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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Jul 02. 2022

책 한권 읽지않은 사람이 독서모임이라니

What?

문: "본인 소개하면서 최근에 읽은 책 중 감명 깊은 책 소개도 해주세요."

답: '제가요 사실, 최근에 읽은 책이 없는데 어떡하죠...'


이렇듯 나의 글쓰기&독서모임은 이미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나는 독서보다 글쓰기가 더 좋은데, 책 소개를 하라고 하니 이런 난감한 상황이 찾아올 줄 몰랐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글쓰기와 독서가 무슨 상관이람', 글쓰기면 글쓰기, 독서는 독서일 뿐, 나는 독서보다 글쓰기에 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 파리 한 마리가 귀찮게 머리 위에서 윙윙 맴돌더니, 녀석은 내 머릿속에서 들어와 한참을 맴돌았다.

'독서와 글쓰기와 무슨 상관이람.... 무슨 상관이람...' 같은 말만 되뇌는 모습이 파리와 무엇이 다를 바 있는가.


함께 참여했던 모임 회원들은 한결같이 자기소개에 적극적이었다. 들어보지도 않은 작가를 소개하며, 책 이야기에 흠뻑 취한 분위기였다. 모임장은 책 소개를 한 회원에게 훌륭한 책이라고 답해주었다. 그 책이 소설책인지 에세이인지 무언지 모를 책 소개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 어쩔 수 없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한 책이라도 소개하는 수밖에. 어찌 됐던 나를 소개하는 짧은 글에 반토막이라도 책 소개가 들어가긴 했다.


우리 모임은 글쓰기로 훈련을 하다가 때로는 독서도 병행한다. 물론 강제성은 전혀 없다. 하고 싶은 의지만 있다면 어떤 자격조건 없이 다독가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모임장이 건네 준 그날의 미션도 수행했다. 글쓰기 미션은 매일 새로웠다. 과거 여행을 통해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시절을 음미하기도 했고, 건강하게 살고 있는 현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한 달간 글쓰기가 끝날 즈음, 모임장은 슬그머니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독서력 PT'다. 독서력 PT란, 헬스 트레이너에게 PT를 받듯, 독서 PT를 회원들과 함께 실천하는 것이었다. 헬스장에 등록해놓으면 운동하러 가듯, 독서도 기간과 시간을 정해놓고 매일 훈련하는 것이다. 나처럼 독서력이 약한 사람을 위해 약 2주 동안,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자유 선정해서 정해진 날짜대로 블로그에 미션을 수행하고 인증을 하면 된다.


독서 PT 첫째 날,  모임장은 회원들에게 미션을 제시했고, 나는 또다시 난감한 상황을 맞이했다.

  "당신은 주로 어떤 책을 즐겨 읽나요?, 책을 꾸준히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 당시 나는 거짓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회사에서는 점심시간을 제외하곤 남는 시간이 없어서 독서가 어려워요.
꼬박 밥은 챙겨 먹으면서 정작 삶의 나침반이 되어 줄 독서습관을 들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번 독서 PT는 꾸준한 독서를 위한 첫걸음이에요.
거북이 독서라도 이해해 주실 거죠?



내가 선택한 첫 자유 책은 장미숙 작가의 <고추밭 연가>였다. 책은 작가의 어머니 이야기로 잔잔하게 시작되었다.  독서 트레이너(모임장)가 하라는 대로 앞, 뒤 표지를 살피고 저자와 목차를 검색했다. 저자는 수많은 수상경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 이야기를, 그저 커피 두 잔 가격이면 만날 수 있는 기회라니. 목차를 둘러보니 따뜻한 시골이야기로 가득했다. 목차에는 고추밭 연가, 도라지꽃, 전 짓 다리, 토란 이야기, 똬리, 절구통, 자전거, 뜨개질, 마을회관 등 저절로 시골을 연상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젖기를 반복했다. 어린 시절 내게 고추밭은 재미있는 놀이터였지만, 우리 엄마에게는 생계가 달린 장소이기도 했다. 본인 허리 휘는 줄 모르고 리듬 타듯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던 우리 엄마. 리듬은 점점 빨라지다가 느려지기도 했다. 콧방울에 송송 맺힌 땀방울은 누가 보면 눈물방울이라고 해도 될 것처럼 우수수 쏟아졌다.

독서 PT 4일째 되는 날, 정말 신기한 일이 생겼다. 블로그에 쓴 내 글을 보고 <고추밭 연가> 작가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감동을 넘어 말문이 막히다>는 주제로 내 글을 언급하는 글을 남겼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작가님의 감사 인사는 마음속을  뭉클하게 했다. 독서가 주는 기쁨 치고 최고로 행복한 날이기도 했다.

사실 저는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필력이 내로라하는 작가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책을 펼쳐놓고 공부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밑줄 쫙쫙 긋고 손글씨로 정성 들여 필사까지 하는...
그야말로 독서 PT로 연재를 하고 계십니다.
<고추밭 연가>는 쉽게 쓴 책이 아니었습니다.
그걸 알아주는 것 같아 저는 기분이 좋습니다.
블로그를 오랫동안 하면서 많은 인연을 만났습니다.
무엇보다 글로 맺은 인연들이라는 게 좋습니다.
'제게는 잊지 못할 사람들 중'한 분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장미숙 작가님은 소소한 내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와 매일같이 공감 버튼을 살포시 누르고 간다.

다른 날에는 내가 남긴 글에 용기와 격려를 받기도 했다. 책을 쓴 작가가 직접 내가 쓴 블로그에 방문하는 일은 SNS가 활발한 요즘 같은 시대에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만일 내가 독서모임을 하지 않았더라면 저자와 소통할 일이 있기나 했을까. 매일같이 맘 카페에서 구매후기나 보고 구매욕에 불타오르며 내 아이가 최고라고 떠벌리는 일명 '맘충'으로 남았을 터. 글쓰기와 독서모임을 시작하면서부터 맘 카페는 가끔 생각날 때 들어간다. 지역 내 엄마들과 모여 수다 떨기보다 독서모임 회원들과 인생에 대해 논하고 기록하는 일이 더 즐거워졌다.


한 번은 철학 책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가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철학수업은 고리타분했고 따분했다. '철학'하면 하품부터 먼저 흘러나오던 내가 유명한 철학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중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세이 쇼나곤에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이었다.

"정말 별 것 아닌 사소한 것이 네게 위안을 주는구나. 그렇지 않으냐?"
"예. 왕비마마. 정말 위로가 됩니다.
하지만 마마께서 생각하시는 만큼 사소하지는 않답니다."


'쇼나곤은 붓 가는 대로 따라간다'는 <즈이 히즈>를 하고 있는데, 즈이 히즈는 우리말로 '수필'에 해당한다.

즈이 히츠를 실천하는 작가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을 따라가 지적 가려움을 긁은 다음,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글의 구조를 부여하기보다는 구조가 스스로 나타내게 한다.

나는 철학책을 통해 '수필'의 매력을 느끼며 글쓰기를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나는 글쓰기와 독서에 재능이 없지만, 이런 사소하다 느껴지는 행위들이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이란 것을 깨닫기도 하였다.


글쓰기와 독서모임을 시작한 지는 햇수로 1년 하고도 반년이나 되었다. 제대로 된 독서모임을 오랫동안 진행해온 회원에게는 명함조차 내밀기 부끄러운 시간이지만, 짧은 시간이 가져다준 지혜는 그 어떤 시간보다 깊고 그윽했다. 처음 모임에 참여하며 착각했던 글쓰기와 독서는 별개가 아니라 한 몸 한뜻이라는 사실도 독서가 가져다준 최대 수혜다. 지난달은 모임장인 작가님의 책이 출간되었고, 저서 <어른의 문해력>으로 글쓰기 PT를 약 한 달 동안 꾸준히 실천해왔다. <어른의 문해력>을 바탕으로 다시 시작한 신영복 선생의 마지막 강의 <담론>으로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책 모임은 다독보다는 정독을, 정독보다는 사독(천천히 사색하는 독서)을 하고 있는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간을 만끽 중이다.

오후가 되어 햇살이 책 한 페이지를 밝게 비췄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절망에 휩싸일 때마다 햇살은 이 구절을 읽으라며 지름길을 안내해 주었다. 햇살은 따듯했고 다정했다. 내게 있어 독서모임은 햇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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