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하는 여러 가지 방법

by 정오월


어느 한 가지에 집중된 취향은 중독과의 경계가 모호해 보입니다. 내가 커피를 얼마나 마셨을까 생각해 보니 거의 30년이네요. 안 마신 날도 있지만 여러 잔 마신 날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하루 평균 한 잔으로 계산하면 약 일만 잔입니다. 물론 일만 잔의 커피 맛이 다 똑같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그렇게 많은 커피를 마셨는데도 여전히 커피가 좋습니다. 그런데 그거 그냥 카페인 중독 아니냐고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는 못 하겠네요. 카페인 섭취를 줄여 보려고 커피를 거르면 기운이 나지 않고 낮잠을 몇 번씩 자다가 결국 늦은 시간에 커피를 마시곤 합니다. 급성 위염으로 크게 고생한 후에도 커피를 포기하지 못하고 위를 살살 달래 가며 마시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 커피에 대해 취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커피를 마시는데 “필요 이상의 노력”을 들이기 때문입니다. 잠 깨려고 마시는 커피는 가격 대비 효용성만 따지면 됩니다. 제일 싼 거죠. 커피에 대해 잘 몰라도 되고 어디서 어떤 커피를 살까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맛은 농도만 적당히 맞으면 되고요. 오랫동안 그렇게 커피를 마셨습니다. 잘 모르고 대충 마시면서도 아쉽지 않았으니까요. 이제 다양하고 맛있는 커피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되니 커피에 대한 취향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커피의 맛이 있다면, 그런 커피를 파는 곳을 찾아내고 일부러 찾아가는 노력을 들인다면,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이 더 크지 않을까요?


십 년도 훨씬 전부터 커피시장이 레드오션이라고들 했습니다. 한때 많은 직장인들이 사직서와 함께 가슴에 품었던 「우리 카페나 할까?」라는 책이 2005년에 발간되었네요.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카페가 너무 많다, 카페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뭐 그런 말들이 종종 들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커피시장은 지금까지 계속 커지고, 커지고, 또 커졌습니다. 다양한 원두를 온ㆍ오프라인에서 쉽게 살 수 있고 카페는 어딜 가나 있고 정말이지 많습니다. 세상에 맛있는 커피가 이렇게 많구나 싶을 정도로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커피를 즐기기 아주 좋은 환경이죠.


커피를 좋아하기 위해서 일단 커피를 만드는 재료인 원두에 관심을 갖습니다. 이제부터 커피는 음료, 원두는 재료로 구분하겠습니다. 커피콩은 여느 농작물과 같이 생산지와 품종에 따라 특성이 다르죠. 주로 재배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시기에 수확되고 여러 과정을 거쳐 커피 추출 직전 단계인 원두로서 소비자와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일정한 시기에 온라인 쇼핑몰마다, 카페의 메뉴판마다 특정 원두의 이름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요즘엔 생산 농장이름에 가공방식까지 붙어서 다 읽기 힘들 만큼 원두 이름이 길죠. 공부를 하면 재미가 없으므로 띄엄띄엄 봅니다. 자주 보면 그중에 좋은 게 저절로 외워지니까요. 원두의 생김새를 살펴보고 분쇄하면서 향도 맡아봅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잘 생기고 예쁜 원두가 맛있습니다.



추출하는 과정에서도 커피의 맛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주요 추출 도구인 드리퍼가 커피 맛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큽니다. 그 외에 물의 온도, 물줄기의 굵기와 속도, 원두를 분쇄하는 굵기, 로스팅 후 얼마나 지났나 하는 변수들에 따라 추출 결과가 달라지고요. 이 변수들은 원두별 맛의 차이만큼 두드러지지는 않고 변수들 간에 서로 영향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추출 결과로 만들어지는 커피 맛에 큰 차이를 못 느낄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공부하자는 게 아니니까 둔한 미각에 실망하지 않기로 합니다. 실험이나 연습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커피를 만들면서 이런 게 잘 안 됐으니 맛이 어떻겠구나, 예상해 보고 커피 맛을 보면서 확인하는 거죠.


카페에서 드립커피를 마실 때는 만드는 과정을 보는 게 좋습니다. 원두를 분쇄할 때 나는 향은 매우 강렬하게 와닿죠. 나도 모르게 코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게 되네요. 어떤 드리퍼를 쓰는지 봅니다, 어느 정도 굵기의 물줄기를 어느 정도의 빠르기로 흘리는 지도 봅니다. 나중에 기억은 안 나는데 일단 보는 게 재미있거든요. 바리스타에게 레시피를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주겠지만 나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공부하진 않기 때문에 보기만 합니다. 잔에 담긴 커피를 받으면 색도 보고 향도 맡아봅니다. 커피 향은 원두의 분쇄 향과 전혀 다르죠. 커피의 맛과 커피의 향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꽃향기가 나는데 꽃 맛은 나지 않죠. 알면서도 매번 신기합니다.


집에서 먹는 원두와 같은 원두로 카페에서 만든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고 비교하는 것도 재밌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카페에서 만든 커피가 맛있습니다. 나쁜 맛이 없고 좋은 맛만 있는 “클린 컵”이라는 거죠. 좋은 맛만 내기 위해 농도는 내가 집에서 만드는 것보다 낮은 것이 일반적입니다. 반대로 카페에서 마신 커피가 맛있으면 그 원두를 사서 집에서 핸드드립 해보기도 합니다. 네, 역시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가 맛이 더 좋고 내가 만든 커피의 농도가 더 마음에 드는군요. 그렇다고 카페에 가서 진하게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하지는 않습니다. 전문가가 원두에 특성에 따라 최선이라고 판단한 맛이 무엇인지를 먼저 보고, 나는 그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생각해봅니다.


어떤 원두가 유행처럼 퍼져 있을 때에는 카페마다 가서 그 원두로 만든 드립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습니다. 요즘 나는 컬럼비아의 엘 파라이소 농장에서 생산한 “리치피치”라는 원두를 찾아다는 중니다. 오늘이 일곱 번째였죠. 리치피치가 있는 카페를 미리 찾아보고 갑니다. 핸드드립 메뉴가 있는 카페는 취급하는 원두의 종류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매장에 가지 않고 확인하기가 쉽지 않네요. 주문할 때마다 따뜻한 게 좋은지 차가운 게 좋은 물어보고 권해주는 것으로 마십니다. 당연히 카페마다 맛이 다른데 서로 비슷한 곳들도 있습니다. 로스팅이나 추출 레시피에 사장님의 취향이 반영된 거겠죠.



백수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매일 집에서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다 보니 카페에 가면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빈속에 배고플 때 마시는 커피 맛 우유라고 생각했던 카페라테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커피를 싱겁게 만든다고 싫어했던 얼음까지 넣은 아이스 카페라테가 간절하게 마시고 싶을 때도 있죠. 계절에 따라 여러 카페를 다니며 라테 랠리를 하면 재미있습니다. 겨울에는 따뜻한 카페라테, 여름엔 아이스 카페라테. 매일 다른 카페에 가서 같은 메뉴의 커피를 마셔보고 비슷할 줄 알았던 커피 맛이 천차만별이라 얼마나 놀랐던지요. 사실 원두부터 머신, 우유, 사장님의 취향에 이르기까지 모든 변수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건데 말입니다.


커피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앞에서도 여러 번 말했듯이 공부하지 않는 거였습니다. 커피 맛 감별사가 되려는 게 아니니까요. 핸드드립의 변수를 통제하면서 추출 결과를 분석하거나 카페에서 마신 커피의 맛에 점수를 매기지 않습니다. 제대로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않는 이상 선무당이 되기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커피에 들이는 “필요 이상의 노력”이란 커피를 접할 때 관심을 갖고 집중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집에서 핸드드립을 하는 그 순간에 유심하게 관찰하고 카페에 커피를 마시는 그 순간에 맛에 집중할 뿐이죠. 커피에서 어떤 맛이 나는가, 나는 그 맛을 어떻게 느끼는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 겁니다. 참 쉽죠?


그런 식으로 오래, 즐겁게 커피를 마시다 보면 어느새 어떤 커피의 맛이 특별히 좋고, 어떤 카페가 특별히 좋아집니다. 특별히 좋은 커피와 카페가 점점 더 많아지면서 내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마시고 싶은 커피, 가고 싶은 카페가 세분됩니다. 그것이 커피에 대한 취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좋아한다고 하죠. 오, 나도! 하면서 신나 가지고 커피 얘기를 하다 보면 의외로 커피 맛이 아니라 단 맛을 좋아하고, 커피는 거들뿐 디저트에 더 관심 있고, 예쁜 음료를 앞에 두고 여유롭게 시간 보내는 카페 그 자체를 더 좋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건 아마 커피 또는 커피를 마시는 일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효용 때문일 것입니다.


커피 좀 마셔 본 사람이면 다 알만한 카페 브랜드 “테라로사”의 대표님이 TV에 출연해서 한 얘기가 있습니다. “된장찌개는 찌개만 맛있으면 사람들이 식당에 찾아가는데 커피는 커피만 맛있다고 해서 카페에 찾아가지 않는다.” 카페인의 각성효과, 업무 중에 커피와 함께하는 잠깐의 쉼, 기분을 환기시켜주는 카페의 공간을 좋아하는 것도 커피를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 거죠. 얼마나 좋은가요. 무언가를 좋아하는데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이유 없이 “그냥” 좋을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커피도 그냥 좋은 게 제일 좋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코로나 방역조치로 인해 거리두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온 국민이 스스로 거동을 제한해서 거리에 인적이 드물던 시기에 있던 일입니다. 어쩔 수 없이 본가에서 지내며 재택근무를 해야 했는데 능률은 떨어지고 발주처에서는 일정을 늦출 생각이 없고 내 집이 아니라 불편하고 맛있는 커피도 없고, 그 모든 게 스트레스가 되어 차곡차곡 쌓이더군요. 결국 일요일에 탈출하듯이 집을 뛰쳐나가 합정동으로 갔습니다. 잘 모르는 동네인데 여차하면 커피를 사서 한강변으로 가려고 했던 거죠. 빵 냄새에 이끌려 골목을 걷다 보니 3층짜리 베이커리 카페가 있고, 2층에 아무도 없는 넓은 베란다가 보였습니다. 테라스가 더 익숙하고 카페와도 어울리지만 정확한 명칭인 베란다를 쓰겠습니다.


야외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베이글과 따뜻한 롱블랙을 사서 베란다에 앉았죠. 아직 봄보다는 겨울에 가까운 날씨도, 너무 묽어서 어린이용이라고 해도 믿겠다 싶은 커피도 다 좋았습니다. 한 시간 정도 베란다를 독차지하고 앉아 시원한 하늘과 차가 거의 안 지나다니는 길과 주변의 낮은 건물들이 만드는 수평선 같은 스카이라인을 둘러보면서 스트레스가 다 사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한동안 일요일에는 일찌감치 그 카페에 가서 아무도 없는 베란다에 앉아 롱블랙을 마시면서 다른 손님이 올 때까지 있곤 했죠.


그 기억이 너무 좋게 남아서 일 년쯤 후에 친구와 함께 그 카페에 찾아갔습니다. 나처럼, 아니 나보다 커피에 확고한 취향이 있는 친구입니다. 내가 그 친구를 알게 된 후로 카페에 갈 때마다 줄기차게 “에스프레소 마끼아또”를 외치고 바리스타가 그게 뭐냐고 물으면 에스프레소에 우유 거품을 조금 얹어 달라고 설명하곤 했으니까요. 여전히 대부분의 카페에 에스프레소 마끼아또 메뉴가 없지만, 그 친구가 “마끼아또” 옵션을 붙이는 걸 못 본 지 꽤 된 것 같군요. 아무래도 우유 거품 만드는 게 에스프레소 추출만큼이나 번거로운 일이라는 걸, 그래서 진상 짓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건축사인 그 친구는 그 카페를 나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단독주택 두 채를 각기 다른 스타일로 증축・리모델링하면서 내부 동선을 하나로 연결한 그 카페는 리모델링의 정석 같았죠. 내가 주문을 하고 음료를 받아서 2층 베란다에 자리를 잡고 앉을 때까지 친구는 신나서 카페 구석구석을 살펴봤습니다. 자기가 본 모든 부분이 다 좋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좋은 데를 왜 이제 알려줬냐면서. “커피는......” 흥건하게 고인 커피 가운데 동그란 아이스크림이 둥둥 떠 있는 아포가토였습니다. “커피 맛이 별로일 수도 있어서 아포가토를 고른 건데, 이건 에스프레소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 커피 맛 자체는 괜찮기도 하고.” 친구가 눈을 반짝이며 활짝 웃는 걸 보니 진심이었습니다.


카페는 그저 커피만 맛있으면 된다고 지금도 자주 말합니다. 주로 혼자 다니기 때문에 혼자서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고, 커피 한 잔 마실 시간 동안 차분한 시간을 보낼 수만 있으면 된다고요. 그런데 카페의 공간이 커피 그 자체보다 더 즐거움을 줄 수도 있고 그것 역시 커피를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구와 내가 공간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그 카페에서 묽은 커피를 만드는 건 아마도 가능한 많은 사람이, 커피를 잘 못 마시는 사람들까지도 거부감 없이 마시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도 예쁜 유리병에 담긴, 얼음이 가득 찬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당시에 그 카페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였습니다.


그렇다고 커피 맛이 상관없다는 건 아닙니다. 그 카페도 커피의 맛 자체는 좋습니다. 농도가 낮을 뿐이죠. 진하게 만든 커피에 물을 섞는 것과 애초에 커피를 연하게 만드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에는 깔끔하고 화사해서 차에 가까운 커피를 많이 찾는 것 같으니 오히려 트렌드에 맞는 레시피라고 할 수 있겠네요. 좋아하는 것만 고집해서는 제대로 된 취향을 가질 수 없으니 다양한 커피를 마셔보고 커피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한 후로는, 카페에서 마신 커피가 입맛에 안 맞을 때 왜 그럴까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사장님의 취향이든 영업 전략이든 다 이유가 있으니까요.


이렇게 길게 얘기를 늘어놓았지만 아직 커피에 대해 모르는 게 많습니다. 더 많이 마시고 더 알게 되면 좋아하는 커피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그만큼 사는 게 조금 더 재미있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모든 날, 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