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 때 한강이 있어서 좋았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강은 국가하천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거대한 물길을 내서 빽빽한 서울에 숨통을 틔워 주고 서울의 도시생태를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도시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시가지와 넓은 강이 만나서 펼쳐지는 특별한 도시경관이나 강변에 조성된 매력적인 공간에서 즐기는 다양한 활동이 더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한강의 장점이 되겠죠. 한강은 참 좋아요. 서울에 한강이 있다는 건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장점이 되는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나는 한강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거나 즐긴 적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서울에 한강이 있어서 나한테 좋은 건 별로 없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가봤죠. 회사에서 단체로 체육대회 하러 가고, 차를 사고 나서 운전연습 삼아 가고, 여름밤에 야간조명과 분수를 보러 가고, 조카 어릴 때 동생네 세 식구와 함께 놀러 가고. 강 서쪽의 선유도공원에서 동쪽의 잠실지구 사이에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다 가봤습니다. 서울에서 17년을 살았으니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은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바라보던 석양, 달리는 자동차 불빛마저 예뻐 보이던 야경, 꽃밭에서 웃던 조카의 얼굴. 그런데 고단한 느낌도 같이 떠오르네요. 오가는 길에는 내 차를 타고 가도 고생, 대중교통으로 가도 고생. 가서도 편의점에서 뭐 좀 사려면 한나절, 화장실 갔다 오는데 한나절. 동생이랑 조카랑 서래섬 꽃 축제에 가서 실컷 기분 내고는 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진이 다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한강변에 놀러 가는 게 그런 불편을 감수할 만큼 좋지는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일 년에 한두 번쯤 이벤트처럼 갔었고 한강 나들이가 서울살이의 일부로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나에게 한강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었다고 할까요. 동네 공원에서처럼 걷다가 잠시 앉았다가 또 걷다가 커피 한 잔 마시고, 그렇게 일상적으로 편하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기엔 한강이 너무 큰 거죠. 게다가 서울도 너무 큽니다. 한강에서 산책하려면 오가는 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한강에 가까운 동네라고 아무데서나 불쑥불쑥 한강변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서울에서 살았던 동네 중에 한강에 가장 가까운 곳은 군자역 근처 능동이었습니다. 전철역 두 개 구간, 지루한 대로변을 45분 걸어서 뚝섬유원지역으로 올라 강변북로를 건너 한강공원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능동으로 이사 갈 때에는 한강변에 자주 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냥 한강을 자주 보는 사람이 되었죠. 출퇴근길에 서울도시철도 7호선을 타면 청담대교를 건너는 몇 분 동안 한강을 볼 수 있으니까요. 컴컴한 지하를 달리는 전철의 유리창은 탁한 거울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는 승객들을 어스름하게 비추는데, 지상으로 점점 오르다가 청담대교 위에 서면 진짜 유리창이 되었죠. 잠시나마 하늘 반 물 반의 시원한 풍경을 보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5호선에서 환승해 강남으로 가려는 인파까지 더해져 군자역에서 7호선 객실은 더 이상 사람이 탈 수 없는 정도까지 꽉 차는데, 나는 어떻게든 유리창 앞에 서려고 애썼습니다.
출퇴근하면서 외근하면서 전철을 타고 차를 타고 대충 계산해도 천 번 넘게 한강 다리를 건넜습니다. 심지어 반포대교와 그 아래의 잠수교, 광진교, 양화대교는 걸어서 건너 본 적도 있고요. 한강 양측의 도시고속도로인 올림픽도로와 강변북로도 전체 구간은 아니지만 몇 백번쯤 차를 타고 달렸습니다. 한 번도 별로였던 적이 없습니다. 보기에만 좋은 게 아닙니다. 한강변에 가면 더 좋습니다. 산책로는 끊임없이 이어져 있고 곳곳에 시민들이 이용하기 좋게 잘 정비된 공간들이 있죠. 한강이 문제가 아니라 내 그릇이 작은 게 맞습니다.
우면동에 살 때에는 양재천에 자주 갔습니다. 작은 하천이라 하천변 공간도 넉넉하지 않아서 산책로가 대부분 좁았습니다. 그 와중에 자전거와 같이 이용해야 하는 구간이 있고, 여름밤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줄 서서 다니는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자연은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걸 우면동에 살고 양재천에 자주 가면서 알게 되었죠. 양재천이 있어서 우면동에 사는 게 좋았습니다. 우면동에서 능동으로 이사 가고 한참 후에, 좋았던 기억으로 양재천을 찾았다가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인 풍경을 본 이후로는 한 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사실 능동에서는 한강보다 중랑천이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따금 차를 타고 군자교를 건너면서 본 중랑천 변에는 녹지대 가운데 산책로만 있어서 황량하고, 하천변 풍경도 매력적이지 않아서 한 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밤에 달리기를 하기에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그 시절에 나는 내 평생 스스로 달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중랑천 벚꽃길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도대체 그 길이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본 중랑천 변에는 나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잘 안 보이던데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살고 있는 이 도시의 하천이 무척 고맙습니다. 지방하천2급. 하천법에 따르면 하천의 규모와 중요성에 따라서 국가하천과 지방하천으로 나뉘고, 지방하천은 1급과 2급으로 나뉜다고 하니 한강에 비해 한참 규모가 작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서울의 다른 하천들과 비교해 보자면 청계천, 양재천 보다는 크고 중랑천, 안양천과 비슷하겠네요. 그렇지만 이 도시의 대표적인 하천이니만큼 그 위상은 한강에 가깝다고 하겠죠. 도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물길이 숨통을 틔워 주고 도시생태를 풍요롭게 하며, 멋진 도시경관과 매력적인 수변공간도 즐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우리 집에서 약 1km 남짓한 거리, 교차로를 두 번 건너는 시간을 포함해도 걸어서 15분 정도. 도심지역이라서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고 하천변에 접근하기가 쉽죠. 주요 도로들은 하천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이어지고, 하천 양측에 위치한 동네 곳곳에는 하천변으로 바로 드나들 수 있는 보행통로가 있습니다. 쉽게 갈 수 있으니 자주 가게 되네요. 다리 위에 서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하천변을 걸으면서 보는 풍경도 다 좋습니다. 맑은 날도 좋고 흐린 날도 좋습니다. 밝을 때도 좋고 해질 무렵도 좋고 달리면서 보는 야경도 좋습니다. 꽃이 피면 더 좋고요, 특히 하늘이 예쁜 날은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누르게 됩니다. 겨울 낮에는 나무들이 잎을 다 떨궈 보기엔 허전해도 이 도시 그 어디보다 햇볕이 그득하죠. 밤에 달이 뜨고 움직이는 걸 오랫동안 지켜봐서 내일의 달이 오늘보다 얼마나 더 차고 더 빠질지 딱 맞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천변 공간은 시민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잘 조성되고 관리되고 있습니다. 느리게 걷거나 달리거나, 운동기구를 이용하거나 그네를 타기도 하고, 그늘을 찾아 벤치에 앉기도 햇볕을 받으면서 잔디밭에 앉기도 합니다. 강아지들이 모임 하는 공간도 있더군요. 사람이 많다 해도 서로의 활동에 방해되지는 않고요. 달리면서 주변에 걷는 사람들을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정도로 말입니다. 일주일 중 월요일에 사람이 제일 많아 보입니다. 주말 동안 게으른 생활을 반성하면서 각오를 다지고 운동하러 나오는 게 아닐까요? 이후로 날이 갈수록 사람이 줄어서 금요일에 제일 적고 주말에 조금 늘어납니다. 그리고 다시 가장 사람 많은 월요일.
오늘처럼 비가 오다가 그친 날에는 사람이 가장 적습니다. 특히 어두워진 후에 달리기 하러 가면 한참 동안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가 있고요. 그래서 무서운 게 아니라 나 혼자 좋은 공간을 독점하는 기분이 좋습니다. 며칠을 쉬어서 오늘은 꼭 달리기를 해야 하는데 벌써 마음이 무겁네요. 막상 달리고 나면 좋습니다. 종일 구겨져 있던 몸이 어깨부터 시원하게 펴집니다. 달릴 때는 몸을 똑바로 세울 수밖에 없죠. 돋보기 없이 시야를 멀리 두니까 눈도 편합니다. 온몸 구석구석 뻐근하고 힘들면 내가 이렇게 많은 근육을 썼구나 싶어 뿌듯하고요. 그런데 나가기 직전까지 갈등합니다. 안 나가도 죄책감 들지 않는 핑계를 찾고요. 달리고 싶지만 힘든 건 싫은 마음이랄까요.
그래도 가까이에 하천이, 하천변의 산책로가 있어서 지금까지 700km 넘게 달렸습니다. 발에 걸리는 것 없이 매끈하게 포장된 평탄한 도로, 신경 써서 피해야 할 것도 없고 횡단보도 앞에서 멈출 필요도 없이 내 마음대로 코스를 만들어 달릴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요. 비릿한 물 냄새마저 좋고 가끔씩 마스크의 철벽방어를 뚫고 숨과 함께 삼켜지는 날파리도 괜찮습니다. 얼마 전에는 제법 큰 날파리가 들어와 목구멍으로 바로 넘어가지 못하고 입 안에서 살짝 새콤한 맛을 내더군요. 날파리의 맛이 원래 그런 걸까 상한 날파리라서 신맛이 나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내가 달리기를 한다는 얘기를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친구가 뜬소문으로 알았을 만큼, 나의 달리기는 나를 비롯한 주변 모든 이에게 불가사의와 같습니다. 잘 걸어 다니기는 하지만 숨이 차거나 땀이 날 만큼 몸을 빠르게 움직이는 일은 웬만하면 안 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달리기가 어떤 장점이 있어서 네가 스스로 달리는 거야?”라고 친구가 물었을 때, 실제로 내가 달리기를 하고 나서 느낀 긍정적인 변화들을 얘기해줬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전에, 우리 집 가까이에 하천이 없었고 하천변 산책로가 없었으면 달리기를 하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달리기에 어떤 장점이 있는지 관계없이 말이죠. 나에게 달리기라는 운동의 장점 중 절반은 집 가까이에 있는 도시하천의 장점이라고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