 젖어서 찝찝했다.  오늘은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서 두 다리 뻗고 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입을 끝낸 후 집에 돌아가는 새벽 4시. 집에 돌아가 씻고나면 5시. 얼마 지나지않아 남자 친구는 출근 준비를 해야고, 나 역시  그 시간에 잠을 자는 건 무리였다. 지금 잠들어 버리면 언제 눈 뜰지 모르므로.


옷가게에서 고운 옷 입고 인형 같은 화장을 하고, 반짝이는 액세서리를 한 예쁜 옷가게 사장이 떠오르는가.  우리들이 모르는 세상 너머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잠든 시간두 눈을 비벼가며 옷을 고르다가 다리가 아파 길바닥에 앉아 아이스커피 한 잔을 들이켜는 외로운 사람들이 있었다.  가녀린 어깨에 대봉을 매고 힘겹게 걷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삶이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호락호락한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쉽게 사는 삶이란 없다.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인내할 때 얻는 성공이 진짜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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