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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Jul 30. 2022

서태지와 아이들, 이승환  노래가 내게 남긴 것

글쓰기가 노래를 만날 때 , 아니 노래가 글쓰기를 만났을 때

이른 아침,  마음에 와닿는 음악을 켠 뒤 따뜻한 차 한 잔을 준비한다.

하루 시작을 알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나만의 리츄얼이다. 늦잠을 자서 일찍 일어나지 못해 짧은 시간 출근 준비를 할 때도, 운전하는 차 안에서도 음악을 듣는다. 특히 다른 곳보다 차 안에서 듣는 음악이 좋다. 좁은 공간에서 듣는 음악은 마음을 집중하게 하고 가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걸 느낀다. 오늘 듣는 가수는 그리움이라는 마법을 걸었다. 그리워져라 뿅. 행복해져라 뿅. 가슴 따듯해져라 뿅. 노래는 허전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마술사가 맞다.


음악을 처음 접했던 시절에는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었다.   테이프에는 A면, B면이 있었는데 조금 성능이 좋은 카세트는 구간 반복을 자동으로 했었다. 노래를 듣다가 다시 한번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뒤로 가기,  앞으로 가기로 테이프를 돌려줘야 들을 수 있었다. 뒤로 돌릴 때 윙윙윙, 앞으로 돌릴 때 윙윙윙.  물론 지금처럼 음악 듣는 일이 쉬운 세대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아날로그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듣고 싶은 음악을 위해 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는  또 다른 설렘이었다.


두 번째 설렘은, 테이프를 산 뒤 노래를 듣기 위해  투명 비닐을 벗길 때 들리는 소리다. 비닐속에는  과연 어떤 사진과 노래가 담겼을지 호기심어린 눈으로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는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듣는다. 느린 노래가 더욱 느려지게 들리는 건 테이프가 점점 늘어지는 이유였다. 그렇더라도 좋아하는 가수 테이프가 하나 둘 책상 한편 가득 채워질 때 느끼는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음악가도 아니면서 테이프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피아노 '도'자도 어지 모르는 형편없는 사람이 음악을 향한 짝사랑에 빠진 꼴이다.


그 옛날, 우리 큰 언니는 나보다 더 음악을 즐겨 듣던 사람이었다. 아마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가수를 좋아하게 된 것도 언니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저녁 8시가 되면 언니 방에는 알 수 없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는 빠르지 않았으며 잔잔했다. 하지만 어떤 날은 시끄러울 정도로 빠른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들이 몇 곡 있다. 가수 오태호의 '기억 속의 멜로디', 이오공감에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서태지와 아이들의 '너에게'등 언니가 좋아했던 대표적인 가수였다.


언니의 영향으로 내가 좋아했던 가수는 얼굴도 모르고 음악 먼저 알게 된  오태호와 이승환이었다. 이 들이 만든 만든 그룹이 '이오공감'이다. 이오공감 음악을 알고 있는 분이 있을 거라 믿는다.  그 시절 이승환 목소리는 지금보다 꾸밈없이 순수했고 맑았다. 오태호는 노래에 진심이었다. 나지막하지만 호소력 있는, 마음이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 것 같은 따뜻한 음성을 가진 가수였다. 그런 깊이가 있는 소리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가수 이정봉, 화이트, 토이, 미스미스터, 이장우 노래를 즐겨 들었다. 특히 가수 이정봉을 좋아해서  팬미팅에 참여해 그를 만난 적도 있었다. 이정봉이 화면에서는 평범하고 얼굴도 커 보이지만,  실제 만난 이정봉은 그렇지 않았다.  키가 180센티는 넘는 호리호리한 체격에 잡티 하나 없이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사람이었다. 얼굴만 보더라도 어딘가에서 빛이 났다. 당시 여드름이 나 잡아 잡수 하는 내 얼굴에 비하면 그는 지금까지 내가 봤던 남자 중에 가장 잘생긴 남자였다. 그랬던 그가 내 얼굴을 보며 한마디 했다.

"어디서 오신 누군지 소개 좀 해줄래요?"

팬클럽 회원이라곤 10명 남짓이 모인 작은 커피숍에서 그의 음성이 내 머릿속을 맴돌었다. '소개 좀 해줄래요.''해줄래요.'  암만요. 다들 서울 어디에서 왔다고 소개할 때, "시골에서 왔어요."라고 소개했던 기억이 난다. 현재 그는 팬미팅 때 멀리 시골에서 몇 시간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 여학생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직도 추억이란 놈은 가슴속 어딘가에 콕 박혀 이따금 마음을 아련하게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처음으로 미팅을 했다. 내가 짝사랑했던 그는 공부를 잘해서 명문고에 다니고 있었다.  고운 피부에 쌍꺼풀 없이 작은 눈, 청바지에 반듯해 보이는 남방을 입고 온 그에게 홀딱 빠져버린 철없는 시절. 우리는 첫 미팅 이후 영화도 보고 떡볶이도 먹으며 두세 번 정도 만남을 지속했었다.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즈음, 전화벨이 울렸고, 처음 듣는 중년쯤 돼 보이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보욱이 엄만데요. 우리 보욱이가 좋은 대학에 가려면 여자 친구를 만나면 안 돼요. 서로 공부해야 하니까 연락도 하지 말고, 만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마지막으로 만날 날을 약속했다. 우리는 영화도 보지 않았고 매운 떡볶이도 먹지 않았다. 영화관 앞에서 쭈뼛쭈뼛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하얀색 노래 앨범을 건넸다. 화이트 3집 앨범이었다. 우린 그렇게 노래를 남긴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긴 이별을 했다.


내가 너를 처음 봤을 때, 넌 아주 작은 소녀.
난 너에 짝사랑을 받던 너보다 조금 어른.
너는 나를 좋아했지만 내 눈엔 너무 어려.
난 그냥 좋은 오빠로만 너를 대하곤 했어.
.
세상이 조금씩 변해가듯
내 모습 내 생각도 바뀌어만 가고.
어디선가 너도 변해가는 걸
난 의식하지 못했던 거야.
-화이트 '소녀'-


 

화이트 3집에 있는 '소녀'노래를 들으면 이따금 그가 떠오른다. 세월이 흘러 시대는 변했지만 가수 유영석의 음성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변한 거라곤 나 자신뿐.


나는 지금도 여전히 시간 상관없이 음악을 듣는다. 특히 글쓰기를 하며 음악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해진다.

비 내리는 날엔 마음보다 더  울적한 노래를, 봄이면 꽃비 내리는 노래를, 가을에는 낙엽 밟는 노래를, 겨울에는 눈사람 노래를 찾아 듣는 나는 어쩔 수 없는 노래쟁이.

나는 오늘도 글을 쓰기 위해 노래를 듣고, 노래를 듣기 위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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