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엄마와 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똥 May 23. 2021

식혜 좋아하세요?

식혜덕후 대참사


살 얼음 동동 떠있는 뽀얀 빛깔 식혜. 밥보다 식혜를 좋아한 엄마를 아이들도 꼭 닮았다.

"엄마, 시케, 시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가 고프면 우유를 찾던 아이들이 이젠 식혜를 달라고 한다. 표현력이 예전보다 좋아지면서 요구 사항이 많아진 이유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그 흔한 콜라나 사이다도 없고, 아이들을 위한 음료도 없다. 개인적으로 탄산음료를 좋아하지 않는 취향이라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도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료를 주지 않게 됐다. 반면 아빠는 엄마와 다르게 탄산음료를 좋아한다. 냉장고에 식혜와 콜라가 있다면 콜라부터 집어 드는 콜라 파 남자다. 물론 혀끝에 닿을 때 톡 쏘는 탄산은 느끼함을 해소시켜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는 콜라를 좋아하는 아빠보다는 엄마 식성을 닮길 원한다.


"우리 아가들이 식혜를 그렇게 좋아해? 어이구! 집에 오면 할미가 식혜 좀 만들어줘야겠네."

전화 통화를 하며 "시케, 시케"  외치는 손자 목소리를 들은 할머니는 손수 식혜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엄마표 식혜는 말 그대로 엄마 손맛이 담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리운 맛이다.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 주는 식혜는 시중 식혜와는 다르게 유난히 뽀얗다. 엄마는 집에 찬 밥이 남을 때면 어김없이 식혜를 만들었는데, 밥 양이 많아 물 반, 밥 반이 돼버리기 일쑤였다. 식혜를 먹기 위해선 밥숟가락이 꼭 필요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살얼음이 진 식혜를 국그릇에 담은 후 야금야금 숟가락으로 퍼먹기 시작한다. 너무 달지도, 딱 적당한 달콤함은 세상 어떤 음료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엄마! 얘가 국물 다 먹고 밥풀만 남겨놨어!" 밥, 국물을 절반씩  퍼서 먹는다고 한 건데, 어김없이 밥풀만 남게 되는 참사가 발생한다.   



엄마표 식혜 조리법

재료: 엿기름, 쌀, 물, 설탕

1. 엿기름을 알맞게 계량하여 따뜻한 물에 넣어 담근다.

2. 윗물이 맑아질 때까지 3시간 정도 그대로 두었다가 윗물을 따라내고 찌꺼기는 버린다.

3. 쌀밥에 엿기름물을 섞고 고루 저어 보온밥통에 담아 4시간 정도 둔다.

4. 삭힌 식혜를 취향에 맞게 설탕을 넣으면 된다.


*겨울에는 냄비째로 밖에 보관하면 살얼음 동동 식혜 완성


요즘은 모든 게 간편한 시대여서 엿기름도 보리차처럼 티백으로 판매한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식혜가 그리워 티백 엿기름을 사서 처음으로 식혜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엿기름 물로 보온밥통에 밥만 삭히기만 하면 되니 아무것도 아니었네?' 이런 레시피대로라면 생각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식혜를 만들 것만 같았다.  단 맛을 좋아하지 않으니 엄마처럼 기호대로 설탕을 넣을 수도 있고, 역시 식혜는 만들어 먹어야 제이다.


저녁에 뚝딱 만들어 다음날 아침 맛 좋게 변해있을 식혜를 떠올리니 평소보다 일찌감치 눈이 떠졌다.

웬걸! 잔뜩 기대하며 보온밥통을 열었더니, 내가 알던 식혜 모습이 아니라, 이건 죽이다 죽! 끈적끈적 풀처럼 늘어나는 생김새에 목구멍에 넘길 땐 영락없는 맛없는 죽이었다. 단맛이 가미되면 좀 나이 질까 싶어 설탕을 들이부었다. 또 웬걸! 설탕을 아무리 넣어도 이건 죽에 설탕을 넣은 격이다. '느끼하다! 느끼해!, 이게 무슨 맛이야?'  아이들은 엄마가 만들어주는 식혜를 먹겠다고 주방에 서서 엄마를 기다렸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얘들아! 만들지 말고 그냥 사 먹자!, 엄마 식혜 못 만들겠어!"

"시. 케, 어? 시 케... 으 앙~, 엄마 시케..." 울음보가 터진 아이들에게 당장 슈퍼로 달려가 시중 식혜를 사줄 수밖에 없었다.


식혜를 만드는 일이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간단하게 만드는 음료가 아니었다. 어릴 적 엄마가 만드는 식혜는 별다른 노하우가 있던 것 같지 않은데, 엿기름을 담가 고운 채반에 담아 거르는 일, 정성 들여 달이는 행위는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엄마만의 노하우였던 것이다. 결국 처음 시도한 식혜는 실패로 돌아갔고, 엿기름 티백이 남아있었지만 더 이상 식혜 만들기를 시도하지 않았다.


"엄마, 이번 주에 아이들과 가면 꼭 식혜 만들어줘. 그래도 엄마가 만든 식혜가 제일 맛있어. 궁금한 게 있는데,  식혜가 죽이 되는 이유는 뭐야?

"죽이 왜 돼? 엄마는 한 번도 죽이 된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식혜가 죽이 됐다는 딸의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다.  이번 주 엄마가 만들어 주는 식혜를 먹으러 갈 예정이다. '엄마표 식혜는 변함없이 맛있겠지. 할미 표 식혜를 먹은 아이들은 "할미 시케, 할미 시케" 를 외칠 테고'.


셋째 딸내미 역시 엄마가 만들어주는 식혜가 세상 최고!

엄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