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 산다는 것

룸메이트 에피소드 2: 친구가 룸메이트가 될 때

by 최가을

"모르는 사람이랑 어떻게 살아? 당연히 마음 맞는 친구랑 같이 살아야지!"


룸메이트를 구해야 할 때,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생각이다. 낯선 사람과 부딪히며 겪게 될지 모를 불편함보다는, 모든 것을 이해해 줄 것 같은 친한 친구가 훨씬 안전한 선택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방을 쓰면 매일 밤이 수학여행 간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고 말이다.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고민을 털어놓으며 수다를 떨고, 마치 청춘영화의 한 장면처럼 즐거운 날들만 가득할 거라는 장밋빛 환상을 품는다. 남보다는 친구와 함께 사는게 훨씬 나을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함께 노는 것'과 '함께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밖에서 만날 때는 보이지 않던, 아니, 굳이 알고싶지 않았던 친구의 사소한 생활 습관들이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너무나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사용한 컵을 바로 씻지 않고 싱크대에 넣어두는 모습, 치우지 않는 과자 부스러기, 제때 정리하지 않아 산처럼 쌓여가는 빨래, 아무렇게나 벗어둔 옷가지들, 청소하지 않아 널부러진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등. 만약 정리정돈을 정말 잘하는 친구라면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그럼에도 나와 맞지 않는 생활 습관이나 식습관, 수면습관 등의 생활양식이 눈에 속속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같이 살다보니 배울 점이 많은 친구가 있다. 어쩜 저렇게 단정하고, 훌륭하게 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말이다. 상대적으로 내 생활방식이 엉망이라 자괴감에 빠질 수 있다. 나도 저렇게 닮아 가야겠다, 다짐을 해보지만 굳은 습관을 바꾸기가 참 쉽지 않다. 그러면 나 스스로가 한심해지고, 친구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 자존감이 점점 쪼그라든다.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 경험상 그 누구를 만나도 너른 마음으로 무조건 수용 가능한 사람은 없다.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상대와 함께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면 서로 맞춰가겠지만,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친구와 함께 살기 시작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 건너편 방에 같은 학과를 다니는 친한 친구 둘이 입주했던 적이 있다. 이미 학교에서 같이다니는 친한 친구였고, 마음이 맞아서 같이 살자고 결정했다고 했다. 집 전체 사람들과도 잘 지내는 좋은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학교에서도 내내 같이 수업받고, 프로젝트 같이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점점 한 명이 방에 있고, 다른 한 명은 거실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던 듯하다. 그래도 둘은 솔직하게 속을 터놓는 친구들이라 같은 방까지 쓰니 서로에게 살짝 질린다고 말하면서 알바라도 따로 해서 다행이라고 장난스럽게 서로의 진심을 이야기하며 끝까지 잘 지냈다. 물론 1년 같이 살고 각자 서로의 길을 가긴 했지만. 차마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못한 내 친구의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생겼지 싶다. 안 보면 차라리 괜찮은데, 같이 살면 항상 볼 수 밖에 없으니 괴로운 시간도 많았을거란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친구니까, 이 정도는 이해해야지'라며 애써 넘긴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하루 이틀 쌓이다 보니, 이해심은 조금씩 닳아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불편함과 서운함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최초의 기대와는 차이가 너무 커서 실망도 더 클 수도 있겠다. 적어도 각자의 방이 있다면, 문을 닫고 들어가는 순간만큼은 온전한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방마저 공유하게 되면, 하루 절반 이상의 시간을 서로를 마주해야 한다. 집은 세상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여야 하는데, 그 공간마저 불편해지는 순간,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한때는 가장 편안했던 친구의 존재가, 이제는 나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는 가장 큰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 나는 쉐어하우스에서 그런 방식으로 소중했던 우정을 잃는 경우를 더러 보았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우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과 선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여러 경험과 주변의 사례들을 지켜보며 배운 교훈은 '좋은 친구'가 '좋은 룸메이트'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친구 관계는 서로의 좋은 모습, 꾸며진 모습을 선택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만, 룸메이트는 서로의 가장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매일같이 견뎌내야 하는 관계다. 어쩌면 가족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한 공간에서 부대껴야 할지도 모른다.


혹시 지금 소중한 친구와 함께 사는 것을 꿈꾸고 있다면, 그 환상을 실현하기 전에 먼저 아주 현실적인 대화를 나눠보길 바란다. 청소는 어떻게 할 것인지, 식비는 어떻게 나눌 것인지, 서로의 잠버릇이나 생활 패턴은 어떤지. 어쩌면 조금은 껄끄러울 수 있는 그 대화가, 당신의 소중한 우정을 지켜줄 가장 튼튼한 방어막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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