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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Jul 23. 2022

브런치에서  관심받길 원하면, 당신은 이런 사람

관심종자가 뭔지 아세요?

21년 5월 11일은  필명 '보리똥'이 정식 브런치 작가가 된 날이다.

합격 통보를 받은 날은 메일을 인쇄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알렸다. 가족과 지인들은 하고 싶은 일이였으니 잘 됐다며 축하를 해줬다. 이후 처음 올린 글이 다음 메인을 장식했을 때는 세상 모든 걸 가진 것 같았다.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을 때 찾아오는 희열은 그 어떤 기쁨보다 행복한 일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지만, 내 안에는 나비가 되고 싶어 꿈틀대는 애벌레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이런 묘한 감정은 대체 까. 아무리 고민해봐도 도저히 정확한 이유가 떠오르질 않는 거다. 올커니!  이런 상황에  내 마음을  한 방에 알아주는 책을 만났다.  바로 김선영 작가가 쓴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일부 중 딱 내 마음속을 비추는 구절이 있었다.


"여러분, 편집자는 작가를 돋보이게 해 주는 직업이지, 본인이 빛나지 않아요. 주목받고 싶으면 작가를 하세요."

"뭐? 내가 주목받지 못한다고?"

나는 내가 노력한 게 티가 나야 하는 사람인데, 그렇지 않으면 억울해서 잠도 못 자는 사람인데, 그건 좀 곤란했다.

겁 많은 나에게 '관심종자' 기질이 숨어 있을 줄이야.
그렇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듯 관심종자는 관심을 먹고살아야 한다.
처음 발견한 내 모습이 낯설었지만, 어쩌겠는가 운명에 따르는 수밖에.

                                                               서강대교가 무너졌으면 좋겠다. 김선영 p.17



그렇다. 내 안에는 김선영 작가가 쓴  글처럼 '관심종자 기질'이 숨어있었다. 누군가에게 주목받고 싶고, 내 실력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외모나 몸매도 꽝, 말솜씨도 꽝, 공부도 못해서 알고 있는 지식도 꽝, 꽝꽝 꽝한 내게도 관심종자가 살아 숨 쉬다니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수 없다.


수많은 것들 중 하필 글을 써서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은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꿈들 대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친구들보다 돋보이는 글을 쓰고 싶었고, 내가 쓴 글이 글짓기 대회에서 우수한 글로 인정받길 원했다. 자, 상상해 보라. 넓은 운동장에 전 학년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 이름이 호명되고,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단상에 올라간 나는 자상한 교장선생님의 상장을 받는다. 상장을 받는 동시에 필름 사진기는 찰칵 소리를 내며 나와 교장선생님 얼굴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는다. 이 얼마나 멋진 상상인가.

하. 지. 만. 아쉽게도 애써 정성들여 쓴 글은 매번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렇고 그런 글로 전락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나와 친하게 지냈던 최연희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글짓기 상이라면 상을 전부 휩쓸던 실력을 가진 친구였다. 내가 상상하고 있는 모든 걸 연희는 현실로 이뤄내고 있었다. 나는 모든 걸 잘하는 연희가 얄밉고 부러웠다.


당시 나는 연희가  어떤 글로 상을 탔는지 읽어본 적 없었다. 분명 나보다 훌륭한 글을 썼을 연희를 상상하니 사촌이 땅을 산듯 배가 아파 죽어버릴 것 같았다.  연가 다양한 글짓기 대회에서 연속으로 금상을 탔던 그날 저녁, 나는 입안에 불을 머금고  험악한 얼굴을 한 욕심꾸라기 용이 돼버렸다.


초등학교 때는 매일 일기를 써야 했고, 일기장을 제출하면 선생님은 일기를 꼼꼼히 읽어주었다. 이런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일기장에 억울한 마음을 표현하는 일뿐이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 처음 부임했었다. 선생님은 피부가 하얗고,  풋풋한 사과 같은 얼굴에 동그란 눈은 사슴처럼 순진해 보였고, 작은 아픔에도 쉽게 눈물지을 것만 같았다. 천사 같은 선생님이 내게 차별을 한다 이거지. 참을 수 없지.


이돈형 선생님께.
오늘은 일기 대신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선생님은 공부 잘하고, 예쁘고 말 잘 듣는 친구만 좋아하나 봐요?
저처럼 공부 못하는 학생이 글쓰기를 할 때마다 상을 못 받는 건, 선생님이 예쁜 친구만 좋아하는 이유죠?
저는 차별이라 생각해요.  공부 못하는 학생들에게도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날 선생님은 내 일기를 읽다말고 수업을 멈추고  자율학습을 하라고 했다. 그리곤 내 일기장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등을 돌리고 앉았다. 빼빼 마른 가녀린 등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았지만, 나는 모른체했다. 선생님은 그날 내 일기장에 긴 답장을 썼다.

'차별이 아니다. 나는 3학년 2반 학생들을 똑같이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선생님에게 답장을 받고 난 다음 날  종일 고개를 숙이고 수업을 했다.



시간이 흘, 교내에서는 어버이날을 맞아  훌륭한 부모님을 떠올리는 글짓기 대회를 실시했다.

나는 시골에서 마을일을 열심히 하시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자랑스러운 우리 아버지'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나갔다. 빨간색 줄무늬 원고지가 연필을 만나 한 장, 두 장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채워갔다.


 일주일 후, 글짓기 시상식이 있던 월요일 아침,  전 학년 학생들은 운동장에 줄맞쳐 모였다. 아침체조를 마친 후 조용한 가운데 어버이날 맞이 글짓기 시상이 있다.


장려상은 학년별로 우수하게 쓴 글이 상을 받았고, 이어서 은상이 호명되던 순간이었다.

3학년 2반 '보리똥 학생'
 나와주세요.



어머나!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글짓기 대회에서 은상을 받게 되는 영광을 누렸다. 상장을 받기 전 교장선생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축하를 해주었고, 나는 쑥스러운 듯 상장을 받았다. 찰나 필름 카메라 셔터 찰칵, 찰칵 소리를 내며 행복한 순간을 기록했다. 상장을 받은 이후부터는 수업을 얼른 마치고 아버지에게 보여드릴 상장 생각밖에 나질 않았다. 기뻐할 아버지 모습을 상상하니, 행복천사가 된 것같았다. 더군다나 아버지 본인 이야기를 멋지게 썼으니 아버지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게 자명했다.

 아버지는 그날도 마룻바닥에 앉아 동네 사람들과 술을 드셨는데, 대화의 화제는 단연 내가 글짓기 대회에서 은상을 탔다는 말이었다.


이보게들, 우리 셋째 딸내미가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탔는데 말여.
학교에서 글을 잘 쓴다고 그렇게 칭찬을 받았다네.
오늘은 술이 달짝지근하네. 허허허

아버지는 저녁 9시 뉴스가 끝날때까지,  베개맡에 둔 상장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후부터 자신이 아닌, 아버지를 위해 '관심종자'가 되 싶었다.  공부못하는 딸이지만, 동네사람들에게 자랑하는 아버지 음성을 듣는게 참 행복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날 이후 단 한 번의  수상경력을 제외하곤 글쓰기에 관련한 상을 받은 적이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글쓰기는 '차별'이라는 일침을 받은 선생님이 주신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한 상이였으리라.


그렇게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조금씩 저물어갔고, 어느새 많은 세월이 흘러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랬던 내가,  늦은 나이가 돼서야 '관심종자'의 기질이 스믈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관심을 받지 못하면 억울해서 잠도 못 자는 나, 송충이는 솔잎을 먹듯, 관심종자는 관심을 먹고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더 늦기 전에 브런치를 통해 관심종자 대열에 합류하고 싶다. 차별하는 선생님도 없고, 모든 걸 잘하는 연희도 없는데 못 할 게 있겠나.  

이제부터 관심종자의 연극은 시작되었다. 브런치가 관심종자의 최고 플랫폼이 되길 희망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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