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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겁쟁이의 두려움 극복법

용기를 내라느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죠.

by 화랑

오늘따라 미세먼지도 없이 날씨가 참 맑다. 아마 지면을 불태울 듯이 뜨거운 이 여름 날씨 속에도 매서운 소나기가 종종 찾아와준 덕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이 맑은 공기를 즐길 여유가 없다. 그저 정신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저 멀리 선명하게 보이는 지평선에 집중하고 또 집중할 뿐이었다.


드디어 열기구의 상승이 서서히 멈추었다. 맑은 여름하늘과 같은 파란 모자를 쓴 교관님께서는 300m에 다다른 고도를 확인한 후 아무 말 없이 열기구의 문을 열고선 나를 향해 말했다.


"문에 섯!"


나는 겁이 많은 아이였다. 유치원 선생님께서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실 때면 깍두기로 열외 해서 선생님 무릎에 앉아 귀를 막고 있거나 옆반으로 피신(?)해 있곤 했다. 초등학생 때는 담력시험이 무서워서 감기에 걸려 쉬고 있는 친구랑 같이 열외해 담력시험을 피했다. 중고등학생 때는 험하고 위험한 장난은 치지도 않았고 놀이동산에서도 범퍼카, 산책만 즐기는 소년이었다.


그리고 그 소년은 지금 300m 상공, 발아래에 펼쳐진 아득한 풍경을 애써 외면하며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이미 얼핏 봐버린 까마득한 지상의 풍경은 계속해서 눈 앞에 아른거렸고, 나의 두 다리는 금방이라도 풀릴것만 같았다. '영화에서는 이런 순간에 찬찬히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던데...' 그러나 냉혹한 현실은 내가 삶을 되돌아보기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뛰어!'라는 구령과 함께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지면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공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것이 내 생도2학년 공수훈련 첫 강하의 기억이다.


그날 밤 나는 첫 강하에서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내일 있을 두 번째 강하에 대한 두려움으로 심정이 복잡했다. 그러던 중 그토록 겁쟁이인 내가 그 자리에서 주저앉거나, 교관님 다리를 붙잡고 집에 보내달라고 애원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단순행동 집중'을 통한 '자기 최면'으로 결론 지었다.


'단순행동 집중'이니 '자기 최면'이니 사실 이 글을 쓰면서 그냥 쓰는 표현일 뿐이고 실상은 간단한다. 나는 열기구가 상승하는 동안 딱 한 가지 생각만 했다. '저 멀리 지평선만 보자, 지평선만 보자' 열기구가 멈춘 순간부터도 딱 한 가지만 생각했다. '딱 눈 감고 뛰자. 눈 딱 감고 뛰자.' 정말 수도 없이 이 생각만 반복했다.(이러니 주마등을 볼 시간이 없었지) 그러다 보니 내가 해야 할 것 외에는 잡생각이 사라졌고 내가 해야 할 것이 단순화되었다. 이를 통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법, 이 상황이 나에게 미칠 악영향,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등의 두려움이 비집고 들어올 공간을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집중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두려움이 머릿속에서 점점 사라지는 자기 최면 효과를 보았다.


여기서 자기 최면은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다. 실제로 우리가 노력할 부분은 '단순행동 집중'이다. 내가 두렵지만 해내야 하는 '행동'을 단순화해서 그 생각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이것도 반복하다 보면 분명히 숙달이 된다. 나는 고소공포증 뿐만 아니라 소위 말하는 전화공포증도 있다. 그러나 업무상 무서운 상급자에게 전화를 걸어야만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여기서 나에게 두려운 '행동'은 전화를 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번호를 누르자. 번호를 누르자.'라는 생각을 계속 반복했다. 그러다 보면 전화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스르륵 전화를 건다. 그리고 그 즉시 후회한다. '아, 좀만 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누를걸...' 하지만 그 전화가 끝난 후에는(결과가 어떻든) 항상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어차피 해야 할 거 얼른 하기를 잘했다.'


사실 경험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가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는 시간,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이 그 결과에 크게 도움이 된 적은 없다. 마음의 준비 시간이 길어지면 오히려 두려운 일을 회피할 방법, 회피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만 늘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실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저 그것을 마주할 용기가 부족한 뿐이다. 그리고 그 극복방법이 바로 내가 해야 할 '행동'을 단순화해서 그것만 생각하는 것이다.


삶의 경험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정말 와닿는다. 우리 삶에서 완벽히 심신의 준비를 하고 열기구에서 뛰어내리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가끔씩은 도망치는 것, 포기하는 것도 좋은 선택지이다. 그러나 도피는 일시적이며, 결국엔 두려움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만이 그 두려움을 제거하는 최고의 방법임에는 변함이 없다.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하는데 꼭 용기가 필요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겁쟁이에게 용기를 내라는 말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겁이 나는데 겁을 내지 말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겁쟁이들이여, 일단 내가 겁이 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겁이 나는 것은 자연스럽고 괜찮은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 주입시키자. 이것까지 끝났다면 이제 두려움조차 느낄 새가 없도록 우리가 해야 하는 행동, 극복해야 하는 행동을 단순화해서 되뇌이자. 용기를 낸다고 생각하지도 말자. 그저 온 우주에서 나와 그 단순한 행동만이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되뇌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스르륵 그 행동을 하는 최면에 빠지도록 스스로를 단련하자.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용기를 낼 필요도 없이 많은 두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겁쟁이여도 괜찮다. 하지만 우린 우리만의 생존방식을 찾아내서 이 험한 세상을 이겨나가 보자.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나의 방식으로 효과를 본다면 정말 좋겠지만, 꼭 이 방식 아닐지라도 이 글이 자신만의 두려움 극복방법을 생각해 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 방법이 항상 잘 통하는 것은 아니다. 한 번은 기숙사 벽에 정말 너무나 거대한 돈벌레가 있었는데, 그때 나의 '단순행동 집중'은 '다가간다, 휴지로 누른다, 변기에 버린다.' 이렇게 3단계였다. 나는 이를 50번은 넘게 되뇌이고서 몸을 움직였지만, 첫 단계인 '다가간다'조차 성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단순행동 집중'을 500번 정도 되뇌이고 나니 실제로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그 직후 다시 겁쟁이 모드가 되어 거의 울먹이며 부모님께 전화했다. 아무튼 효과는 있다...!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렴움을 이겨내고 강하한 그대들은 이미 국가를 위해 한 번 죽은 것이다." 모든 강하훈련이 끝난 후 사령관님께서 해주신 이 말씀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정말로 지켜내야 하는 것,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내 모든 것을 던질 만큼 과감한 용기도 필요한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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