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게 체질

by 정오월


2년 가까이 자발적인 백수생활을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나는 노는 게 체질이라는 걸. 논다는 게 술 마시고 노래하면서 유흥을 즐기거나 레포츠, 게임처럼 특별한 목적을 가진 활동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돈 버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거죠. “일하다”의 반대말입니다. 내게 남은 인생의 마지막 직업을 찾아서, 앞으로 뭐해서 먹고살지 찬찬히 고민하고 알아보고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기 위해 놀기 시작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노는 게 제일 잘 맞는다는 걸 깨달았네요.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게 직업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커피, 제과, 꽃과 관련된 교육을 받았죠. 좋은 것과 직업이 되는 것 사이에 아주 높은 벽이 있더군요. 꽤 많은 비용과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창업이나 취업 같은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아깝지도 아쉽지도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직업”이 아니라 “작업”에서 찾아보자고. 내가 좋아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해 보면서 길을 찾아보자고. 그래서 나는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근로”를 하지 않으면서도 죄책감 없이 본격적으로 놀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놓지 않았던 오랜 취미인 뜨개질을 실컷 하고 마당에 작은 꽃밭을 가꾸고 답사 겸 산책을 하고, 정해진 일과도 계획도 없이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죠. 매일 해도 지겹지 않습니다. 같은 모양의 컵받침을 백 개쯤 만들어도, 어제 걸었던 길을 오늘 또 걸어도 좋습니다. 지금 당장은 카페 창업의 꿈을 접었지만 매일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만들면서 취향이 깊어지는 게 뿌듯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좋아하면서 선뜻 시작하지 못했던 글쓰기도 이렇게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네요.


백수생활 초기에는 다른 사람들 일하는 시간에 나도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움직이는 시간에 맞춰 살아야 한다고. 놀기로 마음먹었지만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떨치지 못했죠. “오늘은 뭘 했지?” 하면서 자꾸만 스스로를 검열하는 바람에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생산되는 뜨개질에 집착했습니다. 책 읽는 것도 노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낮에는 하면 안 됐죠. 낮에 산책을 했으면 그 시간만큼 밤에 뜨개질을 더 해야 했고 그래서 밤에 잠이 부족해 낮에 졸고는 했습니다. 어느 날 바늘을 붙잡고 앉은 채로 고개를 꺾고 졸다가 퍼뜩 잠이 깼는데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살면서 작업도 게으르지 않게 하겠다고 마음먹고는 생체시계에 맞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면서 살고 있습니다.


매일의 성과를 체크하기보다는 언제까지 어떤 작업을 해야겠다는 단기 목표를 세웁니다. 요즘엔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는 일정이 대부분이죠. 그 외의 작업들도 틈틈이 합니다. 종종 스스로 정한 목표시간을 넘기지만 그럭저럭 계속하고 있기는 한데, 사실 다 노는 거죠. 돈을 벌지 못하는 것 말입니다. 사는 게 돈 쓰는 건데 벌지를 못하고 있으니 몸은 편하고 마음은 불편하네요. 20년을 열심히 일 했는데 남은 게 별로 없는 현실이 허무하기도 하고, 가끔은 이러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나기도 하고요. 전에 하던 일에 대한 미련은 모두 버렸지만 줄어들기만 하는 통장의 잔고를 보면 불안이 떨쳐지지 않습니다.



당연합니다. 현재를 걱정하고 미래에 대비한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았고 그 걱정 DNA를 나에게도 물려줬을 테니까요. 직장에 다닐 때에도 언제 마음 편하게 살아본 적이 있던가요. 종류가 다르고 정도가 달라서 그렇지 늘 걱정하면서 사는 거라고,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숙제라고 받아들이는 수밖에요. 그 외에 스트레스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싫은 건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싫은 걸 참는 스트레스가 없으니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는 게 느껴집니다. 두통약을 거의 먹지 않게 되었고 미간에 깊게 파여 있던 두 개의 주름은 흔적만 남았죠. 내가 워낙 다른 사람으로부터 위로받고 기운을 얻는 성향이 아니라는 것도 이유겠네요. 나는 아직 혼자서 뜨개질하고 걷고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쉬면서 에너지를 충천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노는 게 제일 좋은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만, 아닌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예전에 내가 회사 가기 싫다고 쉬고 싶다고 하니까 죽으면 영원히 쉴 수 있다고 했던 친구가 떠오르네요. 회사 때려치우고 회사 앞에서 카페 하고 싶다고 했을 때에는 학력, 경력 낭비하지 말라며 내가 카페 차리면 그 앞에서 피켓 들고 1인 시위를 하겠다고 했던 친구입니다. 그냥 일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고 했던 지인도 떠오르네요. 사람들 사이에서 일을 하면서 성과를 내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성취감을 느끼는 게 삶의 원동력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혹은 단순하게 혼자 노는 법을 모르겠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상황이 답답해서 일을 하는 게 마음 편한 사람들도 있죠. 세상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그 훌륭한 사람들 덕분에 그릇이 작고 야망도 없는 나는 혼자서 조금 일하고 조금 벌어서 조금 먹고사는 삶을 꿈꿀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놀면서 하는 것들 다 일을 하면서, 직장에 다니면서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대부분 그렇게 하죠. 돈벌이를 하면서 취미나 부업으로. 나는 그게 안 됐습니다. 일 말고 다른 건 생각할 여유가 없었죠. 원래 에너지가 많지 않은데 일하는데 다 쓰고 나면 남는 게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남들보다 좀 더 힘들게 일하며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놀면서 여유를 갖고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그렇지도 않네요. 나는 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딱 그만큼 했던 것 같습니다. 일이 많아서 힘들었던 때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이상으로 쥐어짜지는 않았습니다. 일 말고 다른 걸 못했던 것도 갖고 있는 걸 다 쓰지 않고 조금이라도 남겨 놓으려고 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무너지지 않도록 말입니다.


내가 열심히 살아온 건 맞지만 남들도 다 나만큼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이상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도전하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꽤 보이네요. 각자 다르게 열심히, 다르게 힘들 뿐입니다. 내가 특별히 힘들게 살지 않았다는 생각은 나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조금은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나를 안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내 성격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줄 알고 있습니다. 뭐든 다 좋다고 하고 해 볼 만하다고 하니까요. 글만 해도 그렇습니다. 작년 이맘때까지도 건조하고 냉랭한 문체로 보고서 같은 글을 썼더군요. 지금은 많이 친절해졌습니다. 여전히 표현에 있어서 감성보다는 적확성을 더 중시하지만요.



“머리카락이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구나. 얼굴빛도 환하고. 세상에 보기 좋다. 회사 다닐 때는 그렇게 푸석푸석하고 거칠기만 하더니. 아주 형편이 없었어.” 2년 가까이 백수생활을 하면서 가끔 부모님 댁에 가서도 늦잠 자고 뒹굴거리기만 하는 중년의 딸에게, 칠순이 다 되어가는 엄마가 편해 보이는 얼굴이 보기 좋다고 하네요. 엄마가 보기 좋다고 하면 정말로 좋은 겁니다. 엄마 눈에는 자식 걱정 필터가 장착되어 있어서 늘 실제보다 안쓰럽게 보니까요. 엄마가 자꾸 옷이라도 예쁜 걸 입으라고, 옷을 사주겠다고 했었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엄마한테 보기 좋다는 얘기를 들으니 내가 정말 노는 게 체질인가 보다 싶습니다.


직장생활 기간 대부분을 독립해서 혼자 살았는데, 마지막 1년 9개월은 부모님 댁에서 지내면서 직장에 다녔습니다. 장거리 출퇴근에 야근도 잦아서 집에서는 겨우 잠만 자는 날이 많았죠. 새벽에 집을 나섰다가 밤 열두 시를 넘겨 다음 날에 집에 돌아온 적도 몇 번 있고요. 한동안 엄마는 내가 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한다고 생각했답니다. 야근한다고 하면 꼭 혼자 일하니 누구랑 같이 일하니, 하고 묻더니 말입니다. 회사에 밉보여서 일을 몽땅 떠맡았고 아무도 안 도와주는 게 아닌가, 그러지 않고서야 일이 그렇게 많을 수 있냐고 생각했다네요. 나이 쉰 넘은 상무님도 같이 일했다고, 그분은 나랑 하는 일 말고 다른 일도 있어서 얼마 전에 밤을 새워 일했다고 얘기한 후에야 엄마의 오해를 풀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일을 고3 때 공부보다 더 많이 한다니. 여태 이렇게 일하면서 살았던 거야? 따로 살면서 전화로 들을 때에는 피곤하겠구나 하고 말았는데 옆에서 보니까 영 못할 짓이다.” 엄마도 딸네 집에 살면서 손주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 되기 전까지 회사에 다녀서 잘 알기 때문에 더 안쓰럽게 느꼈을 수 있습니다. 사실 항상 그 정도로 바쁜 것도 아니었습니다. 직장생활 중 절반 정도가 그렇게 바빴고 부모님 댁에서 지내던 때에도 그랬습니다. 가장 안 좋은 상황의 기억이 강하게 남은 거죠. 그래서 매일 쉬고 있는 지금도 엄마는 자꾸만 나에게 쉬라고 합니다. 전화해서 뭐하냐기에 뜨개질한다고 하면 어깨 아픈데 쉬라 그러고 부모님 댁에 가서도 밥 먹고 나면 쉬어라, 산책하고 오면 쉬어라, 합니다. 설거지 한 번 하려면 싱크대 앞에 엄마랑 나란히 서서 서로 몸을 밀치며 한참 실랑이를 해야 하네요.


예전의 엄마 같으면 내가 이렇게 밥벌이를 하지 않고 있는 게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큼 큰일이라서 내 걱정에 머리를 싸매고 있었을 게 분명합니다. 엄마 본인이 어려서부터 많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왔고,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할머니가 된 엄마는 바쁘고 퉁명스러운 딸보다 놀아서 시간이 많고 마음도 너그러운 딸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내가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해놓고는, 오래전에 엄마한테 바쁜데 겨우 그런 거 물어보려고 전화했냐고 화냈던 일이 기억나서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엄마가 키우는 화분이나 멋진 풍경이 나오는 TV 화면 같은 걸 핸드폰으로 대충 사진 찍어서 보내면, 최대한 오버하면서 예쁘고 멋있다고 길게 써서 답장합니다.


이제 슬슬 언제 다시 일을 시작할 거냐는 얘기가 나올 때가 된 것 같아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막상 엄마는 언제 집에 오는지만 궁금해하네요. 가서도 별로 하는 것도 없습니다. 가끔 은행이나 병원에 같이 가고 인터넷으로 동네마트보다 훨씬 저렴한 생필품을 찾아서 주문해주고 핸드폰에 설정된 알람, 연락처 단축번호 같은 걸 바꿔주는 것 정도입니다. “네가 이렇게 알아서 척척 해주니 얼마나 좋으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효도가 참 쉽구나 생각합니다. 이렇게 별 거 아닌데 전에는 왜 못했을까. 전에 내가 얼마나 무심했으면 이 정도만 해도 고마워할까.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은 물질적인 측면뿐 아니라 마음을 쓰는 데에도 적용됩니다. 명제이고 진리라고 생각하는 걸 넘어 믿고 있습니다. 내가 증인이죠. 스트레스받는 힘든 일이 없고 시간의 여유가 많으니까 마음이 너그러워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까칠한 본성이 변한 건 아니기 때문에, 엄마가 전화해서 “아니......”로 시작하면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일단 미간이 찌푸려지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엄마가 보기에도 내가 놀면서 몸도 마음도 편해졌고 그래서 엄마한테 친절해졌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뿐 아니라 엄마도 내가 노는 게 좋은가보다 싶고, 그래서 정말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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