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커피”입니다. “뜨개질×카페”이기도 하고요. 시작은 컵받침이었습니다. 내가 뜨개질해서 만든 컵받침을 들고 다니면서 카페에서 썼죠. 컵받침 없이 잔만 주거나 플라스틱처럼 딱딱한 재질의 컵받침을 주는 카페에서 요긴하게 썼습니다. 가끔은 카페의 콘셉트에 맞춰 고르고 골랐을 잔과 그에 맞춘 받침을 정성스럽게 챙겨주는데도 굳이 제가 만든 컵받침을 쓰기도 하고요. 처음엔 부끄러웠는데 내가 뭘 하든 다른 사람들은 관심 없다는 걸 알고 나서 좀 더 적극적이게 되었습니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두세 가지 색의 컵받침을 들고 다니면서 카페와 커피와 어울리는 걸 골라서 쓰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더군요. 카페의 분위기와 딱 맞고 내 옷차림과 깔맞춤이 되는 경우에는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뜨개질이 쓸모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뜨개질은 어깨 통증과 노안과 맞바꾼 즐거움이지만 너무나도 노동집약적이고 비생산적인 활동이라는 단점이 있죠. 뜨개질해서 무언가를 만들어 쓴다는 성과에 초점을 두면 말입니다. 예를 들어 스웨터를 뜬다고 하면 실 값이 스웨터 값보다 비쌀 수도 있고, 기계가 순식간에 짜는 것보다 사람의 느린 뜨개질 솜씨가 더 좋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뜨개질하는 과정 자체를 좋아해야 하죠. 한 코 한 코 일정한 크기로, 규칙을 잘 지키며 만들어내는 반복적인 과정을요. 다행히 저는 좋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뜨개질하면서 바늘 끝에 신경을 집중하면 딴생각이 사라지네요. 명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만사가 귀찮거나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에는 뜨개질을 합니다. 책은 집중하기 부담스럽고 TV는 집중할 만큼 재미가 없으니 결국엔 TV를 켜 놓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런 나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껴질 땐 뜨개질을 하면 좋습니다. 쓸모 있는 걸 하고 있다며 스스로 위로할 수 있으니까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둥글게 둥글게 만들다 보면 컵받침이 되는 거죠. 다행히 똑같은 걸 계속 만들어도 지겹지가 않네요. 그러다가 컵받침이 몇십 개가 되었고 만들기만 할 게 아니라 쓰기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뿐 아니라 밖에서도 써야겠다고. 그러면 내가 뜨개질하며 보낸 시간들이 그냥 때운 게 아니고 생산적인 활동을 한 게 되니까요.
카페에 손뜨개 컵받침을 들고 다니면서 쓰는 건 제법 좋은 생각이었습니다. 단골 카페의 바리스타들에게 선물도 꽤 했고요. MZ 세대는 뜨개질을 잘 모를 것 같고 내가 만든 컵받침이 취향에 안 맞을 수 있겠지만, 커피든 다른 음료든 자주 마시는 사람들이라 어떻게든 쓰지 않겠냐고 생각했죠. 컵 말고 소품 같은 걸 올려놓아도 되고 냄비받침으로 쓰는 것도 가능하다고 이런저런 쓸모를 강조하면서 선물하는데 다들 생각 이상으로 좋아하네요. 오랜 시간을 들여 손으로 만들었다는 데에 감동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 동안 컵받침을 눈에 담으려는 듯 가까이 들여다보고 손으로 뜨개의 감촉을 느껴보더니, 할머니 생각이 난다고 했던 바리스타가 생각나네요. 엄마도 아니고 할머니라니 내 취미가 그렇게 올드한가 싶어 의기소침했는데, 촉촉해진 눈동자는 너무나도 진심이었습니다.
코로나가 확산되어 카페에서 일회용 컵을 쓰게 되자 손뜨개 받침이 어색해졌습니다. 요즘 카페들은 받침 없이 잔만 주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요. 그래서 이제는 거의 안 들고 다니는데 선물은 아직도 가끔 합니다. 카페에서 만나 몇 번 얘기를 나눈 다른 손님에게도 주고,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보고 누군가가 갖고 싶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만나서 주기도 합니다. 커피와 카페로 만난 인연에 컵받침을 더하는 거죠. 가끔은 카페의 상징으로 쓰는 색이나 로고, 컵 또는 원두 패키지 등의 디자인에 모티브를 얻어서 컵받침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면 조금 더 쓸모가 있어지는 것 같고 작업도 더 재미있습니다.
동그라미에 작은 반원 두 개를 적당한 크기로 붙이면, 눈코 입도 없는데 다들 곰돌이라고 합니다. 낼모레 나이 쉰이 되는 아저씨도 귀가 엄청 귀엽다며 좋아하고, 단골 카페 사장님은 줄무늬를 넣어서 호랑이로 만들어 보라는 의견을 주었죠. 사람마다 좋아하는 포인트가 다르고 반응이 다른 걸 보는 게 재미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컵받침을 선물해 왔는데 다들 잘 쓰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얼마 전 친구 사무실에 갔더니 6년 전에 줬던 컵받침을 꺼내서 놀랐습니다. 오래 쓰기도 했고 당시에는 솜씨가 덜 하기도 해서 모양이 변하고 표면이 반들반들하게 눌려 있지만, 내가 만든 걸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회색 아니면 검은색만 좋아하는 친구가 예쁜 색도 봤으면 하는 마음에 고심해서 회색 바탕에 연노랑, 연두를 조금 넣었던 것 같습니다. 버려야 할 때가 지났다고 말했지만 속으론 얼마나 뿌듯하던지요.
“뜨개질의 쓸모”라는 개념을 조금 더 확장해 보기로 했습니다. “쓸모”라는 말을 반복해서 쓰고 있을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가 뜨개질에 있어서 신조라고나 할까요. 기능이 없으면 형태도 필요 없는 거죠. 그런데 마음 한 구석으로는 작고 귀여운 걸 만들고 싶더군요. 그리고 “귀여운 것으로 이미 쓸모는 다 했다”는 누군가의 말에 힘입어 마음껏 귀여운 걸 만들기로 했습니다. 재작년 겨울이었습니다.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좋은 사람들 모여서 맛있는 밥 한 끼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 마저 용납되지 않던 그때. 어둡고 추운 집에서 웅크리고만 있자니 몸도 마음도 답답하던 연말이었습니다.
어차피 집에서 뜨개질만 하는데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연말 분위기를 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고 하찮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하면서 주면 기분 좋게 받을 수 있는 귀여운 걸 생각하다가 빨간 산타 모자를 생각했죠. 만들면서도 재미있고 귀여웠습니다. 녹색도 만들고 파란색 로고를 쓰는 카페를 위해서 파란색도 만들고. 커피 마시러 다니면서 하나씩 나눠줬는데 계산대에 놓거나 트리에 장식하거나 커피 머신 손잡이에 꽂아 두거나 하면서 가장 어울리는 자리를 찾았습니다. 곰돌이 모양 컵받침도 빨간색, 녹색으로 만들어서 산타모자와 함께 서울에 있는 조카와 친구에게 보내주었습니다. 무뚝뚝한 우리 조카도 사무실에 흰색, 회색, 검은색만 있는 친구도 귀엽다고 좋아하더군요. 모임은 못 했지만 나름의 연말 행사였습니다.
작년 연말에는 좀 더 업그레이드해서 모양도 크기도 다양하게 만들었습니다. 산타 모자 모양으로 미니 트리를 만들고 리본도 뜨개질로 만들어 달았습니다. 그 사이 새로 친해진 가게들에 선물로 주고, 그러고도 많이 남아서 동네 카페의 크리스마스 이벤트에 가지고 가서 테이블 장식을 했죠. 이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제대로 만들어 놓은 카페였지만 알록달록한 작은 것들을 테이블에 이렇게 놓고, 저렇게 놓고 하면서 카페 사장님도 나도 재미있었네요. 그리고 그 카페에 내가 만든 뜨개질 작품을 여러 가지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아는 사람 몇 명만 찾아볼 뿐 커피를 마시러 들른 대부분의 손님들은 있는 줄도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 아무도 안 봐주던 작품들이 멋진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고맙습니다.
날씨가 좋은 계절에는 밖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려고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만들어서 들고나갑니다. 보온ㆍ보냉 기능은 없지만 내가 만든 예쁜 커버를 쓸 수 있는 텀블러에 담죠. 밖에서 커피를 마실 때에는 커피의 맛보다 예쁜 걸 쓰면서 기분 내는 게 더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 텀블러 커버에 필요 이상의 노력을 들여 알록달록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쁜 걸 강조하긴 했지만 사실 텀블러 커버는 매우 쓸모가 있습니다. 뜨거운 걸 담을 땐 안심하고 손댈 수 있고, 차가운 걸 담을 땐 텀블러 표면에 물이 흐르지 않게 되니까요. 텀블러 커버도 여러 명에게 만들어 주었는데 다들 아직 쓰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커피×맥주도 있습니다. 어쩌면 맥주를 마실 때 컵받침이 더 쓸모를 발휘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잔 표면에서 쉴 새 없이 물이 흐르니 말입니다. 초밥, 텐동, 파스타, 떡볶이, 샌드위치 등 맥주와 어울리는 음식이 참 많기도 합니다. 맥주는 나의 두 번째 사랑, 커피 다음입니다. 컵받침을 들고 다니던 때에는 카페뿐 아니라 식당에서 밥 먹으며 맥주를 마실 때에도 썼습니다. 가끔 맥주집에 갈 때는 카페에 갈 때보다 더 특별하게 컵받침을 고른 것 같네요. 투명한 잔에 담긴 예쁜 맥주의 색과 어울리는 컵받침을 말이죠. “그거 너무 창피한 거 아냐?” 했던 친구는, 같이 맥주 집에 가서 내가 만든 컵받침을 꺼내 놓자 적극적으로 세팅하고 사진도 열심히 찍어서 보내주었습니다. 의외로 기분 전환되고 좋다면서.
서너 번쯤 갔던 일식당에서였습니다. 밥값을 계산하면서 보니 계산대 앞에 작은 음식 모형들을 장식해 놓았는데 뜨개질로 작은 받침을 만들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형의 색과 대비되는 알록달록한 색으로 갓난아기 주먹만 한 받침을 만들어서 어떠냐고 보여주니 사장님도 직원들도 아주 좋아하네요. 귀여운 건 어디서나 환영받는다는 걸 깨달았죠. 그때 나는 남한테 먼저 말을 걸지도 않고 모르는 사람이 말 거는 것도 달갑지 않고, 단골 가게에서 스몰 토크를 하는 것도 아주 어색한 사람이었는데 무슨 용기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전에 그 식당에서 서비스로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었던 것 같기는 합니다만.
이후로 작은 받침을 올려놓을 큰 받침도 여러 개 선물하고, 산타모자도 놓아서 계산대 앞의 작고 귀여운 컬렉션이 완성되었습니다. 음식만큼 맥주도 맛있는 식당이라 가끔 밥 먹으면서 맥주를 주문하고 내가 만든 컵받침을 꺼내놓으면, 직원이 알아서 맥주잔을 받침 위에 놓아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식당과는 이제 밥 먹으러 가장 자주 가는 돈독한 사이가 되었죠. 사장님 입장에서는 내가 여러 단골 중 한 명이겠지만 나에게는 그렇습니다. 또 그 사이 나는 여러 단골가게에서 사장님들하고 편하게 이야기를 하고 심지어 다른 단골손님들과도 편하게 얘기를 주고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분명히 뜨개질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