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절 썼던 시를 다시 끄집어내어 손질해 보았습니다.
빨간 구두
쇼윈도 빨간 구두에 눈을 맞춘다
플래카드에 숨어 있던 검은 새 한 마리
먼지 물고 옷깃 속을 파고든다
눈부신 빛깔 탓에 깜박 잊었다
길을 걸을 땐
가슴 속 둥지를 비우며 가야 한다는 사실.
오래된 노래를 불러본다
모든 길의 끝에, 속눈썹 모양 갈래길들이 모이는 곳에
잿빛 강물이 기다려
빨간 구두는 그 물살 훌쩍 뛰어넘을
날개 달아주지 않아
새싹 움트는 소리에, 갓난아기 울음소리에 바스러지고 마는
발자국만 무수히 새길 뿐이지.
검은 새는 어느새 갈빗대에 내려앉아 깃을 내렸다
횡단보도를 향해 몸을 돌린다
길은 넓고
햇살은 숨 가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