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범하게 살아왔습니다. 백수가 되기 전에는 여섯 군데의 평범한 회사에서 총 이십 년 정도의 직장생활을 했고, 그것 말고는 내 삶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재미없게 살았다는 얘기죠. 그렇다고 뭐 대충 살았는가 한다면 그건 아닙니다. 앞으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순간이 올 때마다 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온 결과일 뿐이죠. 남다르게 어려운 일도 특별한 행운도 없었습니다. 공부든 일이든 의무가 주어졌을 때 해내지 못한 건 없지만 그렇다고 뭐 하나 특출한 재능도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생 시절 어버이날 행사에서 학생 대표로 무대에 혼자 올랐었고, 학교 다닐 때에는 그리기, 만들기, 노래, 과학실험 등 대회마다 종목 별로 한 번씩은 다 나가보았고, 학원에 다닌 적 없는데도 음악과 미술의 실기점수가 거의 만점이어서 친구들이 신기해했고, 다들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작문 과목이 나는 너무 쉬웠는데 어느 하나에도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고만고만한 애들 중에 조금 나을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얘기를 늘어놓은 것도 처음이네요. 정말로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어쩌면 나 스스로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자기 객관화”라는 내 삶의 태도가 평범한 나를 평범함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조금은 우쭐하는 법을 알았다면 나도 멋있고 재미있는 삶을 꿈꿀 수 있었을까요. 사는 게 참 어렵죠. 적당한 중간이 없고, 이게 답인지 저게 답인지 이만큼을 살았어도 모르겠으니 말입니다. 어쨌든 나는 자기 객관화가 잘 된 덕분에, 어디에 있어도 눈에 띄지 않는데 그게 속상하지 않았고 나를 드러내고 싶은 적도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처럼 고단하지만 그럭저럭 문제없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다 여겼습니다. 남들과 다른 삶,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은 내 몫이 아니라면서 말이죠.그렇게 이루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이 무사태평을 모토 삼아 살았지만 생각은 많았습니다. "왜 사는가"라는 질문이 떨쳐지지 않았죠. 사는 게 고단하다 싶으면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 걸까", 너무 아무 일 없으면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직업으로 삼았던 일을 좋아하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전공했고 할 수 있으니까 했지만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계속했죠. 나는 평범한 사람이고 재미있는 일은 내 몫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십 년 동안 일하면서도 나아진 게 없고 앞으로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들지도 않았습니다. 무려 이십 년인데. 물론 내 입장에서의 얘기입니다. 자기 일과 업계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사람이 일을 하는 게 당연한 데 무슨 일인들 쉽고 재미있겠나 하는 마음이죠. “그냥 하는 거지 뭐” 말입니다. 그게 정답인 것 같습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하기 싫은 겁니다. 안 해도 되는 핑계를 찾으려고요. 자기가 하는 일에 성취감을 느끼고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일수록 그 일을 하는 이유나 동기부여 같은 게 필요 없어 보입니다. 그냥 하는 거죠. 그에 비해 나는 줄곧 핑계를 찾고 있었습니다.
수없이 많이 들었겠지만, 인생은 정말 짧습니다. 세월이 참 빨라요. 뭐 하며 살았는지 모르게 나는 벌써 중늙은이가 되어 있습니다. 열심히만 하면 그만큼 인정받고 어떻게든 될 것 같았는데 세상에 그냥 되는 건 없더군요. 좋은 것마저 내가 찾고 내가 만들어야 내 것이 됩니다. 시간이 없다 피곤하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죠. 나만 그런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는데 어느 한순간으로도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을 때, 좀 더 재미있게 살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력을 해 볼걸. 안타깝지는 않은데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삶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걸 하면서 살아야겠다, 나라고 못할 게 뭐 있냐고 말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십 년 동안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최선을 다했던 덕분에, 나는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고 앞으로 무엇을 하든 잘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게다가 오랫동안 적은 연봉으로 살아서 돈을 최소한으로 쓰는 삶에 적응이 되어있고, 과중한 업무와 야근으로 단련한 근성이 있어서 방황하는 지금을 잘 버티고 있네요. 좋은 걸 하면서 먹고살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는 것은 뜨개질이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취미이고 가장 재미있는 작업이기도 하고 또 막연하게 뜨개질로 먹고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교 4학년 때였던가, 누구인지 기억도 안 나는 아기에게 선물을 하려고 코바늘로 모자를 뜬 게 뜨개질의 시작이었죠. 안 하던 뜨개질을 그것도 선물을 만들겠다고 하게 된 이유가 뭐였는지,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도 안 나지만 그렇습니다.
뜨개질에 특별히 재능이 있어서 했던 게 아니었습니다.그래서 이렇게 간단한 작업을 못 할 게 뭐 있나, 누구든 할 수 있는데 단지 내키지 않아서 안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내 뜨개질에 감탄하면 당신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할 수 있다고 했죠. 그렇게 오랫동안 내가 뜨개질한 것들을 주변에 나눠주고 아주 가끔은 팔기도 하고 배우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기꺼이 가르쳐주고 남이 만든 것들을 내 것과 비교해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의 뜨개질에는 나만의 스타일이 있고 내가 뜨개질을 제법 잘한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내가 뜨개질한 것을 보여주면서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러니 뜨개질로 먹고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뜨개질로 돈을 버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무언가를 만들어서 파는 것이죠. 그런데 뜨개질이 근본적으로 돈을 벌기 어려운 비생산적인 작업방식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무엇을 만들던지 실 값이 이미 중저가 브랜드의 기성 제품 가격만큼 듭니다. 거기에 뜨개질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엄청나기 때문에 인건비까지 더하면 상당한 고가품이 되죠. 나 같아도 비싸서 안 사겠네요. 상품성이 없다고 해야겠습니다. 상품성, 즉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실을 직접 만들지 않는 이상 뜨개질하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글게 숭덩숭덩 떠야 하는데 그건 또 당최 나의 취향에 맞지 않습니다. 수작업으로 만들면서도 기계로 만든 것처럼 균일하고 견고하면서 반듯하게 각이 잡힌 모양이 아니면 만들기 싫습니다. 그러면 힘이 많이 들고 오래 걸리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네요.
핸드폰과 카드지갑 정도만 쏙 들어가는 작은 가방을 만들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렸더니 지인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어차피 노니까 한 달 커피 값 정도 받고 만들어주기로 했는데, 수작업이다 보니 수요 맞춤형 옵션이 붙습니다. 내가 만들었던 건 봉투처럼 납작하고 정사각형 모양이었는데, 넓은 바닥이 있어서 가방이 혼자 서 있을 수 있으며 높이도 훨씬 높게 해 달라는 거였습니다. 늘 그렇죠. “이왕 만드는 거”의 함정. 일단 그 단계에서 후회합니다. 이미 제시한 가격이 실 값은 빼고도 시간당 최저임금보다 적은 액수인데, 옵션을 맞춰주려면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예측도 어렵습니다. 새로 만드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없던 바닥이 생기면 바닥면적뿐 아니라 옆면의 면적까지 늘어납니다. 게다가 높이도 늘이면 실제로 뜨개질하는 면적은 거의 두 배가 되고 시간도 두 배로 들죠. 모양도 달라져야 합니다. 바닥 모양 그대로 올리면 손잡이가 벌어져 안 예쁘므로, 올라갈수록 옆면의 폭을 점차 줄여서 윗부분이 자연스럽게 여며지도록 합니다. 가방 혼자 서 있기에 적당한 실을 조합하고 어떤 바늘을 써서 얼마나 단단하게 뜰지 패턴과 모양을 잡아보는 데에도 몇 시간이 더 걸립니다. 결국은 새로운 가방을 만들었네요. 매번 이렇습니다. 수고한 만큼 돈을 받으면 되지 않냐 싶겠지만 그게 또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산원가의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손뜨개가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인 줄 알아도 가격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손가방”을 검색했을 때 보이는 정도가 머릿속에 있는 거죠. 유명한 브랜드가 아니면 이름값이 없으므로 그만큼 저렴해야 하고, 유명 브랜드도 아닌데 비싸게 사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게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합리적 소비라고 해야겠죠.
힘들게 만들었다고 해서 나도 비싸서 안 살 가격에 물건을 팔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라고 권하지는 못하고 상대방이 먼저 주문하고 싶다고 하면 내가 만든 걸 그렇게 좋아해 주니 고마운 마음에 만들어주게 되는데, 매번 느낍니다. 내가 만드는 건 상품이 안 되겠다고 말이죠. 돈을 벌려면 뜨개실을 팔고 강좌를 운영해야 하겠더군요. 실 제조업체를 뚫어서 도매로 실을 매입하고 소매로 팔기 좋게 소분해 감아서 포장을 하고, 인터넷 쇼핑몰에 사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샘플을 만들어 보여주며 홍보하고 주문을 확인하고 배송하고, 그러면서 강좌 프로그램을 만들고 수강생을 모아 강의를 하는 일입니다. 해본 적 없고 전혀 모르는 다양한 일들을 해야 하며, 샘플 만드는 것 외엔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뜨개질을 할 시간이 없겠습니다.
글 쓰는 게 좋아서 글과 가까운 책방을 열었다가 얼마 못 가 폐업하게 된 이야기를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좋아하는 것과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직업의 함정이죠. 진짜로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선택해도 좋아하는 것만 할 수는 없습니다. 혼자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들이 커피를 만드는 것 말고 다른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는 이미 충분히 보았습니다.그렇다고 해서 뜨개질을 포기하는 싫고, 상품이 안 되면 차라리 작품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품이 아니니까 쓸모 같은 건 고려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그림이나 조각처럼 보고 있으면 무언가 느껴지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 보고도 따라 할 수 없는 걸 만드는 거죠. 더 힘들고 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법으로 뜨개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습작으로 시작하는 단계지만 다행히 더 힘든 만큼 더 재미있네요. 사람들이 보고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냐며 놀라면 뿌듯합니다.
뜨개질 때문에 턱부터 목, 어깨까지 이어지는 근육에는 늘 통증이 붙어있습니다. 뜨개질을 안 할 때도 아파서 길을 걷다가 옆에 사람이 없으면 어깨 돌리기를 하고 그럽니다.그래도 계속해야겠습니다. 뜨개질을 어떻게 직업으로 할 건지는 여전히 답이 없지만 힘들어도 싫지 않은, 좋은 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죠. 당장에 돈이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기보다는 좋은 걸 더 많이 더 열심히 해보고 싶습니다. 좋지도 않은 일을 이십 년이나 했는데 어려울 것도 없네요.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는 데에도 뜨개질을 직업으로 삼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절반쯤 있습니다. 작가로서의 나에 대해, 내가 만드는 작품에 대해 나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해서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줄기가 잡히니까 글쓰기도 더 재미있네요. 노트북을 켜고 한글 프로그램을 열면 보고서 쓰는 기분이라 일하는 것 같고 싫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고요.
좋은 게 직업이 되는 길은 매우 험난하지만 그래도 꿈을 꾸는 게, 좋은 걸 최선을 다해 해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아예 늦은 건 아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