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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Jul 10. 2022

글을 써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

과연 나는 매일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을 쓰고 싶을 때마다 글감이 짠하고 떠오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쓸 수 있는 글감은 한정돼있고 그나마 떠오른 주제도 표현에 한계가 있었다. 이런 나와 차원이 다른 누군가는 매일같이 멋진 글을 쓰고 있었고, 타인에게 많은 공감도 받았다. 머릿속을 짜내고 짜내어 겨우 쓴 글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쉽게 잊히는 글로 남아버렸다. 또한 그동안 내가 쓴 글은 누군가에게 인정도 받지 못했을뿐더러 나 자신조차도 스스로 쓴 글에 자신이 없었다. 이러려면 굳이 매일마다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


힘든 일을 하면 대가가 있다. 회사에서는 노동을 하면 월급이라는 보상이 있고, 집안일을 열심히 하면 집이 깨끗해진다. 또한 아이들과 부지런하게 색칠놀이를 하면 알록달록 예쁜 그림을 볼 수 있었고, 가위놀이를 하면 멋진 종이 집도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쓰는 글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런 대가가 없는 글을 매일 쓰고 또 썼다.


작년 이맘때로 기억한다. 남편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회사에 재택근무 신청을 하고 두 아이를 엄마에게 맡긴 채 남편과 함께 병원생활을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수술 난도는 높았고, 수술이 끝난 직후에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의사는 이 지경까지 어떻게 남편을 방치했냐며 고통을 참고 지낸 게 신기하다고 할 정도였다. 남편은 영상통화 속 아이들을 보며 다시 너희들을 만날 수 있겠냐며 눈물을 흘렸다. 아빠가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그래도 마냥 신이 났다.


남편을 간호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글쓰기'였다. 절망적인 마음을 남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글을 쓰고 또 썼다. 그때 쓴 글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말수가 없던, 고백이란 걸 모를 것 같던 사람이 내게 고백을 했다.차갑고 도도해 보이던 사람이 고백이라니! 그 사람 마음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 게 신기해서 몇 번이나 허벅지 살을 꼬집어 봤다. 꼬집으니 아팠다. 아픈 걸 보니 꿈이 아니었다.

단 한 번이라도 생각지 않았던, 기대하지 않던 고백이었다.  앞으로 조금 더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만나보자고 한다. 싫지 않았다. 나도 말수가 없는 편이지만 서로가 말이 없다면 불필요한 말을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때론 정말 필요한 말보다 그렇지 않은 말을 더 많이 하며 살던 우리였으니까.

우리는 조금씩 만남 횟수를 늘려나갔다. 영화도 보고, 여행도 떠나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갔으며,  만나지 않은 날에는 온종일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그 사람은 다정했다. 나에 모든 걸 궁금해했고 내가 하는 말에 세심하게 귀 기울여 들어줬다. 엉뚱한 내 이야기에도 손뼉 치며  공감해 주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말주변 없는 내게 말을 잘한단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말을  잘한다고 들어본 적 없는 내게 말을 잘한다니. 생각해보니 나는 그 사람에게만 말을 잘했다. 신기하지. 그 사람 앞에서는 어떠한 말이든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비가 내렸다. 문득 편지가 쓰고 싶어 예쁜 편지지를 샀다. 유독 비 내리는 날이면 편지지는 종이 냄새로 가득했다. 습한 기온이 종이에 잔뜩 베여 마치 잘 말린 풀잎 냄새 같았다. 이어서 종이에 볼펜을 굴리니 , ㄱ, ㄷ, ㄷ을 그리자 잉크는 넓게 번졌다. 번짐 가득한 펜으로 그에게 편지를 써 내려갔다.
우리가 만나는 동안 몇 번의 비가 내렸고, 이런 날이면 더욱 그리움이 커진다. 이것이 정말 사랑일까.
편지를 읽은 그가 전화를 했다. 비 내리는 날 생각나는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게 맞는 거라고.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말이지만 그 말을 믿고 싶었다.

비 내리는 날 생각나던 그 사람이 지금은 정말 아프다. 마음이 아프면 마음을 추스르면 되겠지만 이번에는 마음이 아닌 몸이 아프다. 오늘, 내일, 아니 모레면 퇴원해서 돌아갈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자구 몸에 열이 오른다. 38.3도, 39도, 40도... 세 시간 전부터 열이 떨어지질 않는다. 열이 나고 몸이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지, 늘 괜찮단다. 참는 게 능사는 아니다. 당신은 두 아이가 있고 아직은 젊은 나이다. 부모님은 속상한 나머지 연애시절 건강상태도 안 보고 결혼했냐고 한다. 그땐 그랬다. 그냥 좋으니까. 좋은 감정만으로도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가 아픈 이후부터 우리 삶은 카세트에 있는 멈춤 기능처럼 모든 게 정지해버렸다. 직장도, 아이들과의 생활도, 멋진 저녁식사도 , 드라이브를 즐겼던 행복했던 시간, 모든 게 정지상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건강했던 그 사람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일이다.

오래된 카세트를 꺼내 테이프를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모든 게 멈춤에서 다시 재생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즐겨 듣던 노래가 흘러나온다.

                      21년 7월 21일,  병원에서 그를 위해 남긴 글(네이버 블로그 펌)                    

나는 글쓰기를 통해 아픈 시기를 견딜 수 있었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만약 내 삶에 글쓰기가 없었더라면, 주저하고 쓰러져가는 나 자신을 추스를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비록 누군가 알아주는 글이 아니더라도, 누구보다 잘 쓴 글이 아닐지라도 나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을 위해 글을 쓴다. 그것이 꾸준히 글을 쓰는 이유고, 내가 살아가는 존재가치다.


22년 7월 10일, 우리 가족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브를 즐기는 중이다.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통통통 차 안에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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