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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송이 Oct 16. 2023

시>보도블록 아이의 꿈같은 나날

*청년 시절 썼던 시들을 다시 끄집어내 손질해 보았습니다.



보도블록 아이의 꿈같은 나날


  깊은 밤 몰래 집을 나서곤 해요

  놀이터에서 신나게 그네를 타려고요

  빗줄기 같은 회초리의 기억, 햇살처럼 환한 배고픔, 한겨울 찬물의 으스스함을 잊고   

  맘껏 울어보고 싶어요, 그네를 뜀틀 삼아 작은 먼지로 사라지고 싶어요

  모르죠? 내 눈물엔 거짓말 사랑이 어려 있다는 걸.


  하지만 놀이터는커녕, 여태 집 앞 골목도 벗어나지 못했죠

  그림자를 추켜들고 보도블록을 걷다 보면 어느새 길을 잃어요

  언젠가 딱 한 번

  운동장처럼 탁 트인 아스팔트를 만난 적 있었지만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길이 나를 지나가 버렸어요

  그때 심야 키즈카페에 간다며 손을 흔들던

  친구네 자동차가 별빛 속으로 사라진 것도 같은데…… 

  돌아오는 길에 보도블록 하나가 깨져나가더군요 

  틈새에 발목이 끼어 부러졌지만

  엄마 아빠가 깰까 봐 그냥 두고 왔죠     


  오늘밤에도 놀이터에 갈 거예요

  도둑고양이들은 나를 보면 

  “보도블록 아이 놀이터 간다!” 

  실컷 키들거리겠죠 

  사실 나는 머리만 남아 있거든요

  나머지는 죄다 보도블록이 됐어요, 아무도 부서진 블록을 갈아 끼우지 않아서……

  집 앞에 놀이터가 생기면 좋겠어요

  올이 굵은 내 머리카락은 누군가의 발목을 옭아맬 수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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