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zue Mar 30. 2024

마르크스와 니체의 이야기 (시리즈 5/6)

프랑스 대혁명과 프롤레타리아의 코뮨 그리고 레닌과 노동해방







1. 1817년 레닌의 '국가와 혁명'


1871년 러시아 혁명 이후 187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다.루이 16세가 죽고 나폴레옹 황제가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왕정으로 복구했지만 유럽간의 끊임없는 혁명과 내란의 반복으로 파리 쿄문이라고하는 사건이 완성되었다. 


이러한 전 역사를 통해 바르크스는 늘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그와 더불어 헤겔역시 개취급도 받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

'전체주의 사상적 기원'으로 부정적 평가의 일색인 헤겔을 비난하던 마르크스가 유일하게 그의 작품중 인정한 철학서는 『정신현상학』(1807)이다. 


정신현상학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말하는데, 이 이미지는 자연에 맞서 노동을 하던 노예와 주인이 힘을 겨뤄 서로가 주인의 위치에 자리바꿈함으로써 고통을 겪는 도식으로 나온다.  


끊임없는 자기자신의 인동 투쟁으로 노동으로 능력을 확인받으면다시 주인에게 대결을 신청하고 노예가 주인의 자리에 오르면, 주인은 다시 노예가 되는 식으로 자리바꿈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주인과 노인의 변증법이라 한다)






2.헤겔은 역사란 이러한 인정투쟁으로 시작된다고 말한다. 


헤겔의 인간근원욕망을'인정투쟁'을 말하며, 관념론자 헤겔이 말하는 유사단계론(역사의 전개)노예 -봉건제-근대산업-대공장-산업체제(계속 역사가 변화하는 단계 그려냄) 결국 그럼에도 결과 모순적인 끊임없는 역사의 과정이 되는 것을 말한다. 

*역사에 허무주의 적인 귀결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한다.)

*파리코뮨의 역사의 무한하지 않은 역사의 정치적인 면 '마르크스 이야기'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우리는 벗어날 수 있을까?

역사의 변전순환을 끝는 순간은 그 틀자체를 문제 삼는것이다.


『공산주의자 선언」(1848)에 언명되었던 바 "두 개의 커다란 적대적 진영으로, 서로 직접 대립하는 두 개의 커다란 계급들로 분열된 이 세계를 '계급일반의 폐기'로 이끌어가고, 예전의 노예였던 프롤레타리아트가 마침내 "계급으로서 자기자신의 지배도 페기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3. 프랑스 농민들이 루이 16세를 잡기 위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 인권선언을 했다.


이름하야 대혁명을 치뤄야 했기에 왕은 물론 귀족들과 군인들까지 몰살시키려 했다. 루이 16세가 처형되고 유럽각국이 프랑스에게 선전 포고 연쇄를 하자 군사조직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시민들은 혁명정부를 수립했지만 제대로 나라가 돌아가지 못했다. 로베스피에르는 어떤 이유에서던 죄악시되는 작은 행위라도 위반하면 단두대에 처형 시켰고 이때 죄를 어떻게든 찾으려던 시민들은 로베스피에르를 단두대에 몰아 넣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을 일으켜 쿠데타를 일으켰고 루이 18세를 즉위 시킨후 자신의 자식인 필립을 황제로 즉위 시켰고 계속해서 혁명이 일어났으며 프랑스는 경제 공황과 파업으로 전쟁이 발발했다. 참정권의 문제로 2월 혁명이 터진 이후 시간이 흘러1871년 비스마르크가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프로이센 제국 수립을 선포앴고 프로이센군이 파리로 입성하여 국민방위대 연합을 결성하였다. 이 긴 이야기로 파리 시청에서 '코뮨 선언'을 한 이후의 파리의'피의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으니 마르크스는 『프랑스 내전』을 발표했다. 





여기서 코뮨이란 국가가 아닌 공화제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2월 혁명을 수행시 공화국의 명료한 형태로 주장되었고 인민 무력으로 포위공격에 제대로 대항할 수 없었던  프랑스 인민들은 국민 방위대로 활약을 했다. 코뮨은 보통 선거권으로 선출된 시의원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언제든 소완되었고 행정과 입법의 업무를 겸했고 공직은 노동자의 임금으로 수행되었으며 모든 교육기관이 인민에게 무상 개방 및 정부 권력이 부과학 족쇄에서 벗어 날수 있게 해주었다.





4. 카를 마르크스의 『프랑스의 내전』

 

"실제로 국가란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억압기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이는 민주공화제에서도 군주제에서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국가는 기껏해야 하나의 악에 불과한 바, 계급적 지배를 위한 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한 프롤레티리아트는 이 악을 물려받는다. 


그리고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코뮨과 마찬가지로, 새롭고 자유로운 사회 상태에서 성장한 한 세대가 국가의 이  모든 폐물을 내던질 수 있을 때까지 가능한 가장 신속하게 이 악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최근 독일의 속물들은 다음과 같은 말에 또 다시 유익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좋다. 신사 여러분. 이 독재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고 싶은가? 파리 코뮨을 보라. 그것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였다."


코뮨 ― 그것은 사회를 통제하고 제압하는 대신에 사회 자신의 살아있는 힘으로서 사회가 국가권력을 다시 흡수하는 것이다. 그것은 억압의 조직된 힘 대신에 자기 자신들의 힘을 형성하는 인민 대중 자신이 국가 권력을 다시 흡수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민 대중의 적이 인민 대중을 억압하기 위하여 휘둘러 온 사회의 인위적 힘(인민 대중의 억압자들이 전유하고 있는)(인민 대중에 대립되고 반대하여 조직된 인민 대중 자신의 힘)을 대신할 인민 대중의 사회적 해방의 정치적 형태이다. [...] 코뮨, 즉 사회적 해방의 정치적 형태 [...] 노동 해방의 정치적 형태. [...] 코뮨은 노동자 계급의 사회 운동, 따라서 인류의 전반적 재생의 사회 운동이 아니라 그 행동의 조직화된 수단이다.




5. 


“코뮨은 다수의 노동을 소수의 부로 전화시키는 저 계급소유를 철폐하고자 하였다. 코뮨은 수탈자에 대한 수탈을 의도하였다. 코뮨은, 지금 무엇보다도 노동의 노예화와 착취의 수단인 토지와 자본이라는 생산수단을 자유로운 연합된 노동의 단순한 도구로 전화시킴으로써 개인적 소유를 사실로 만들려 하였다. — 그러나 이것은 코뮨주의, ‘불가능한’ 코뮨주의이다! 


자, 지금 의 제도의 지속 불가능성을 충분히 통찰할 줄 아는 지배 계급의 그러한 인물들—그들은 다수이다—은 협동조합적 생산의 주제넘고 허풍떠는 사도들인 체하고 있다. 협동조합적 생산이 공 허한 가상이나 사기로 남아있지 않다면, 그것이 자본주의 체제를 대체한다면, 협동조합들이 모두 공동계획에 의거하여 국민적 생산을 조절하고 따라서 생산을 자기 자신의 지휘 아래 두 어 자본주의적 생산의 운명인 지속적인 무정부 상태와 주기적으로 되풀이 되는 경련을 끝장낸 다면—여러분, 그것이야말로 코뮨주의, ‘가능한’ 코뮨주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노동자 계급은 코뮨으로부터 기적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인민의 포고령에 의해 도입 될 기성의 고정되고 준비된 유토피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해방을 달성 하고 그와 함께 현재의 사회가 자기 자신의 경제적 발전을 통해 불가항력적으로 지향하고 있 는 더욱 고차적인 삶의 형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계급이 오랜 투쟁, 즉 환경과 함께 인간을 완전히 변모시키는 일련의 역사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레닌, 『국가와 혁명 』중에서


이전 04화 마르크스와 니체의 이야기 (시리즈 4/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