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ta Activa를 위하여 (5)
남편의 직장동료들과 가족들이 모인 자리였다.
남자들은 한 테이블에 앉아 비슷한 레퍼토리의 직장 이야기에 소주를 곁들였다. 아이들은 식당 안에 있는 놀이터로 달려갔다. 여자들은 아이들에게 줄 갈비를 자르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전 요즘 휴직 중이라 일 안 하는 분들은 취미가 뭔지 궁금해요.
다들 취미 생활은 뭐하세요?”
취미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들었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나 소개팅에 나가서 듣곤 했던 단어였다. 직장에 나가는 사람들은 취미 생활이 웬 말이냐며 직장과 가정 일의 교차 그리고 피로에 찌든 일상을 토로했다. 전업주부들은 집안일하랴 아이들 케어하랴 얼마나 하루하루가 힘든지 늘어놓았다.
그 자리에서 ‘저는 독서가 취미입니다’라고 말하는 상황을 상상해봤다.
‘저 여자는 뭐지’ 하는 눈빛과 팔자 편한 여자의 여가생활로 내몰릴 것 같았다. 진실을 유머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전업주부들 편에 묻어갔다. 다행히 취미를 주제로 한 대화는 누구 하나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채 아이들의 영어 교육 이야기로 넘어갔다.
공식적인 나의 취미활동은 일주일에 한 번 모임에 나가는 일이다.
여섯 명의 여자들이 동네 서점의 5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모인다. 책 표지에 실린 두 남자의 사진을 보고 토론을 한다.
헤르만 헤세인가, 헤밍웨이인가.
두 남자 중 누가 더 잘생겼는가. 같이 살 남자를 고르라면 누가 더 적합한가. 마초 기질이 있고 바람기가 다분함에도 남자다운 매력이 풍기는 헤밍웨이에게 끌리는가 아니면 지적이고 고뇌에 찬 헤르만 헤세에게 끌리는가. 우리는 두 작가의 작품들을 읽고 감동과 여운을 떨쳐내기 어려워 그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던 참이었다.
마냥 편한 모임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책 반 권 분량을 읽어가야 한다. 요즘은 핸드폰으로도 긴 글은 읽기가 귀찮아 손가락으로 쑥쑥 위로 넘기기 일쑤다. 책을 읽을 때도 한 챕터가 몇 장인지 넘겨보고 읽는다.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독서모임에서 선정한 책을 읽어가려면 줄을 그으며 두 번씩은 읽어야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다 못 읽고 가는 날엔 다른 회원들에게 묻어가긴 하지만 한 권의 책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수다로 빠지다가도 얼른 책 이야기로 돌아와야 한다. 책에 대한 취향도, 감흥도 다들 다르다.
누군가는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고 감탄하여 거의 모든 페이지에 인덱스 스티커를 붙여오는가 하면 누구는 도대체 의식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성화다. 『코스모스』를 읽고 흥미롭다며 찬사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철학책은 읽어도 이런 책은 씹어먹기 어렵다는 과학책 기피 파도 있다.
이렇게 야한 책을 읽어도 되나 얼굴을 붉히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드라마를 보듯 단숨에 읽었던 천명관의 『고래』같은 책도 읽었다. 점점 우리는 편하고 쉬운 책은 혼자 재미로 읽자고 애써 마음을 모은다. 독서모임의 동력으로 읽을 수 있는 책들을 고른다.
최근에 읽게 된 황현산의 시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은 그 결심을 흔들리게 하기도 했다. 다시 수능 언어영역 공부를 할 것도 아닌데 이렇게 어려운 글을 이해해야 하나 수험생처럼 짜증이 올라왔다. 누군가 단톡방에 너무 어려워서 못 읽겠다고 투정했다. 그러자 시 하나가 올라왔다.
‘다음에’ – 박소란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후략
다음 생애로 넘기지 말고 읽어보자는 말보다 무서웠다.
아무도 반론을 펼치지 못했다. ‘슈퍼파워 힘내요’ 옷을 입은 영웅, 띠를 이마에 두르고 열심히 공부하는 호랑이의 뒷모습 이모티콘이 속속 올라왔다.
우리는 한 단락씩 소리 내어 읽고 주제를 찾고 중요한 단어에 밑줄을 그었다. 텍스트 속 많은 단어의 뜻을 찾아야 할 정도로 어렵게 느껴졌던 글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려운 글을 어쨌든 정독하며 읽었으니 다음 책은 더 두꺼운 철학, 역사를 읽어도 쉽게 느껴질 것 같은 쾌감을 느꼈다.
노골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행간에 담긴 숨은 의미를 직접 찾고 생각해야 하는 책들을 읽으며 기대했다. 텍스트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2년 동안 나는 눈이 와도 비가 와도 코로나가 와도 수요일이면 이 모임에 나갔다.
혼자 흔들의자에 앉아 편안히 하던 독서가 조금은 의무적이고 불편해져도 버틴다. 무척 허기진 사람처럼, 무언가에 절실한 사람처럼.
피천득의 수필 속 고결한 그의 문장들이 나의 번잡한 생각들을 간결하게 해주기에.
김영민의 에세이를 읽으며 킥킥거리며 웃다가도 허를 찔린 듯 정신이 바짝 나기에.
박완서가 날카롭게 파고드는 소설 속 인물의 심연에 내 심산을 들키고는 남몰래 겸손해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