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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zue Mar 31. 2024

마르크스와 니체의 이야기 (시리즈 6/6)

인공지능 시대에 기계와 인간의 조화를 위한 마르크스의 코뮨의 지혜





1. 코뮨과 인공지능 이후의 자본주의


a. 탈공장화된 사회적 생산, 기계적 잉여가피의 생산 '노동의 종말'- 노동없이 살 수 있는 잠재성 증가


b. 이윤율의 저하 경향 : 이윤 없는 생산의 가능성.


이 두 양상으로 인해 '자본 없는 생산'의 가능성을 말한다.

"자본주의의 한계는 자본 그 자체다" 


자본없이는 생산할 수 없다. 생산 수단이나 생산물의 독점적 소유에 의해 한계지워져 있다.


Q. 그렇다면 생산력 발전이란 무엇인가? 


a. 생산력은 노동 과정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있다. 

생산력 발전의 두 전망은 특이점, 생태적 한계와 물리적 한계를 뜻한다.


b. 사회주의에서 생산력 발전은 공산주의로 가는 길을 가는가?


▶참고 서적 『고타강령비판』『국가와 혁명』




2. 『고타강령비판』


a. 사회민주주의 노동당 (아이제나하파)와 전독일노동자협회(라살레파)가 독일사회민주주의 노동자당으로 통합대회에 제툴된 당강령으로 마르크스가 작성한 비판문.


'공산주의 선언'과 '자본'에 이어 마르크스 사회주의 운동본부에서 가장 중요한 이론문서


러시아 혁명 와중에 씌어진 레닌의 『국가와 혁명』에서 사회주의 혁명 이후 국가의 문제는 물론 사회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페제 등에 대한 이론적 전망을 다루는 데 중심적인 선거가 된다. 


b. 생산력 "노동은 모든 부와 문화의 원천"이라는 문장에서 "노동은 모든 부의 원천이 아니다. 자연도 마찬가지 정도로 사용가치의 원천이며 노동 자체는 하나의 자연력인 인간의 노동력의 발현일 뿐이다. 인간은 애초부터 모든 노동 수단 및 노동 대상의 일차적 원천인 자연에 대하여 소유자로서 관계를 맺는 한에서만, 즉 자연을 인간에 속하는 것으로 취급하는 한에서만 인간의 노동은 사용가치의 원천이 되며 따라서 또한 부의 원천이 된다"


여기서 노동은 자연력으로 소유대상은 자연력 자체를 인간에 속한 '노동'을 규정함으로 그 원천은 부의 원천이 된다. 




▣사회주의 : "노동 해방은 노동 수간의 사회의 공동재산으로의 고양 그리고 노동 수익의 공정한 분배를 수만한 총노동의 조합적 규제를 필요로 한다"는 온전한 노동력 수익(자연력)이라는 라살레의 슬로건에 기초한 문장에 대해 노동 수익 '공정한 분배'등의 의미를 묻는 가운데 마르크스는 '자기 자신의 기초위에 발전한 공산주의 사회'와 '자본주의에서 생겨난 공산주의 사회'라는 유명한 구별에 도달한다. 


노동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기그등 개인이 제공하는 노동략은 개인적 소비 수단으로 분배한다. 이는 일한만큼 돌려 받는다는 분배의 평등성을 뜻하고 능력에 따라 분배받기에 능력에 따른 불평등이다.


▣공산주의 : 분업에 대한 예속,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소멸되고, 노동이 생활수단을 넘어 일차적인 욕구가 된 이후, 그리고 생산력이 성장하고 조합적 부가 흘러넘치게 됨에 따라 부르주아적 평등성을 넘어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의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




이행을 사유하는 방식은 생산력 발전으로 귀착될 수 있다. 생산력 발전에 따라 인공지능이나 정보화 등에 노동의 추상화는 더욱 진전되어 노동 간의 벽은 낮아진다. 정신, 육체노동의 대립은 완화되며 노동은 단순화 된다. 또한 노동 없는 생산의 가능성이 확대됨에 따라 역으로 노동의 의무에서 벗어난 활동으로서의 생산, 노동에서 벗어난 노동의 가능성이 확대되며, 그에 따라 '노동'은 욕구가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사회주의 사회에서 부가 흘러넘치면 필요에 따라 가져가는 공산주의로 이행하게 될까" 우산이나 필기구는 그럴것 같다. 정보재 또한 그런 예상을 뒷받침하는 것 같다.

 

반대로 인공지능 이후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단순화되고 노동할 수 없다는 조건이 노동을 일차적 욕구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부의 양극화는? 


지본주의에 생겨난 공산주의. 사회주의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것은 아닐까? 태양열을 에너지로 사용한다고 해도 이미 한계치에 다다른 자원의 절대적 제한속에 풍요의 전망은 희소성의 벽을 제거할 수 없고 거대한 비용을 감소하게 한다. 자본주의 기반한 생산력 발전의 연속성은 재정의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3. 코뮨에서 자본주의로


▶참고 서적 :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


코뮨의 보편성은 노예제, 봉건제, 자본제의 계급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공생적 체제로서의 코뮨. 자본주의는 그런 코뮨적 관계를 착취하며 존속한다. 집합적 노동의 코뮨은 기계와 노동자의 코뮨적 관계에 대한 착취, 자연과 노동자의 코뮨적 관계에 대한 착취로서의 자본주의. 생산력은 노동과정으로 인간, 자연, 기계의 공생적 관계이다.






4. 코뮨주의들 


a. 기계와 타자로서의 사물의 공생 (사물인터넷과 일반화된 기계주의) 기계적 코뮨주의 (시몽동)


b. 인간과 인간의 공생 : 경제적 (마르크스, 공산주의) 윤리적 (레비나스, 데리다, 아감벤) 우정 (친구와의 공생) - 연대의 쾌감/기쁨 (특이성의 연대)


결론 : 기계에 무언가를 증여할 수 있으려면 그걸 적절하게 다룰 능력이 있어야 하고 인간에게 무언가를 증여할 수 있으려면 그걸 제공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경제적 재화만의 산출을 넘어 증여로써의 '자본적 관계'에 도달한다. 

이를 위해 자연 과 지식 을 다루는 능력이 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계 지식과 인간의 삶과 마음에 대한 지식을 다루어 적절하게 대응하는 능력이 훈련되어야 한다.






한번에 이루어지는 건 없다. 10년을 병들게 살았다면 병을 고치기 위해서 10년을 치료해야 한다. 한번에 성취하려는 자본의 한탕주의는 욕심이다.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 구멍을 뚫는 작업으로서의 코뮨. 멩거의 스펀지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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