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똥 Aug 07. 2022

글쓰기가 주는 즐거움 세 가지

즐거운 건 재능과 무관하죠

나는 2020년 11월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쓰기는 블로그에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정도였다. 누구처럼 멋진 글을 쓰지 못했지만, 매일 쓰는 일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 한 잔을 준비한다. 노래를 따라 부르게 하는 가요보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나 기타 선율을 좋아했다. 그 해 겨울 유튜브 채널에서 내가 즐겨 듣던 음악은 기타 음악이었다. 기타를 연주하는 여인은 반짝이는 조명이 있는 침대 위에 앉아 있다. 곁에는 노란색 고양이가 그녀의 연주를 감상하고 있다.  딴 딴 딴 따 따라라 따라라 따라라 딴딴 딴딴. 이따금씩 음악을 따라 부르는 고양이 소리가 들리는데, 고양이도 나처럼 기타 선율이 좋은 것이다. 고양이의 흐뭇한 미소를 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커피는 거품이 잔뜩 들어간 라테를 좋아했다. 조금 더 풍부한 거품을 맛보고 싶어 구입한 커피머신. 이 정도 사치쯤이야 아침에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라테 캡슐 중 하나는 거품을 내기 위한 우유 캡슐이었는데 뽀얀 우유가 컵에 쏟아질 때 달콤한 향이 코끝에서 맴돌았다. 진한 갈색 커피가 우유 속에 풍덩 빠질 때는 나도 함께 빠져드는 것 같았다. 이른 아침은 조금 더 여유 있게 커피와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따뜻한 커피를 들고 식탁의자에 앉았다. 식탁 위를 비추는 불빛은 따뜻한 전구색이다. 집이 환해 보이려면 백색 등이 좋지만, 내가 머무는 공간만큼은 전구색을 선호했다. 천장 불빛은 노트북을 비췄고, 식탁 위를 감쌌다. 어제저녁 식사를 마치고 깨끗하게 정돈해 놓은 식탁은 아침마다 참한 서재로 변신한다. 손가락은 자판을 이리저리 누르며 통통통 소리를 냈다. 어디선가 들리는 마음이 내는 소리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때론 부지런히 움직이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아침 6시, 모니터에는 절반쯤 글이 채워졌다. 특별하지 않은, 그렇다고 잘 쓰지도 않은, 너무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는 글이 하나 둘 자리를 차지했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 주길 바라는 마음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좋았다. 음악을 듣고 차 한잔을 마시며 글을 쓰는 작은 행위들이 나를 위로하는 느낌이 들었다. 회사일로 힘들었던 마음이, 두 아이 육아로 지친 마음이, 애정이 식어 서운했던 남편에 대한 마음이 글을 쓰기 시작하며 치유되었다. 글을 쓰고 나니 심각하지도 않은 일에 마음 아파했고 신경을 곤두세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쓰기는 나에 정신적인 선생님이었다. 재밌는 건 내가 환자고 또 내가 주치의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3개월이 지나면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지 2년째 되는 날이다. 내 기록은 블로그에 고스란히 잠자고 있다. 이따금 지난 글들을 꺼내보면 아무리 봐도 글재주는 꽝이다. 하지만 글을 쓰며 발견하게 된 사실은 내게는 '솔직함'이 있었다.  알고 있는 지식이 없어서 어려운 단어도 못쓰겠고, 많은 책을 읽어서 유식한 티도 못 내는 나는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 밖에 없었다. 어설픈 글이지만 꾸미지 않은 내 글은 내가 봐도 갓 담근 된장 같은 글이었다.  된장은 숙성되면 될수록 맛이 짙어진다. 된장을 싫어하는 사람은  냄새나고 곰팡이도 껴서 기피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  숙성을 된장은 맛있는 된장국이 된다. 따끈한 된장국 한 사발 들이켜면 소화가 잘 돼서 황금똥을 볼 수 있.  비록  설픈 글 실력일지라도 언젠가는 잘 숙성된 된장처럼 감칠맛을 거라 믿는다.


오늘따라 기타 선율이 더욱 아름답게 들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태지와 아이들, 이승환 노래가 내게 남긴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