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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Sep 25. 2022

새벽 기상이 준 선물

도전이라는 기쁨

몇 년 전부터 새벽 기상을 시작했다.

언젠가 미라클 모닝이라는 열풍이 불 때 우연히 접한 유튜버 영상에 반해 '한 두 번쯤은 시도해 볼 수 있겠다'라고 가볍게 여긴게 시작이 되었다.  당시 나는 새벽 기상은커녕 새벽 2시 30분이 되어 잠들었고, 다음 날 아침이면 출근 30분 전에 겨우 일어나 허둥지둥 뛰어다니던 직장맘이었다. 하도 뛰어다녀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다.


 아이가 곁에 없던 시절에는 새벽에 잠들었던 빈도가 더욱 심했다. 심지어 새벽 4시 즈음 잠들었다가 두세 시간만 자고 회사에 갔으니 일할 때마다 뽕 맞은 사람처럼 헤롱헤롱 대기 일쑤였다. 물론 업무 집중이 될 리 만무했다. 오전 오후 가릴 것 없이 피곤함이 찾아오는 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충이라 여겼다. 소변 신호도 오지 않는 화장실에 들어가 앉아 눈을 붙이기도 했고, 점심을 먹고 30분은 꼭 잠을 자야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가만있자. 퇴근 후 새벽이 가까워져 오는 시간 동안 과연 나는 무슨 일을 했을까. 텔레비전을 보는 게 끝나면 쓸데없는 연예인 신상에 관한 소식, 좋아하는 쇼핑몰에 신상이 입고됐는지 여부도 중요했다. 그렇게 잠들기 전 몇 시간을 고스란히 낭비한 후에야 억지로 잠드는 날이 지속됐다.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그 빈도가 더욱 심해졌다. 아이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여긴 나는 아이를 저녁 10시에 재웠다. 이후 청소를 했고, 나머지 시간을 자유시간으로 만끽하는 게 삶의 낙이라 여겼다. 아이가 잠든 시간이야말로 내가 숨 쉬는 이유라고 생각했다.그러니 잠들지 않는 새벽시간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새벽 기상을 규칙적으로 잘 해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새벽 기상은 의지로 될 일도 아니다. 짧은 수면을 하고 일어나야 하는 고통스러운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다. 바로 저녁 취침시간이다. 저녁에 언제 잠이 들었느냐에 따라 즉, 수면 질에 따라 새벽 기상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가 판가름 난다. 그래서 늦게 잠든 날은 조금 더 자는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날은 일찍 눈이 떠진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날이다. 어제 늦은 시간에 커피 두 잔을 마신 탓인지 늦게 잠들었는데도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났다. 일어나서 물 한잔을 마시고 거실 바닥에 흐트러져있는 장난감을 정리했다.


새벽 기상을 하면서 달라진 점이라면, 아이들이 잠든 후 무언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소도 아침 일찍 일어나 하면 되고, 웬만하면 오늘 끝내지 못한 일은 아침에 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저녁시간에 대한 부담을 조금 덜어낼 수 있다.


새벽시간을 통해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공부 머리는 제로라며 일찌감치 공부를 포기했던 사람이 하필 아이들이 가장 어린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으니 신기한 일이다. 물론 학습은 권장 진도보다 한참 뒤처지긴 했지만 과제 두 개는 제 날짜에 제출했다. 중요한 건 내가 무언갈 하고 있다는 것이고 늦은 나이가 돼서야 진정하고 싶은 일을 차근차근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글쓰기도 그중 하나다.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성격상 규칙적으로 매일 글을 쓰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랬던 사람이 새벽 기상을 시작하고 난 뒤 매일같이 앞 뒤도 맞지 않는 글을 쓰고 있다. 글쓰기 모임이란 것도 매 회 차수마다 참여하고 있으니 작년 겨울에는 글 모임장에게 개근상까지 받을 정도였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성실함, 꾸준함이 약한 내게 우연처럼 새벽 기상을 통해 글쓰기를 하고 있고 공부에 도전 중이니 이만하면 잘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아침에 듣는 음악은 나를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해 준다. 아침에 쓰는 글은 저녁시간과는 또 다른 감성을 불러온다. 조금 더 또렷한 정신력과 더불어 출근시간 전 마감이 있는 글쓰기로 꼭 써야 출근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도 생겼다. 글의 완성도는 미흡하지만 어쨌거나 하루를 글로 시작하는 아침은 조금 더 상쾌한 기분이 든다.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귀찮게 느껴지지 않는 상쾌함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치킨 한 조각을 먹다가 시원한 콜라를 마실 때 느껴지는 짜릿함이라 해야 할까. 어떤 비유던 마냥 좋다. 좋으면 장땡이다.


조금씩 아침이 밝아온다. 동네 강아지는 이른 아침부터 멍멍멍 제 할 일을 하느라 바쁘다. 아이들이 잠든 이 시간이 엄마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위로의 시간이자 희망의 시간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이제 씻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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