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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Jun 25. 2022

부끄럽지만 우리 집 식탁을 소개하려 해요

띠리링 글쓰기 여행 중

처음 아파트에 이사 왔을 때 가장 갖고 싶은 것은 '식탁'이었다.

이사 오기 전에는 워낙 작은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식탁은 고사하고 밥, 국그릇 반찬 두 가지만 놓으면 여유공간이 없는 작은 밥상이었다.  밥상의 최대 장점은 식사가 끝나고 나면 네 다리를 고이 접어 작은 공간에 쏙 집어넣을 수 있는 편리성이 좋았다. 어차피 남편과 나는 두식구였고, 단출하게 먹는 습관 때문에 넓은 밥상은 불필요했다. 하지만 작은 밥상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동생이나 부모님이 집에 놀러 올 때면 여럿이 둘러앉을 수가 없어서 누군가는 땅바닥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식구들이야 그렇다 치고 처음으로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는 더 난감한 상황이 생겼다.  키우던 강아지가 밥상 끄트머리를 물어뜯어버려서 합판을 덮고 있는 시트지가 벗겨져있던 상태였다. 그럴듯한 식탁이 있을 때 친구를 초대했으면 좋을 걸, 시트지가 벗겨진 밥상에 앉아 친구에게 차 한잔을 대접하는 마음은 착잡하기까지 했다. 언젠가는 나도 예쁜 식탁에서 친구와 차 한 잔 마시고 싶다는 바람이 굴뚝같았다.


15년 된 아파트에 이사 오면서 가장 먼저 구입한 건 단연 식탁이었다.  그것도 상판이 시트지로 덮인 식탁이 아니라 100% 원목으로 된 식탁 말이다. 남편과 나는 조금 흠집이 있어서 소비자에게 외면당하여 저렴하게 판매하는 원목 판매 전문점에 찾아갔다. 모양도 제각각, 나무 색상도 참 예쁜 식탁들이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외관에 있는 모난 곳을 아무리 찾으려 해도 매끄럽게 생긴 것들 뿐이라 굳이 흠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우리가 맞춰야 하는 건 오롯이 판매 가격과 가족수였다.  4인 가족이 앉을 수 있지만, 대여섯 가지 반찬에 국그릇을 놓아도 비좁지 않게 느껴질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원목 색상은 너무 어둡지도, 그렇다고 밝지도 않은 중간 정도면 좋겠고, 의자 네 개는 일반 의자가 아니라 절반은 벤치의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벤치의자 붐이 살짝 불긴 했다.) 마침 매장에는 내가 원하는 느낌의 식탁이 있었고, 식탁에 어울리는 의자만 조합하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의자는 특별한 디자인이 없기 때문에 망설임이 없었지만 문제는 벤치의자였다. 매장에 있는 벤치라곤 한 가지밖에 없어서 벤치의자에 식탁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었다. 벤치의자와 식탁은 원목 색상도 맞춘 것처럼 제법 잘 어울렸는데 의자가 식탁보다 더 길었다. 덕분에 일반의자처럼 벤치의자를 식탁 밑으로 쏙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벤치 의자야 굳이 식탁 밑으로 넣지 않아도 그 정도 불편함 쯤은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우리 집 부엌에 식탁이 생겼다. 식탁 위에는 예쁜 등불이 음식을 비추길 바라는 마음에 철모 양 샹들리에를 고민해서 설치했다. 남편과 나는 반찬 한 가지를 놓고 밥을 먹으면서도 운동장 같이 넓은 식탁이 좋다며 행복해했다. 작은 밥상에서 커피를 마시던 친구가 집들이 겸 집에 놀러 왔을 때는 친구는 식탁이 참 튼튼하고 예쁘다며 칭찬했다. 식구들이 집에 온 날은 도란도란 앉아서 편안하게 밥도 먹고 후식까지 즐겼다. 엄마와 함께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을 때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앉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쌍둥이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우리 네 식구는 식탁에 앉아 두 아이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를 불렀다. 컴컴한 부엌에 잔잔하게 빛나는 촛불은 아이들에게 가장 설레는 순간이었으리라. 축하가 끝난 후 식탁 위에서 먹던 초콜릿 케이크는 세상 어떤 음식보다 달콤했다.

언젠가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식탁이 되었다. 밥을 먹고 난 뒤 식탁 위를 말끔하게 청소한 후 노트북을 꺼내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쓰기를 하며 마음 편안한 음악을 듣기도, 고소한 라테를 마시기도 했는데, 나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누군가는 멋진 나만의 서재가 갖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작은 식탁 하나로도 충분했다. 비록 주방이 훤히 보이는 주방 안에서 펼쳐지는 사소한 글쓰기였지만, 작은 행위가 주는 기쁨은 그 어떤 기쁨보다도 멋졌다.

누군가 내게 "당신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고민 없이 대답할 것이다.

"제가 행복한 순간은요, 우리 집 식탁 의자에 앉아 글 쓰는 시간이요."

비록 멋진 풍경 하나 없는 꽉 막힌 공간일지라도 , 나는 이곳에 앉을 때마다 마음속 수다쟁이가 된다.

나는 오늘도 식탁 위에서 마음속에서 잔잔한 여행 중이다. 하늘땅만큼 행복한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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