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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zue Mar 06. 2024

시를 이해한다는 건, 인문학적 핵심이다. 인문학의 위기

진짜 사랑은 무엇일까? 붙잡고자 하는 것이다.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      


신이 지배했던 자리에 국가와 권력이 자리잡은 철학자들이 많다.  우리 20세기 서양문물이 들어오는 동안 고은 선생님과 같은 시인들이 민주화를 끌고 왔다.      







박찬일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팔당대교 이야기」   

  


승용차가 강물에 추락하면

상수원이 오염됩니다

그러니 서행하기 바랍니다     

나는 차를 돌려 그 자리로 가

난간을 들이받고

강물에 추락하였습니다.

기름을 흘리고

상수원을 만방 더렵혔습니다     

밤이었습니다

하늘에 글자가 새겨졌습니다

별의 문자 말입니다     

승용차가 강물에 추락해서

상수원이 오염되었습니다

서행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죽은 것은 사람들이 모릅니다

하느님도 모릅니다     





이 시를 이해한다는 건인문학적 핵심이다이 느낌을 이해하는 건 호네트의 ‘인정의 논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시는 주관적이고, 철학은 객관적이라고 하지만. 실제 시는 아주 ‘객관적’이고 철학은 아주 ‘주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에는 모른다. 하지만 스쿠버 다이빙을 한다고 상상하자. 물속의 모든 물고기와 빛들을 설명하면 그걸 이해할까? 그 말을 들으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객관적인 무언가를 주변언저리에 들고 나온사람이 물속 이야기를 지어내면 믿을까? 믿는 것이다.   

  

시인은 시인처럼 경험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시의 위기이다시집은 진짜 안팔린다. 하지만 객관적인 어떤 상황과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시’를 읽어야 한다. 철학은 오히려 시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박찬일의 시를 읽을 때는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 해석하려고 하는 순간 시는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시는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자신을 드러내느냐의 문제다. 혐오스럽고 추악하기도 한 자신을 말할 수 있는가이다.      





헤겔 『정신현상학』 여기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 호네트는 인정 투쟁을 말한다. 지배자는 자기자신으로 인정받는 다고 헤겔은 말한다. 우러러 볼 수 있는 것이 지배자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지배자, 유명인이 되려고 한다. 호네트는 여기서 노예를 자유인으로 만들려고 한다. 나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불가피한 21세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은 점점 이 격차가 벌어지고 있고 자기자신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실직을 하고, 자신의 일을 하려 투쟁한다고 본다.      






사르트르 『존재와 무』 라캉이 앙코르에서 ‘사랑해’를 반복하듯 타자가 나를 인정하고 내가 타자를 인정하고 원하는 상태. 사랑은 완전한 인간으로써의 문제이자 욕구가 되는 것이다. “사랑해”라는 말이 어떤 요구이자 목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진짜 사랑은 무엇일까붙잡고자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상대방이 뭔갈 하지 않아도 좋으니, 우리가 뭔가를 하고 있지 않아도 좋으니 같이 있고자 하는 것. 질투라고도 본다. 다른이와 있는 걸 못견뎌 하는 것. 소유의 욕구마저도 사랑이라고 본다. 정신적 사람은 스토킹적 사랑도 포함한다. ‘부재의 고통’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부재의 고통은 시작된다. 그는 언제든 나를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다른 이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이성복 「그 여름의 끝」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사랑을 하기 위해선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미숙아에 머물지 말고 홀로 서야 한다. 진화심리학에서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면서 미숙아로 태어났다고 한다. 사랑은 본능이다. 동물은 그럼 사랑을 나누는 것인가. 어쨌거나 인간처럼 혼란스러운 것은 아니다.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성숙한 인간이 될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니 일어서려는 자는 사랑을 꿈꾸어야 하고, 사랑을 꿈꾸기 위해선 인문학과 시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시는 주관적인 것이 아니다. 지극히 객관적인 단계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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