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도 막지 못한 아이들의 풋사랑
1초 차이였을까? 길모퉁이에서 강아지가 와락 튀어나오고, 이어서 어떤 할아버지가 확 나타난 시간이.
“똥개 이놈!”
할아버지 고함 소리가 완전 천둥소리야.
“안아 줘!”
지금 강아지가 말했나? 분명 “안아 줘”, 아니 “안아 멍”이라고 말한 것 같아!
얼떨결에 쪼그려 앉아 강아지를 안았어. 엉거주춤 일어서는데, 할아버지가 내 앞을 딱 가로막았어.
“이 똥개, 네 똥개냐?”
할아버지가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렸어.
“아니…… 네.”
“무슨 대답이 그래? 네 거야, 아니야?”
“마, 맞을걸요? 마마, 맞아요. 내 강아지.”
침이 꿀떡 넘어갔어. 당황하면 나오는 버릇이야.
“근데 왜 혼자 돌아다니게 놔둬? 이 똥개 놈이 무슨 짓 한 줄 알아?”
“모, 모르겠지만, 죄송합니다.”
“몇 살이야?”
“네? 저…… 아홉 살이요.”
3학년이라 사실은 열 살인데, 만 나이로 말했어. 한 살이라도 줄여야 덜 혼날 것 같아서.
“내가 너만 한 손자가 있어서 봐준다. 알았어?”
“모르겠습니, 아니아니, 알겠습니다.”
“똥개 똑바로 간수해. 다음에 또 혼자 다니다 내 눈에 띄면 가만 안 둬!”
할아버지는 침을 퉤 뱉고는 홱 돌아섰어. 할아버지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얼음! 진짜 호랑이를 만났다가 살아난 기분이었어.
가까스로 공포를 떨쳐낸 나는 강아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어.
“무서웠지? 이제 괜찮아.”
강아지한테 말하는 건지, 나한테 말하는 건지.
“그만 내려줘라멍.”
엄마야! 깜짝 놀라 하마터면 강아지를 던질 뻔했어.
“지금 말했지? 사람 말 한 거지?”
아까 “안아 줘”, 아니 “안아 멍”이라고 한 게 맞구나!
“숨 막히니까 얼른 내려놔라멍.”
말하는 강아지가 진짜 있다니! 신기하기도, 무섭기도 했어.
“내려 달라니까멍!”
강아지가 화를 냈어. 슬쩍 억울한 기분이 들었어.
“널 구해 준 사람한테 이러기냐? 살려 달라고 안길 땐 언제고!”
“그건 고맙다멍. 하지만 난 가야 된다멍.”
“너 혹시 서커스단에서 탈출했냐? 거기서 말 배운 거야?”
“제발 놓아줘라멍. 너와 농담할 시간 없다멍.”
강아지가 갑자기 애원하는 눈빛을 띠어. 은근히 귀엽네. 사실 이 녀석, 때가 좀 묻어 꼬질꼬질하지만 똥개가 아니라 하얀 말티즈야. 그래서 마음이 끌려. 난 말티즈를 좋아하거든.
“나 농담 아니거든? 근데 너, 이름 뭐야?”
“이름 같은 거 없다멍.”
“너 주인 없지? 가출했어?”
“난 사람 싫다멍. 절대 사람이랑 같이 안 산다멍.”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과는 헤어진 게 틀림없어. 내가 키워도 될 것 같아.
“우리 집에 가자!”
“싫다멍! 놓아줘라멍!”
“나랑 살자. 우리 엄마도 좋아할 거야.”
강아지를 더 꼭 끌어안았어. 강아지가 진짜 강아지처럼 멍멍 짖었지만 못 들은 척 걷기만 했어. 더 심하게 짖어 대서 언젠가 소나기를 피했을 때처럼 막 뛰었어. 왠지 특별한 인연 같은 이 녀석과 헤어지기 싫었어. 솔직히 ‘말하는 강아지’가 탐이 나기도 했고.
집에 다 왔다. 그런데 엄마가 진짜 좋아할까? 토요일에 이모한테 ‘썰매’를 받기로 했는데……. 썰매는 이모가 키우는 강아지인데, 내 생일선물이야. ‘눈썰매장’에서 가운데 두 글자만 빼서 지은 이름이지. 이모는 썰매의 털이 유독 눈부시게 하얘서 나랑 같이 놀러갔던 ‘눈썰매장’이 떠올랐대.
“마스크 똑바로 써라멍.”
마스크가 코밑으로 내려와 있었네. 엄마 반응을 걱정하느라 내려온 줄 몰랐어.
“야, 집에 들어가면 벗을 건데, 뭘 그래?”
“집에서도 써라멍. 안 쓸 거면 나랑 2미터 떨어져라멍.”
딱 우리 선생님 말투야. 명령하는 듯한 말투. 살짝 기분이 상하지만, 참자.
“그리고 내가 말한다는 사실, 비밀로 해라멍.”
“엄마 아빠는 알아도 괜찮지 않아?”
“시키는 대로 해라멍. 나와 같이 지내고 싶으면.”
“좋다, 뭐. 아무튼 마음 바꾼 거지? 나랑 사는 거 좋은 거지?”
대답을 안 하네. 도망가는 걸 포기했을 뿐인가 봐.
보통은 디지털 자물쇠 비번을 누르는데, 이번엔 벨을 눌렀어. 엄마가 “와, 예쁜 강아지네!” 하며 함박웃음으로 맞이해주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런데 엄마가 밥 먹다 돌 씹은 표정을 짓네.
“이게 뭐야?”
“강아지.”
“그럼 이게 호랑이겠니? 엄마가 바보야?”
“엄마는 바보가 아니지. 얘가 호랑이도 아니고.”
“너 설마 ‘썰매’ 대신 얘를 키우겠다고 주워온 건 아니지?”
“엄마, 나 집에 들어가고 싶은데, 들어가서 얘기하면 안 돼?”
우리 집에 들어가는 데 허락을 구하다니. 왠지 입장권이라도 사야 될 것 같아.
몇 번이나 침을 삼키며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어. 하지만 거짓말을 조금 섞었어. 엄마 마음을 얻으려면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엄마, 그 할아버지가 나 꿀밤 때리려고 했어. 정말 인생 최고의 위기였지. 근데 얘가 막 짖어서 할아버지가 그냥 갔어. 날 구해 준 은인인데, 내가 키워 줘야 되지 않겠어? 얘는 산타할아버지가 미리 보내준 내 생일선물일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